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학의 편지 - 화가 아버지가 딸에게 보낸 그림편지
김종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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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일단 그림을 먼저 곰곰 읽었다.

내 맘에 쏙 드는 그림들이 몇 점 있는데,

짙푸른 밤바다... 그리고 화사한 진홍빛 진달래 빛이다.

그 색감이 환상적이면서 깊이가 있어서

가히 매혹적이다.

 

골라 보니, 내가 좋아하는 색감이 바다와 하늘의 블루와,

환상적인 진달래 꽃빛 핑크계열임을 알겠다.

 

 

 

 

 

 

 

 

그 절정은 핑크와 마린 블루가 서로 휘영청 빛을 섞고 있는

<벼루 위에 스민 봄기운>이다.

 

 

 

 

 

 

 

 

 

 

 

 

 

 

 

 

 

 

 

 

 

그리고 세찬 물살과 어울린 자연들을 좋아한단 걸 그림을 보고 알게 된다.

 

 

 

 

 

아, <철쭉산>이란 그림이다.

세상이 온통 철쭉으로 휘감긴 느낌이 살아있다.

 

 

 

 

 

빛이 살아 숨쉬는 생명력으로 약동하는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막 살고 싶어질 것 같다.

그의 인물 그림보다, 이런 자연을 그린 꽃, 새, 나무 그림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당연한 거 아닐까?

사람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은 인간은 이런 자연의 원색을 만나면서 풀릴 수 있을 거니까.

그림에서조차 사람을 보고싶지 않을 게다.

 

그가 같은 길을 걷는 딸에게 주는 편지글에선,

화가로서의 고민, 노하우와 팁이 가득해서

바구니 가득 풍성한 수확을 얻는 농부의 기분으로 가슴이 벅차다.

 

요즘 그림이 막 쏟아지고 있다. 이럴 때 많이 그려야지.

그림이랑 연애하는 것 같아. 그림은 자기만 좋아하기를 바라는 처녀같아서,

열심히 사랑해야 방긋 웃는 모습을 보여준단다.

미술의 길은 어려우나 오십이 넘으면 이 일처럼 즐거운 일도 드물 거야.

 

요즘은 무언가를 그리고 싶다는 확고한 세계가 있어서 하루에도 두 장, 세 장씩 마구 그린다.

온 정성과 생명을 걸고 일해 나가고 있다.

 

정말 마음을 비우니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마치 태양이 내게

"종학이, 이 괴짜야, 오늘은 일만 해, 끈풀린 강아지 마냥 싸돌아 다니지 말고 네 남은 생애 모두를 걸고 작품을 만들어봐."

하고 명령하는 것 같구나.

 

그림은 많이 그려야 해. 양에서 질을 찾아야 해.

마음 놓고 제 멋대로 그리도록 해.

그림을 겁없이 푹푹 그린다는 것도 꽤 힘든 경지란다.

 

무엇을 창조한다는 것은 창조의 길을 가는 사람만이 갖는 특권이다.

물론 외롭고 고달프고 때로는 겁도 나지만 오직 자기 홀로 서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아니 길이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재미를 다른 사람들은 모를 거야.

 

미술은 남에게서 배우는 것보다 자기가 많이 실패하며 배우는,

혼자 하는 공부니까 열심히 하는 분위기만 있으면 너무 일류학교를 따질 것도 없다.

 

아빠가 꽃을 그리고, 나비를 그리고, 나무를 그리고, 냇가며 폭포 등을 그리는 것은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아니, 수쳔년 동안 좋아하는 대상을 그리는 것에 그치는 게 아냐.

그런 대상을 그리면 타락한 화가로 여기는 20세기 회화에 반발하는 의미도 있단다.

 

좋은 인간, 예술가가 되려면 시를 꼭 알아야 해요.

(음, 좋은 말이다. 이 문장만 높임말로 쓴 것도 맘에 든다. ^^)

 

화단에선 꽃을 그리는 야생화 작가로 통하지만 곱게만 그린다는 비난도 있다.

고와서 곱게 그리는데 난 별로 개의치 않는다.

다만 좀 더 힘차고 박력 있게 못 그리는 게 한이 된다.

 

영감은 무수한 노력의 순간에 온다.

한 사람의 진리는 만인의 진리가 된다.(로댕)

 

모든 걸 다 잊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무의식 속에서 창의력이 솟아난다.

좋은 작품을 많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좋은 작품을 보면 가슴이 찡해지는 것처럼 자기 그림도 가슴에 찡한 게 오도록 그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항상 그리고 있어야 한다.

영감은 노력 속에서 가끔 솟아나는 샘물과 같다.

 

자연을 열심히 관찰해야 좋은 화가가 될 자격을 얻는다.

 

기운생동이 느껴져야 그림의 가치가 있다.

 

내 그림의 단점은 여자들이 좋아하기 좋은, 좀 곱다는 점에 있으나 때로는 심각하고 단순한 그림도 그린다.

 

루소 그림은 아빠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좋은 그림은 시대를 초월해서 좋구나.

반 고흐 역시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얼마나 진실되게 열심히 그렸니.

루소는 비전문가로서 얼마나 아름다운 환상을 그려냈고.

사심없이 자기를 다 바쳐 그린 그림은 시간을 초월해서 사람 가슴에 감동을 준단다.

 

예술은 젊어서 하루 아침에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 묵은 된장이 썩지 않고 발효되어 그 깊은 맛을 내듯,

치열하게 추구하는 예술의 세계가 지긋한 나이가 들어야 깊은 빛을 낼 수 있는 것일 게다.

 

이런 아름다운 세계를 만나게 해주는 삶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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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6-29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동해어화다.
역쉬 미친 색감예요, 환상적이다~^______^
개나리는 줌 인에 인색하셨네여~--;

전 그 구절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정치나 재벌은 3,40대에 이룰 수 있지만...
그림은 60이 넘어야 하고,
시는 70이 넘어야 이루어진다.
왠지 희망적이지 않아요?^^

글샘 2012-06-30 00:10   좋아요 0 | URL
얼마만이세요? ^^
미친 색감... 그래요. 미친 색감이죠. ^^
이 책 전체가 그렇더라구요. (개나리는 키웠습니다.)

이 책 전체가 그림그리는 사람에겐 희망인 거 같애요.
저는 저 빨간 문장이 그렇게 맘에 들더라구요. ^^
주말 잘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