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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의 문화 대혁명... 조반...이란 말을 알아야 한다.
造反...이란, 마오쩌둥이 홍위병들을 부추기며 쓴 말이라고 한다.
모든 '반대(저항)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변증법적 테제의 하나로,
기존의 부조리하다고 여겨지는 것(지식, 지주)들에 무조건적 린치를 가하는데 쓰인 폭력의 이론적 사상이 되었다.
그 결과, 지식인들은 '봉건적 잔재'로 '하방' 처분을 받아 시골로 가서 험한 노동에 직면한다.
두뇌 노동의 가치를 일거에 불식시킨 역사적 대 사건이다.
중국의 문화 혁명이 성공했다면... 인류 역사의 가장 획기적 실험이 성공한 것일 수 있었으나,
역시, 한방에 큰 걸 노리면 자충수가 되고 마는 법. 문화혁명 자체가 '반동'이었음을 반성하는 시기도 오게 마련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91년판이다. 그 이전에 구입한 책들은 이사다니는 통에 거의 사라지고 없게 마련인데,
이 책은 마음 속으로 무척 아꼈던 모양이다. 21년을 견딘 책은 몇 권 안 되는데 말이다.
파란 여우 님의 서평집을 읽다가, 예전 뜨거웠던 마음으로 읽었던(오로지 그 심장의 촉감만 남아있는) 기억이 되살아나,
책 마구리가 싯누렇게 된 황금빛 책을 들고 다니며 읽게 되었다.
보는 사람들마다, 도대체 그 골동품은 무슨 책이냐며 궁금해 하기도 했다. ㅋ~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예술 창작법이 있었다.
사회를 충실하게 그리다 보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제대로 드러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용어로 <세계에 대한 리얼리즘의 승리>란 말을 쓰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455쪽에서 <예술이 추구하는 최고의 진실은 생활의 박진적인 묘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도 생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태도 및 그 인식과 태도의 적확하고도 생생한 표현이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풀고 있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다만, 문화 혁명기의 '조반파'의 부조리한 '독단적 정의'가 짓밟았던 '휴머니즘'에 대하여,
재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과정이 뜨겁다.
물론, 그 과정의 가치를 살려내는 것들은 '인물들의 마찰열'이다.
인간의 심장과 심장이 비벼질 때 생기는 마찰열보다 뜨거운 것은 없다.
제 아무리 뜨겁게 흐르던 역사의 강물도, 주인공 호젠후와 손유에의 뜨거운 심장이 자아내는 열정에 비하면 미지근할 정도다.
이 소설의 주제는 '사람, 즉 휴머니즘-의 가치에 대한 인식'과 '사랑의 질기고 뜨거운 힘' 정도일 게다.
그 힘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육체에 와 닿는 고통을 통과한 자들만이 깨닫는 힘이다.
"날마다 영혼에 와 닿는 문화대혁명이라고 외쳤었는데 닿은 것은 육체뿐이었어.
그러던 것이 지금 정말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에 닿는 것 같애."(435)
1991년판에서는 '중공'이란 말을 쓰고 있다.
1992년 8월 24일이 한중수교를 맺은 날이니... 이제 중국과 불과 20년 교역한 셈이다.
그 이전까진 중공은 적대국이었다.
'무찌르고 말테야 중공의 오랑캐'의 대상이었던 셈인데, (이 노래하며 고무줄놀이하던 여자 아이들이 생각난다. 어휴~)
세월은 무상히도 흘러 이제 바야흐로 교역 제1국으로 자리매김되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대국이 되었다.
하방의 고통에서 벗어나 겨우 돌아온 호젠후,
20년이 넘는 사랑을 간직하지만, 손유에에게 사랑한다는 뜨거운 말을 하지 못하고,
그녀의 집 마당까지만 왔다 돌아선다. 그를 바라보는 손유에의 뜨거운 눈물...
이 소설을 읽는 이의 가슴은 계속 눈물샘의 누선에 닿아 젖어 있다.
왜 그냥 돌아가는 거야? 젠후!
만일 내가 별이 될 수 있다면 이 창에서 튀어나가 당신의 가슴으로 뛰어들 텐데.
가 버렸다. 멀리. 이미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저 그림자는 정말로 당신이었을까?(353)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았던 역사 역시 사람이 만든 것이었고,
다시 만난 그들을 훼방놓는 것 역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축복해주는 이들 역시 사람이었던 것.
고통을 겪으면서 손유에의 가슴에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는 열정이 불타고 난 뒤의 숯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를 따뜻이 데워 주고 내가 나아갈 길을 비춰 주기에 충분하다.(351)
무한 긍정의 힘.
물론 세상은 무한 긍정하기 힘들게 사람을 들볶는다. 하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인간상은 이렇게 긍정적이다.
내가 이 소설을 읽던 1991년.
1987년 6월 항쟁으로 얻은 미완의 승리는 죽쒀서 개주고 말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계파 정치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3파전을 이뤄서 노태우에게 어부지리를 부여했고,
노태우는 아무리 물태우란 소리를 들었어도, 세상은 엄연히 군사독재 시절의 연장이었고(이름이 바뀌었다. 범죄와의 전쟁으로)
현실 사회주의 붕괴와 올림픽 이후 세태의 변화로 학생 운동은 토끼몰이를 당하는 형국이었다.
그 답답한 현실에 좌절한 이들이 생떼같은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던 연도가,
1991년이었다.
박정희 정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지하가,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워라~'하고 좃선 소식을 던진 것이 그때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복잡했던 것 같다.
단순히 호젠후와 손유에의 러브라인이 완성되는 쪽으로만 달려가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상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거야."
