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개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표지엔 로맹가리 장편소설이라고 명시했지만,

아무래도 로맹가리의 경험담을 담은 수필로 보는 것이 낫겠다.

 

로맹가리와 진 세버그에게 '셰퍼드'가 한 마리 들어온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그 개의 문제는 흑인에 대하여 적대적으로 길들여진 것.

 

그런 개를 조련사 Key-s는 '흰 개'라고 부른다.

 

물론 모르시겠죠. 당연합니다.

이건 흰 개예요.

남부에서 온 개죠.

그곳에선 경찰이 흑인을 체포하는 걸 돕도록 훈련한 개들을 '흰 개'라고 부릅니다.

지극정성을 들인 훈련이죠.(31)

 

이렇게 그 개는 흑인만 보면 온갖 세포를 곤두세우며 짖어대고 공격을 한다.

 

미국 흑인들의 언어 속에 '영혼 soul' 이라는 말이 끼어든 건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영혼 방송국은 흑인을 위한 라디오 방송국이다.

러시아 농노들이 해방될때까지 '영혼'이란 말이 농노들을 가리켰다.

'영혼'은 매매의 단위였다.(108)

 

미국의 흑인 노예들의 삶은 짐승 이하였다.

그들이 '우리도 인간이다'는 이야기를 외치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년 전이다.

진 세버그가 흑인 인권운동에 앞장서면서 로맹가리에게도 운동이 다가선다.

그 기록이 이 책이다.

 

백인 여자가 흑인과 엮어지는 것을 추잡하고 불결하다고 여기던 시대,

진 세버그의 행보는 로맹가리를 멀어지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이 나오고 가리와 세버그는 헤어지고 만다.

 

어쨌든, 이 책을 가디언에서 이렇게 정의했다.

 

똘레랑스를 모욕하는 앵똘레랑스에 대한 로맹가리의 앵똘레랑스

 

똘레랑스란 '약자에 대한 보호' 또는 '관용'의 의미인데,

그런 관용 없음의 사회인 미국 사회에 대하여, 로맹가리가 매섭게 비판했다는 의미다.

 

흑인 개자식은 흑인이기 때문에 개자식이 아니라,

개자식이기 때문에 개자식인 거야.(176)

 

흑인이라는 이유로 핍박받던 시절은 지나갔다.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흑인 대통령, 수상이 나온 일 없지만, 미국에선 대통령이 나왔다.

물론 오바마는 가난한 집의 자식은 아니지만, 어쨌든 흑인이다.

흑인이기 때문에 개자식이던 시절... 그걸 보고 분노해야했던 로맹가리의 시선은 객관적이다.

 

물론 흑인들이 모두 깨어 있어서 단결한 것은 아니다.

분열되고, 시기 질투에 빠져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좌절의 시기, 흑인들의 투쟁은 범죄와 구별되지 않았다.

 

불을 지르고 강간을 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모든 흑인 뒤에는 백인들의 범죄가, 우리의 범죄가 있어.

우리는 그들을 더러운 배에 짐 쌓듯 빼곡히 실었고,

쇠사슬에 묶어  공기도 안 통하는 불결한 선창 구석에 처박았어.

그래서 '화물'의 50%는 오는 도중에 죽곤 했고...(185)

 

이렇게 백인들의 반성이 뒤따르던 시대는 68혁명의 격변기였다.

흑인 아이들이 미국을 대신해서 베트남에서 피를 흘리며 유색인종을 살해하던 시기...

반성을 표명하던 진보주의자가 흑인들의 위험에서 자신을 지키려 로맹가리에게 와서 '흰 개'를 달라고 하는 곤혹스런 장면은,

미국의 인종 문제가 얼마나 총체적 난맥상이었던가를 잘 보여준 대목이다.

 

미용 기술을 익혀도, 흑인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기지 않던 시절...

 

그런 이해하기 힘든 시절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가득 씌어있다.

소설이라기 보다, 한 시대의 기록으로서 충실한 작품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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