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6
이문구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60년대부터 새마을운동의 뿜빠뿜빠... 새벽종이 울렸네... 하는 통에 도시화, 산업화 바람에 이지러지고 문드러진 농촌의 모습을 그린 소설들도 드물지만, 이문구의 우리 동네는 그 판세에서 농촌의 '사람'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관촌수필에서 그 이전의 피폐함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났던 민중들의 파편적인 모습들이 '우리동네 X씨'에 와서는 좀 더 사람 냄새 진하게 농촌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파행으로 치닫던 농촌의 모습을 무지렁이 농부들의 생각이 오고가는대로 종말의 반전같은 것은 기대할 것도 없이 바보스럽다면 바보스럽고 우악스럽다면 우악스럽게 살아있는 것이 우리 동네이다. 그 김씨 리씨 황씨 등의 '장삼이사'들은 소외된 농촌에서 살 수 밖에 없는 농민들, 그러나 깨어가고 있는 농민들,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해서 손해만 잔뜩 입어 볼이 부을대로 부어 있는 농민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마치 신경림의 농무를 읽는 듯한 울분, 답답함, 처량함을 막걸리 한 사발에 꿀꺽 넘기기도 하지만, 행정편의주의, 농협 등 관청의 부조리한 개입, 한창 바쁠 때 불러내는 민방위교육의 허구성, 각종 농사 파동과 유흥업이 침투하고 있는 농촌, 투기에 빠진 사람들... 을 바라보는 냉철한 비판은 이 소설을 농민소설로 부를 수는 있게 해도, 사금파리의 날카로운 위태로움을 갖지 않은 넉넉한 입담과 여유있는 해학으로 충실하게 묘사하는 독특한 이문구의 문체는 70년대 농촌의 팍팍한 현실을 웅변하고 있다.

특히 우리동네 리씨의 이장의 아내 거짓 방송 대목에서는 농민과 관청의 대립관계, 모순을 천연덕스럽고 능청맞게 넘길 줄 아는 농민들의 지혜를 해학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우리 농촌에는 정말 이름도 모를 들풀처럼 살아갔던 숱한 엑스씨들이 있었다. 그 엑스씨들이 이장을 맡고, 구장을 맡아 왔고, 농사란 것도 지식으로써가 아닌 경험으로 짓는 것이었다. 거기엔 불필요한 사람들이 없었고 환경에 피해를 주는 물질이란 애초에 없었다. 지구상에 원래 필요하지 않은 것은 없지 않았던가. 남아도는 사람이 없었고, 남아도는 물질이 없던 농촌에서 조국 근대화, 한국적 민주주의의 횡포가 남용되면서 비효율적인 농촌의 개량, 효율적인 도시로의 유입이 강조되었던 새마을운동의 어둡던 시대.

좋아졌네, 좋아졌어... 로 시작되는 열두곡의 새마을노래는 아직도 우리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데, 그 조국 근대화의 기수들은 군대처럼 효율만이 가득한, 여유와 넉넉함, 나눔의 정서가 사라지고 주름살만이 깊이 남은 농촌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이 소설은 생생한 르포로 보여주고 있다.

이문구의 능수능란한 언변과 묘사력이 아니었다면, 생경한 민중의식을 전파하려는 소설 나부랭이로 전락할 수도 있는 소재였고, 주제였지만, 역시 이문구의 눙치는 문체는 민중의 건강한 삶의 근간을 훌륭하게 살리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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