그림에도 불구하고 - 글쟁이 다섯과 그림쟁이 다섯의 만남, 그 순간의 그림들
이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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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각 중에서 시각이 뇌에 전달하는 것이 가장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꼭 시각이 세상을 바로 바라보게 하는 것만도 아니다.

착시에 의하여 엉뚱한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니까...

 

멋진 장면을 만났을 때, '우와, 그림같다' 고 표현하는 역설을 보면,

우리는 착각을 해도 단단히 하는 존재들이 아닌가...

 

이 책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일반적으로 만날 수 있는 '회화'와는 좀 다른 면을 보여준다.

 

윤종석의 그림에는 마치 오브제로 붙여놓은 듯한 옷 그림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 옷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노라면, 총도 보이고, 개도 보이고, 악어도 보인다.

좀더 바라보고 있으면, 그 옷의 꽃무늬가 눈에 들어온다.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은 그림인가? 옷인가? 아니면 사물(총, 개, 악어)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길우의 구멍뚫어 그린 그림은 또 어떤가?

한지에 인두로 세밀하게 구멍을 뚫어 형상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 형상들은 혼자서 존재하지 않고, 겹쳐지면서 외치는 소리를 들려준다.

남과 여가 겹쳐지기도 하고, 동양과 서양이 겹쳐지기도 한다.

웃음과 울음이, 흔들림과 정지함이 뒤섞여 겹쳐 보이기도 한다.

당신이 보는 것이, 과연 거기 그대로 존재한다고 믿는가? 이렇게 묻는 듯 하다.

 

이상선의 '아해'들고 '꽃들'이 놓여진 화폭은 순수하다.

그 순수를 감싸고 있는 세상은 시궁창 위에 놓인 맨홀을 둘러싸고,

금세라도 거기서 올라오는 악취를 이야기하듯, 그렇게 뒤틀린 빛이지만,

꽃의 한들거리며 날아다니는 모습과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은,

과연 세상의 모습은 추악한 것일까, 순수한 것일까...를 한번쯤은 반추하게 만든다.

 

변웅필의 '무모 無毛'한 도전은 자화상으로 일관한다.

사람의 얼굴을 매일 그린다면 변화가 없을 듯 하지만,

그는 온갖 장난을 통해, 사람이 존재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발견하려는 듯 집요하다.

 

정재호의 도시는... 인격을 상실해가는 시대의 모습을 그리려 애쓴다.

도시는 상실한 인격의 유일신이다.(207)

그러나 도시 역시 인격이 살아가는 곳이므로, 인간의 냄새를 맡기 위해 그는 그린다.

그리면 그릴수록... 도시에서 '작은 쓰임마저 사물이 대신'함을 발견하고,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도시에서 사물의 발견은 위대하다. 인간 외에 생각하고 보고 느끼는 다른 존재를 만나게 된 기분이 들게 한다. 이는 마치 좀비와 마주한 것 같이 아주 섬뜩한 일이다.(213)

 

시인, 소설가들이 이 작가들과 인터뷰하는 것을 읽는 일은 재밌다.

예술가들의 일상은 우리와 다르다.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틀에 따라 살 수 없다.

먹고 싶음 먹고, 자고싶음 잔다. 창작하고 싶으면...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

결혼 역시 그렇다. 정재호의 연애 이야기...

 

아무튼 전요,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저하고 안 해서 못한 거예요.

스타일로 보면 저라는 남자는 연애하기에는 괜찮고,

결혼하기에는 탐탁치 않은 스타일인 것 같아요.(190)

 

그럴 수밖에... 하는데, 윤종석은 더 심하다. ㅋ~

 

윤 : 아내랑은 작품 얘기도 안 해요. 섞여 버리니까...

      작업실은 장흥이고 집은 대전이예요. 주말 부부로 살아요.

이 : 불편하지는 않아요? 주말에만 만나고 떨어져 지내면?

윤 : 작업하는 데는 훨씬 더 좋아요. (41)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작업하는 데는 더 좋단다. 그것도 '훨씬~'

이런 사람들이 평범한 가정 생활을 하는 듯 아침이면 출근해서 밤이면 돌아와 자는,

이런 삶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 몹시 궁금해졌다.

 

이상선의 이야기는 귀엽다.

 

난 사랑에 잘 빠져요.

한 번에 여럿이 아니라 하나,

그게 사람이 됐든 사물이 됐든 장소가 됐든,

그게 가슴앓이가 되죠. 그런 것 때문에 실연을 정말 많이 당해요.

예를 들어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소위 말하는 술집 작부들에게 사랑에 빠질 때도 있어요.

그림 그리는 자아랑 실제의 내가 다르다고, 술먹고 노는 나를 보면 사람들이 저런 그림을 그린단 말이지, 이래요. (135)

 

결국, 사랑은... 사람의 이야기이고, 삶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예술가들이라고 그 사랑이 다른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다른 형태의 사랑을 추구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는 것이고,

그런 다양한 형태의 사랑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열린 사회에 가깝게 가지 싶다.

 

변웅필은 어땠을까?

 

변은 사랑을 믿었다. 사랑으로 상처를 받은 적 있기 때문이다.

변은 사랑을 믿지 않았다. 사랑으로 상처를 준 적 있기 대문이다.

변은 간간 사랑을 오독했고 변은 오래오래 사랑으로 고독했다.

처음 사랑일 때 변은 어땠나.

사랑해!

너 없이는 못 살겠다는 굳센 의지의 느낌표였을 것이다.

과정 속의 사랑일 때 변은 어땠나?

사랑해......

너 없이도 살 수 있겠다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의 말줄임표였을 것이다.

마지막 사랑일 때 변은 어땠나.

사랑해?

너 있어서 곧 죽어도 못 살겠다는 억하심정으로 억지꼬투리를 꿰고 보는 물음표였을 것이다.

변에게 묻는다. 이제 와서 사랑이 무엇이냐고. 변은 말한다.

사랑은 '너'가 아니라 오래도록 '당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끝없는 존중이라고.

변에게 묻는다. 지금 사랑하고 있느냐고.

변은 거울 앞으로 가까이 다가선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러우면서도 은밀하며 섬세한 키스를 선보인다.

사랑은 '나' 이며 오래도록 '나'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끝없는 이기라고.(162)

 

김민정식 어투가 짙게 느껴지는 이런 부분만을 찾아 읽는 나도 참 웃긴다.

그리고 오래도록 이 문장을 이렇게 뜯어 고치고 싶은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은,

느낌표로, 말줄임표로, 물음표로... 나를 느끼고, 심사숙고하며 바라보고, 궁금해하는 것도 좋지만,

쉼표처럼... 나를 통해 마음의 쉼을 얻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은 '나' 이며 오래도록 '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끝없는 이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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