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선생, 드디어 인권교육하다
전국사회교사모임 인권교육분과 지음 / 우리교육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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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리뷰 제목이 개인의 실명(알라딘 내의 실명^^)을 거론해서 당황스러우셨나요? 그러면 무시하고 읽지 마시죠.(라고 말하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겠죠?)

며칠 전에 해콩 선생님의 서재에서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리고 해콩 선생님은 학교의 민주화를 위해서 노심초사하시는 훌륭한 선생님이시다. 아직 경력은 많지 않지만, 경력이 짧다고 뭐를 아느냐는 노친네들의 논리는 늘 오류를 범한다. 경력이 길어 지면, 날카롭지 못하다. 날카로움이 무뎌지고 마는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문제점들을 직시하지 못하고, 그 긴 경력을 무기삼아 억압에 나선다.

학교 내에서 남교사가 많으면 <여교사회>가, 여교사가 많으면 <남교사회>가 있다. 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발버둥이리라. 그런데, 내가 본 여교사회의 노친네 중, 상당수는 젊은 여교사를 억압한다. 선배의 이름으로. 이건 완전히 깡패 저리가라다. 남교사회도 마찬가지다.

해콩 선생님의 서재에 간혹 들러 보면, 사설 모의고사를 거부할 권리, 방학중 보충학습을 받지 않을 권리, 야간자율학습을 안 할 권리 같은 말들을 듣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구구절절이 옳은 소리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선 거의 불문율로 굳어져서 쉽게 말 꺼내기 어려운 소재들이다.

나도 십여 년 전에는 여름방학책으로 배를 불리는(이 짓거리는 최근까지 성행했던 것이다.) 교총과, 매일 지시전달만 하는 직원회의, 군대식 제식훈련을 통한 맹목적 투철한 굴종의 정신과 잘난 놈을 위해 못난 놈은 희생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우는 운동장 조회 등에 문제제기를 했던 적도 있지만, 요즘은 투덜거리고 씨벌거리며 넘어갈 뿐이지,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지각하는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짜식들에게 화를 버럭버럭 내는 좁쌀영감이 되어 갈 따름이다.

이 책은 작년쯤 도서실에 들어온 책이다. 그런데 내가 도서실에 책 빌리러 갈 때마다, 눈에 띈다.(크기가 커서 잘 보인다.) 거의 선생님들도 빌려가지 않았던 듯, 책은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이런 책을 눈에 불을 켜도 읽었을 내 교사 초년 시절을 떠올리면, 일 년이 되도록 이 책을 알고만 있었던 것은 녹슨 것 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해콩 선생님의 글들을 요즘 몇 편 읽다가,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문제로 여기기로 마음을 먹었단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무시하고 넘어갔던 나를 반성한다.

인권. 사람답게 살 권리를 뜻하는 말이다. 내가 사람답게 살지 못할 때 꿈틀거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고, 주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지 못할 때 동지가 되어주자는 말이다.

나는 국어과 교사이지만, 수능 문제 풀이 중심의 수업을 주로 하게 된, 그리고 그걸 능력으로 여기고 사는 한심한 선생이다. 아이들의 사고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 수능에도 유리하단 것을 알지만, 학생 중심의 활동을 능력이 안 되고, 귀찮아서 못하고 있는 선생이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살아선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너무 무기력하다. 전교조는 교육의 희망이 되지 못한지 오래다. 올해 위원장 선거와 지부장 선거에서 1번이 모두 낙선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여긴다. 투쟁 위주의 전교조, 원칙과 교조적인 지도부는 현장에서 유리되어버리는 것이다. 학교에선 모의고사를 쳐야 하는데, 다들 쳐야 한다는데, 전교조는 늘상 거부 방침만 반복하는 녹음기였지 않은가. 밤 열 시까지 자습하고, 아이들은 새벽 한 시, 두 시까지 학원으로 독서실로 나가 돌아다니다가 초주검이 돼서 돌아오는데, 영교시만 겨우 없앤다고 해결책이 생기진 않는다.

학생들의 인권을, 교사들의 인권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주로 워크북 형태로 되어 있어서 학생들의 활동을 안내하는 부분이 상당부분이다. 사실, 처음 책을 접할 때엔, 인권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 했음을 감출 수 없지만, 이 책을 죽 읽고 난 지금은, 인권은 아무 것도 아닌, 관심의 다른 말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관심, 가사 노동에 대한 관심, 학생과 학교 운영에 대한 관심... 일개 평교사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다. 그러나,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것과, 아무 것도 못 하지만, 동료를 모으고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하나씩 모색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큰 일이란 것을 깨닫게 해 준 해콩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리뷰가 이상하지만, 독후감에는 특정 인물에게 편지 형식으로 쓰는 독후감도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해콩 선생님이나 땅콩 선생이나 콩의 일종이었군. 음. 콩과 인권에 대해서 연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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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12-17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샘... 무슨 말을 어떻게 드려야할지.. 오히려 제가 부끄럽습니다. 사설모의고사 때문에 맘고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감독거부 정도에 머무르고 패배감에 젖어 지금은 그냥 받아들이려고 맘 먹은 상태에서 이 글을 보니 너무 부끄럽고..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힘'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글샘 2004-12-1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일로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우리 생활의 전부는 아니거든요. 그 거대한 교육이란 시스템 안에서 우린 작은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 하드웨어를 쉽게 무너뜨릴 순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조금씩, 조금씩 바꾸려는 깨작거림만 해도 우리에겐 중요한 변화를 줄 수 있고, 아이들에게 큰 변화의 씨앗을 심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

해콩 2004-12-1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