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차 미카 어른을 위한 동화 13
안도현 글, 최성환 그림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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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이란 이름을 믿고 읽어봤는데, 지나치게 많은 <생각>들을 우겨넣으려 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 형식 말고, 그저 간명한 시로 쓰거나, 수필로 썼더라면 그 생각들을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을.

할아버지와 증기기관차 미카 사이의 교감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속도의 배신이다. 현대는 속도를 가져다 준 만큼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가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속도는 약탈을 불러오고, 속도는 왕따를 불러오고, 속도는 이기심을 발동시킨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빨리빨리 '느림'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빨리 달리면서 볼 수 없는 것들을 천천히 가면서는 보고 빙긋이 웃게 된다. 자동차를 타는 것 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세상을 보기에 좋고, 자전거보다는 걷는 것이 세상 구경에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빨리빨리 살지 않으면 쉬이 직장에서 '짤리고 마는' 불행한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산다는 게 내가 나를 이끄는 것이어야 하지만, 속도가 붙은 삶은 삶이 나를 끌고 다닌다.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 버리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공허함만이 가슴을 칠 뿐. 증기기관차에서 까먹던 삶은 계란은 추억을 환기한다. 한겹씩 벗길수록 생생하게 살아나는 추억의 맛을 이끌어 주는 삶은 계란.

서로 그리워하면서 나란히 갈 수밖에 없는 철길을 보며, 기억이 가물가물하는 경의선 정거장들의 이름을 되뇌어보는 할아버지와 미카는 통일의 미래를 기다리며 같이 깊은 잠이 든다. 외로움이라는 특혜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므로, 할아버지는 세상에 태어나서 조용히 녹이 슬어 가는 일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미카와 함께 편안한 잠 들 수 있었을 것이다.

힘이 세다고, 스스로 힘이 세다고 떠벌이는 사람들은 조용히 녹이 슬어가는 일의 아름다움 따윈 안중에도 없겠지? 아주 작은 나사못 하나가 기관차를 끌고간다는 그 깊은 이치를 모르는 자들은 빨리빨리 달릴 생각만 할 뿐이지, 바닷가에 아무 의미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이 파도의 이치란 걸 생각하지 못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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