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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안도현 지음 / 이레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안도현은 시인이다. 내 생각엔 시인이어야 한다. 동화나 잡문으로 성공할 작가는 아니고, 전업 작가로 나섰다면, 시를 쓰면 좋겠다. 난 그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시가 품고 있는 넉넉한 품이 포근해 보이고, 때론 화끈하고 날카롭게 뜨겁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다른 글들은 그의 명성에 상처를 줄까 걱정이다. 이 책이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과 유사한 잡문이라 생각되는 건, 밥벌이를 위해 명성을 팔아먹는 현장을 들켰기 때문이리라.
이 책도 첫 장은 좋다. '하늘에 다리를 놓는 연날리기' 같은 글은 꽤 수필의 깊이가 느껴지는 글이다. '내 시의 사부, 백석'이나 '일 포스티노'같은 글들도 꽤나 감상이 잘 묻어난 글이라 칠 수 있다. 그런데, 3,4장에 가서는 아무래도 밥벌이의 지겨움이 묻어나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의 글에서 하늘에 다리를 놓는 연날리기는 내 마음 속에 한없는 향수와 상념의 실타래를 풀어놓아 주었다. 어린 시절 실이 다할 때까지 저하늘 높이 오르던 연을 바라보던 아무생각 없던 동심의 나를 돌아보게도 하고, 곧 졸업식에서 이별의 말을 전해야 할 날이 올 때, 이런 글 한 편 적어주어야지 하는 생각도 한다.
한 점 연이 되어, 세상을 다 가져라. 연이 처음 바람을 맞아 둥싯 떠 오를 땐, 공중이 낯설고 때론 흔들리고, 까불까불하다 처박히기도 하지만, 그 연이 곧 바람을 안고 바람과 어울릴 줄 알게 되면 저 하늘 높이 한 점 연이 될 수 있다. 그 연은 바람과 팽팽히 맞서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그 연에는 바람이 스쳐지나갈 수 있도록 바람구멍도 넉넉하게 마련해 두어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를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 그의 면모를 잘 느낄 수 있는 글은 역시, 시다.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해직교사 출신인 그는 자연에, 사람에 낮게 다가가고, 바로 그 자신이 강물이 될 수 있는 섬세한 심성인 것이다. 그의 글이 비유를 많이 감싸안을수록, 깊은 은유의 늪으로 언어들을 감고 들어갈수록 그의 언어는 빛난다. 투박하게 연탄재에 '너'를 직유하더라도 그의 탁월한 시 구성력은 감동적일 수 있다. 이런 책 엮지 말고, 시를 썼으면... 그가 바라는 대로 부자는 못 되더라도, 좋은 시인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