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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 ㅣ 이산의 책 17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평점 :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는 참 많은 외국어가 등장했다. 생전 처음 듣는 나라들과 사람들의 이름은 내 경험의 선을 훨씬 넘어섰고, 무식한 나는 늘 세계사에 쩔쩔맸던 기억이 난다. 그 중에도 중국 역사는 그나마 만만했는데, 이름이나 지명이 한자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청나라만큼은 아니었다. 누르하치 같은 말들은 만주말이어서 낯설게 느꼈던 기억이 나고, 청조의 기반을 확고히 다진 덕망높은 유교 군주 강희제와 화려한 대외원정으로 전 아시아에 청조의 평화를 각인시킨 건륭제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사이에 낀 옹정제는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인물이다. 강희제의 아들이면서 건륭제의 아버지인 옹정제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 독재 군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어떤 바보들은 박정희가 그런 모범적인 독재 군주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박정희가 ‘대한 늬우스’에서 밀짚모자 쓰고 막걸리 마시며 벼베기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세뇌시킨 탓이리라 여긴다.
독재에 대한 향수는 민주주의가 늘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없고, 중우정치의 형태로 몽롱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생긴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믿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것이 상당히 발전된 정치형태임을 인정하면서도 노무현처럼 힘없는 정치가야말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독재자가 되길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노무현보다 더 나약한 정치가가 속출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찐-한 맛의 찌개에 익숙해 있었던 건 아닌가. 건강을 위해서 싱거운 음식도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죽어봐야 저승을 아나? 조심할 필요가 있을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동양의 특별한 독재 정치를 나름대로 성실성으로 밀어붙인 옹정제, 그의 밀정정치는 철저하게 이루어졌지만, 독재자의 양심에 맡기는 밀정정치는 늘 불안하게 마련이다.
이 책은 소설을 읽는 것 이상의 흥분을 자아내는 이상정치를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옹정제에 대한 애정이 가득 든 글이라 볼 수 있다.
옹정주비유지(雍正硃批諭旨) 112책은 옹정제의 지방 정치에 대한 고심의 결정체다. 그가 지방관들과 끊임없이 문서를 주고 받은 것을 집대성한 훌륭한 보물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 나라의 ‘실록’과 비견할 만한 명작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의 철학은 ‘爲君難 군주가 되는 일, 지극히 어려운 것’, ‘原以一人治天下 천하가 다르려지고 다스려지지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 不以天下奉一人 이 한몸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같은 의지의 표명에서 잘 드러난다. 아름다운 전제군주.
田文鏡(톈원징)같은 사람의 투명하고 철저한 세금징수는 옹정제와 뜻을 맞춰 업적을 남겼고, 李衛(리웨이)를 신임하여 정의를 구현하는 대목에서는 독재자의 사랑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오르타이와는 만주족으로서 허심탄회한 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법률에만 의존해서는 불공평해질 우려가 있고, 법률 초월해야 공평해지는 경우도 있다는 마치 어느나라 재판소의 관습법 운운하는 대목도 눈의 띈다.
과연 우리나라는 민주 공화국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독재보다 나은 체제라면, 정말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하는데... 혈세를 받아먹고 놀고먹는 의원놈들 보고 있으면 혈압이 저절로 올라서 신문을 끊은 지 몇 년인데, 요즘은 인터넷 뉴스가 눈을 괴롭혀서 인터넷도 끊어야 할 판이고... 공화국이라면 공화정을 펼쳐야 하는데, 공민을 위한 정치가 공화국의 모토가 되어야 한다면, 우리 국민들이 처한 밑바닥의 슬픔, 아무도 국민을 돌보지 않는 통치는 공화국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가. 가진자들의 횡포에 간혹 골든벨을 울리는 소녀가 등장하더라도, 개천에서 용 나기는 예부터 힘든 일이어서 그런 속담이 생기기라도 했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