"이상의 본래 의미는 현실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263)
이런 데 밑줄을 그어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하늘의 별이 떨어진 자리를 바라보던 시절의 흔들리는 내 눈동자가 밑줄 속에 어리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다 변해 가지.
변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저마다 인간의 소재에서부터 진정한 인간으로 변해가는 거야.
다른 인생길이 다른 인간을 만들어 내고, 다른 인간이 또다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지.
어떤 길에나 인간이 있고 어떤 인간 뒤에도 길이 있어.
길에는 우여 곡절이 있고 인간에게는 부침이 있어.
길은 서로 교차되고 인간은 서로 부딪히지, 그것이 인생이야. (222)
호젠후는 이렇게 번드르르한 말로 손유에에게 어필한다.
자신의 살아온 길을 철학적 멘트로 완성한다.
그런 그의 사고는 무척이나 긍정적인 것 같지만, 기저엔 멘붕의 경험의 트라우마가 아련하게 깔려있다.
그의 속마음, 속마음~ ㅋ~ 똑같애, 똑같애~ 어느 시절에나...
그녀 앞에서는 초라한 모습을 눈곱만큼도 드러내고 싶지 않다.
그녀로부터 받고 싶은 것은 애정뿐이다. 연민은 사양하겠다. (216)
손유에가 호젠후에게 끌린 것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였다.
그 마음이 전달되는 것은 수십 년 뒤였지만 말이다.
진심이 있다면, 그 진심이 진실로 진심이라면... 변하지 않는 부분으로 남아, 오랜 뒤에라도 전해지게 마련이다.
안데르센의 '주석 병정'의 심장이 아가씨 인형의 심장과 하나가 되는 결말처럼 말이다.
호젠후는 자연스럽고 조용히, 그리고 조금씩 나를 그와 연결시켜 갔다.
자료실에서 그는 "이것을 읽어 봐. 아주 좋아!"하면서 책을 건네 주었다.
과연 나는 그 책에 이끌렸다.
그리고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시선은 내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내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읽은 책은 나도 모두 읽었다.
내가 읽은 것은 그도 남김없이 다 읽었다. 아무런 약속도 없이,
모든 것은 말없는 가운데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었다.
나는 두 사람이 이미 친구라는 사실조차 인정하고 있지 않았다.(151)
사랑스런 주인공은 이렇다. ㅎㅎ
독자들은 다 알고 있는데... 이렇게 사랑스런 마음이라면, 결말에서 이어지기 십상인 걸...
사랑스런 주인공은 그걸 모르고 바르르 떤다.
안달하고 애달아 하며, 가슴에 아슴거리는 심장의 펄뜨덕거림에 혼자 입을 틀어막고 운다.
사회주의 인간상의 수립 같은 긍정적 레퍼토리만 아니라면, 훌륭한 연애 소설임에 틀림없다.
호젠후의 아린 가슴도 객관적 거리감으로 형상화된다.
아무리 걸어도 도저히 내 숙소에 닿을 것 같지가 않았다.
걸으면 걸을수록 멀어지는 것 같았다.
나와 손유에 사이의 거리처럼.(132)
이렇게 애절하게 빗나가는 사랑이지만,
시왕처럼 젊은이의 건강한 사고는 해피엔딩에의 예감을 던져주곤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휴머니즘을 포용할 뿐만 아니라 가장 철저하고 가장 혁명적인 휴머니즘이라는 것이죠."(108)
"아버지는 조문을 외웠을 뿐, 인간은 염두에 없습니다.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 소설의 주제를 담은 문장이라고도 하겠다.
문화 혁명은 휴머니즘을 구시대의 잔재로 생각하여 조반의 대상으로 삼았으나,
마르크시즘 속에서 휴머니즘을 발견하는 것을 통하여, 휴머니즘의 재조명을 꾀할 수 있는 긍정의 발견이 이 소설의 핵심이니까.
그 주제에 복무하기 위하여 등장한 사랑이,
호젠후와 손유에의 인생이므로...
이 소설에는 다양한 등장 인물의 시각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시점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마치 3D영상을 관람하듯, 다양한 방향에서 투사되는 영상들이 입체적인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절대 아니며,
비판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사람이라도, 속내를 살펴보면 그 인간의 처지를 이해할 수도 있게 된다는 관점을 피력하려는 작가의 의도도 읽을 수 있다.
입체파 큐비즘의 시선처럼,
다이아몬드나 큐빅의 '컷'된 측면에서 비추이는 빛깔들이 각각 개성적인 굴절각을 만들어 내듯,
다양한 군상의 속마음을 통하여,
중국 문화혁명기를 견뎌온 사람들의 삶과 갈등들에 가장 부드럽게 접근할 수 있는 접근로를
다이호우잉이란 대단한 작가를 통해 우리는 맛볼 수 있게 된다.
지식인을 하방시키고, 노동자도 지도자의 위치에서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중국의 혁명이
좀 긴 안목을 가지고 접근했더라면, 훨씬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개인적 아쉬움은 여전하다.
떼놈은 더럽고, 왜놈은 못 됐다~
이렇게만 알아서는 큰 코 다친다.
미국놈들 믿지말고
소련놈에 속지말자
조선사람 조심해라
일본놈들 일어난다.
이 노래가 불리던 100년 전, 이 노래에 중국이 없는 이유는...
그 시절엔 중국과 러시아가 '종이 호랑이'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중국은 당당한 호랑이가 되어 돌아왔다.
노래에 덧붙여야 할 대목이다.
중국놈들 중흥한다~ 이러고 말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으나,
적을 모르고 싸우면... 무지 위태롭다. 조선 사람... 정말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