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달 반 동안 심한 멀미를 하며 같이 항해해 온 서른 다섯 딸들아. 다섯 명의 딸들은 이미 항구에 안착해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고... 이제 내일이면 너희가 1년간 준비해 온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게 될 것이다.

여덟시간 정도 남았구나. 너희의 배를 지휘한 선장으로서, 너희를 바라보면 많은 회한을 삼킬 수밖에 없다. 늘 그렇지만, 지나놓고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려니 한다.

배멀미가 특히 심했던 녀석들도 내일만은 좀 편안히 시험치르길 간절히 바란다. 시험치기 전날, 너희에게 무슨 말이든 해 주고 싶었지만, 너희에게 무슨 말이 격려가 되겠느냐. 무슨 말이 귀에 들어 오겠느냐. 어차피 흔들리는 배 안에서 배의 움직임과 함께 몸과 마음을 뒤흔드는 전쟁같은 항해임에랴.

수능만 마치면... 하는 생각 많이 해 보았으리라. 어떤 앙케이트에서 시험을 마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푹 쉬는 것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은 걸 보았다. 푹 쉬어라. 쉬어야 하리라.

그러나, 내 딸들아, 더 중요한 것은 수능이란 건, 아주 작은 항구의 하나일 뿐, 그것이 우리 항해의 목표는 아니란 걸 인식해 주기 바란다. 너희가 고등학교 3년을 흔들리는 뱃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내일 저녁 항구에 도착해서 뭍에 잠시 내리면 육지 멀미도 심할 것이다. 배를 오래 타다보면, 육지에서 멀미를 한다. 허탈하고 허전하고, 무엇을 위해 이 젊은 날들을 헤매었던지... 눈물도 흐를지 모른다.

이제 여덟시간 뒤면 차근차근 시험지가 너희에게로 간다. 아직 너희들 중 스무 명은 잠자리에서 뒤채이고 누웠으리라.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은 선생님 말대로 열 시엔 이불 속에 누웠겠지. 그리고 조금 피곤해도 낮잠자지 않고 공부했으리라. 그렇다고 쉽게 잠들지 않고, 자다깨고 몇 번 뒤척이다보면 다섯 시가 오고, 여섯 시가 오겠지.

너희 서른 다섯 이름을 생각하면 나도 오늘은 잠을 쉽사리 이룰 수 있을 것 같지 않구나.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귀엽고 곰살맞은 율동이 어울리는 샛별공주, 그 앙징맞은 표정과 익살에 알맞게 귀여운 그림들도 잘 그리던 공주님. 시험 잘 봐서 캐릭터디자인 계통의 학과로 진학하길 바란다. 하이바와 또치 그림은 잊을 수 없는 캐릭터다.

그리고 우리 반에 드문 소녀표, 노부랭이. 누군가는 메기라고 놀리지만, 늘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시험도 잘 치고 올 거다. 디자인 공부하랴, 시험준비하랴 바빴는데, 이제 그림만 그리면 좋겠다. 김밥은 여전히 많이 사먹어야 하겠지만.

부잣집 맏며느리감(너희들은 싫어할 말이지만) 스타일의 미희, 차분하고 믿음직스러운, 촐싹거리지 않는 든든함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심리학 계통 공부도 좋겠고, 미희라면 공무원시험이나 고시 준비도 잘 할 거라고 생각한다. 날개를 얻기 바란다.

내가 늘 예쁘다는 어트랙터, 끌개 두뽀. 두고 보면 선생님이 끌개라고 한 이유를 알 날이 올 거다. 두뽀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조금 게으른 적도 있었지만, 요즘 긴장해서 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바란다. 오답노트 만든 것이 모두 출제되기를...

늘 말이 없이, 얼굴과 노트가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민정이. 처음에는 자는 줄 알고 깨운 적도 많았지. 든든한 미희와 함께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거라고 믿는다. 민정이는 당연히 좋은 결과를 얻어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3학년 와서 상당히 성숙(?)한 듯한 수바. 일본어를 차근차근 공부할 수 있으려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하겠지. 수능을 통해서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는 계기가 되도록 좋은 성적 얻어오길 빈다. 선생님이 햇님이의 질투를 극복하고 태워준 덕을 갚으려면 잘 치는 길이 수다.

본성과 다르게 부끄런 웃음을 웃는 수영이. 늘 웃는 모습처럼 긴장할 것 하나도 없이 좋은 성적 얻어오기 바란다. 차근차근 풀 수 있을 것이다. 잘 치고 와서 원하던 한양대에도 합격하는 영광을 누리기 바란다. 네가 바라는 점수만큼 좋은 결과 있기를...

강직하고 감성적인 미녀, 이은공주.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하느님은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 수능정도의 시련은 가뿐하게 이겨낼 지혜는 이은공주가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막판의 독서실 실력을 실제 점수로 이은 공주가 되길 바란다.

조용하다가도 간혹 터프한 두식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공부한 것이 좋은 결과를 얻게 할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공부는 그리 힘들지만은 않았지? 친구들 모두모두 기원하고 있는 좋은 점수 얻을 수 있도록, 차분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길...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문희. 언제나 멀뚱한 얼굴로 '응'하면서 재미난 표정을 하던 그 여유로움과, 칠판에 붙어 있는 어떤 분필 가루도 한 획의 지우개의 압박으로 퇴치하던 팔힘을 과시하여 튼튼한 점수를 얻어 오길 바랄게. 잘 치고 체크무늬 스카프 엎어쓰고 푹 자렴.

우리 반에 드문 또하나의 소녀표, 박수. 요즘 눈이 퉁퉁 붓도록 열심히 하는 만큼 모의고사 성적은 안올라서 기운이 떨어져 보였는데, 내일만은 박수의 평소 모습을 되찾아서 의욕적으로 문제와 싸워 승리해 돌아오기 바란다. 즐거운 뻥애의 삐삐머리가 되기 위해서...

새침데기 쌍둥이 재희. 마음도 몸도 따라주지 않아서 마지막엔 조금 힘들었지? 수시 2학기도 아직 불투명한 상태고 말야. 까짓거, 수능대박으로 재연이랑 같이 즐거운 대학 생활을 누릴 수 있잖아. 정시에도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깐, 시험 잘 치고 오길 바랄게.

요즘 공부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었는지, 얼굴이 달뎅이가 된 토끼님. 3학년 들어 꾸준히 오르는 성적이 이번 수능에선 깜짝 놀랄 정도로 깡충깡충 뛰어 오르면 좋겠다. 점수가 좋아야 미술도 더 잘 되지 않겠니? 뒷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높이 한 번 뛰어 올라 보렴.

아, 14번 토끼까지 빌다보니 시간이 꽤 됐군. 가쇼군부텀은 좀있다 다시 빌게. 모두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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