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풀의 사랑 - 어른들을 위한 동화
곽재구 지음 / 현대문학북스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낙타풀은 아주 보잘것 없는 풀이다. 사막에서 움츠러들대로 움츠러들어 잎사귀도 가시로만 남아 버린 못난 풀인데, 낙타는 이것조차도 없어 입안에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면서도 뜯어먹는다는 풀.

곽재구 시인은 낮은 것들을 노래한다. 그리고 이 책에 추천사를 적어 주신 분은 소설가 임철우이다. 내가 대학 시절 제일 좋아했던 임철우와 곽재구. 이 커플은 사평역에서 만난다. 서로 마음이 되고 몸뚱이가 되어 서로를 바라보는 따스한 눈길. 따사로운 톱밥 난로와 낮은 사람들의 이야기.

어른을 위한 동화가 한창 나오던 때가 있었다. 80년대 시와 소설의 시대가 지나고, 90년대 시가 잠자던 시기, 시인들은 너도나도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철학적인 듯, 몽환적이고, 감동적인 듯, 감상적이었던 책들이었다. 80년대에 울리던 마음의 거문고 줄을 여전히 기억하는 세대는 그 작가의 이름들에 현혹되어 동화들을 읽었다. 그러나, 동화도 아니고 풍자문학도 아니었으며, 더군다나 철학적이지는 못했던 많은 작품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슬픈 시대를 표상하는 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곽재구가 포구 기행을 너머, 세계로 발을 딛었다. 이 동화의 배경은 사막과 불모지... 이런 것들이 꽤 된다. 사평역이 아주 작은 간이역이듯, 사마르칸트, 티벳 같은 마을들도 또다른 사평역에 다름아니다. 그곳에는 낙타풀들이 살고, 여전히 사과 한 광주리 안고 귀향하는 초라한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하고, 단풍처럼 스쳐 지나가는 차창을 달고, 보잘 것 없는 삶들이 피고 진다. 마치 낙타풀 같은 존재들이, 존재의 이유도 모른채...

동화로서 성공하려면, 우선 몇 가지 요소가 성공적으로 엉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것이 주제와 소재의 조응이다. 표현은 나중의 문제라고 본다. 이솝의 우화들이 수천 년을 넘어 생명력을 더하고 있는 것은 적절할 주제들이 적절한 소재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동화들은 끈적거리지 않는다. 주제의식은 소재들과 유리되어있기 쉽다. 어찌 보면 수피즘식 억지를 부리는 듯도 하다. 지나치게 교훈적이기도 하고... 시적인 표현들이 많이 녹아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수필도 아닌 동화라는 장르에선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화의 또 하나의 성공 요소는 이야기의 전파력이다. 동화를 읽고 다른 이에게 이 이야기를 안 해주고는 못 배기도록 만들어야 성공하는 동화일 것이다.

난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적을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그렇지만, 이 리뷰들은 나의 독서일기이기에 몇 자 적기로 한 거다. 곽재구가 기행이나 동화를 쓰지 말고, 다시 그 정신으로 처절한 시들을 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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