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씨의 최후
스칼렛 토마스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그리고 나는 이해한다.

 

이 문장은 이 두꺼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무언가 이해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전체는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갖는 것이다.

처음은 그 앞엔 필연적으로 아무 것도 없고, 그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발생하는 성질의 것이다.

이와 반대로, 끝은 필연적으로든 혹은 일반적으로든 그 자신이 다른 것 다음에 오지만, 그것 다음에는 아무 것도 오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중간은 그 자신이 다른 것 다음에 오며, 또한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오는 성질의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런 하나마나 한 소리를 왜 적어 둔 걸까?

인간이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함부로' 던져져 있는 거 같은 '현실'에 대한 이해가 너무도 부족하여,

도대체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궁금증을 풀어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중간'에 위치하여 혼란스러워하기는 하지만, 과연 그 '처음'과 '끝'에 대하여 생각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

모든 철학, 문학, 종교는 그런 지점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거기다가 근대 과학이 거만하게 세상을 환원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오만을 부렸지만,

양자 이론처럼, 세상은 기연가미연가 하는 것으로 가득차 있다.

무엇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것이 혼재해있는... 그것이 양자 이론이다.

 

키스~ 쪼옥~!♥

 

이 키스는 백만 번의 키스다.

이 키스는 모든 키스다.

우리의 입술이 서로의 입술을 수만 개의 태풍의 힘으로 압박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의 혀가 내 혀와 조우할 때, 그것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전기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느린 동작으로 발생하는 백만 볼트의 충격이다.

한 번에 하나의 전자가 방출되고, 각 전자는 태양의 크기이다.

...

내모든 것이 사라졌다.

난 완전히 벌거벗어서 마치 피부조차 사라진 것 같다.

애덤의 군살 없는 몸이 내 몸 위로 내려온다.

그가 내 안에 들어올 때 마치 내 안과 밖이 뒤집히고 온 세상이 나를 파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모든 것을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581)

 

키스와 사랑을 통하여 세상의 이치를 바라보는 부분이다.

모든 학문의 범위를 넘나들면서 이치를 탐구하는 이야기는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하다.

나처럼 호기심 강한 사람이라면, 홀라당 빠져들 이야기다.

 

트로포스피어~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장치.(생각으로 작동되는 세계)

매트릭스나 인셉션, 아바타 같은 영화와 같은 실험 방식의 소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관계'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다.

생각이 물질이라면 실재해야 하고, 물질이 생각이라면 실재하지 않게 된다.

이 두 가지 발상이 동시에 사실일 수 있을까?(543)

이것이 양자 역학의 사고 실험인 바,

인간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한 사람은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 다양한 관계망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나가 성립하면 다른 하나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 인간 관계가 아닌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은 기표로 가득하다.

어느 대통령 후보는 <국민통합>을 말한다. 그런 걸 기표라고 한다.

어떤 후보는 <민생>을 말한다. 그것 역시 기표다.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을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 오묘한 연결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의 <자의성>이다.

 

<국민 통합>의 기표를 '진심'으로 보든, '꼼수'로 보든 이해하는 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

사랑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그 사람에게서 드러나 있는 기표들만으로 '사랑'을 증명할 수 없다.

아무리 매일 '사랑해' 하는 하트를 뿅뿅 날린다고 해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줄 수 없다.

그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하는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려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소통의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만이 사랑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것일 게다.

 

애초에 무엇이 그것을 진짜로 만드는 거죠?(352)

 

그것이 진짜인지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말 그것 자체로 진짜일 수는 없으므로...

진짜 사랑, 을 보여주려면, 심장을 열어 보여주면 된다고 믿지는 않듯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자신을 잃고,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은 지옥이에요. 타인은 지옥...(348)

 

사랑이란, 결국 모든 사랑은 다름을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과 나의 사랑은, 당신과 다른 사람의 사랑, 나와 다른 사람의 사랑과 다른 것이어서 유니크한 것이다.

모든 것은 애초에 '자의적 판단'으로 해석되는 것들이니 말이다.

 

진실은 '언어' 너머에~(210)

 

말로써 가벼이 확정할 수 없는 것들로 세상은 가득하다.

해석학이란 것 역시,

이해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는지의 다양함을 구체화하려는 노력이었을지 모른다.

 

실재계와 상상계,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상징계~

이런 것들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설명하려 만들어낸 설명 도구에 불과할 따름이다.

 

Y 씨의 최후~를 읽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는,

돌려 말하면,

모든 인간은 시작과 동시에 'the end'가 예고되어 있다.

Why? 

Y 씨는 묻는다. 왜 그걸 끝이라고만 보는 건데?

 

결국 Mr. Y의 끝, 은 편협된 한 시점에서 바라본 이야기일 뿐이다.

의문을 가진 존재, Why? 에게 끝이란,

끝났으면서, 끝나지 않은,

마치 빛이란 존재가 입자이면서 파동일 수 있는 양자 역학적 사고를 우리에게 강요하듯이,

인간 존재의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이해는,

그리고 '당신과 나'라는 존재들의 관계 양식에 대한 이해는,

특정한 한 가지 시점에서 바라봐서는 크나큰 오해~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려는지도 모른다.

 

그의 이야기가 the end of Y(Why?)~인 이유를 곱씹으며,

나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불사르러 가야겠다.

 

주인공 에어리얼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몸짓에 빠져드는 것을 바라보면서,

인간은 참으로 부질없는 몸짓, 그것으로라도 '존재의 고통'을 '느낌'으로써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흐릿하게나마 '이해'하려는 웃기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에어리얼에게 넌 왜? 그러는데? 하고 묻고 싶다면,

자신에게 그 꼬부라진 낚싯바늘같은 물음표를 돌려볼 일이다.

한 번 입 안에 들어온 낚싯바늘에서 빠져나가려 몸부림칠수록,

미늘이 더 날카롭게 자의식에 상처를 줄지 모른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지... 그 끝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한다면, 순응해야 하는 것이리라.

 

금강경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보시라지만, 금강경 역시 이름이 금강경일 따름임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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