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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항 ㅣ 문학동네 시인선 20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평점 :
투명함과 불투명의 사이, 명징함과 모호함의 경계쯤에 시를 두고 싶었으나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개판 같은 세상을 개판이라고 말하지 않는 미적 형식을 얻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말과 문체를 갱신해 또다른 시적인 것을 찾고자 하였으나
그 소출이 도무지 형편없다.
저 들판은 초록인데, 나는 붉은 눈으로 운다.(시인의 말)
시인은 시로 말해야 한다.
시인의 말, 이 마음에 안 든다.
잘 되지 않았고, 여의치 않았고, 형편없는데...
그리고 '개판 같은 세상'인데, 저 들판이 '초록'이라니...
'개판이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붉은 눈으로 운'다니?
시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뭐, 세상에 마음에 드는 게 뭐 있다고...
지난 봄, 백합 구근을 두 뿌리 사다 심었더니, 요즘 무척 자라서 꽃을 피웠다.
<원추리 여관>을 읽으면서 백합 생각이 나서 웃음이 실실 났다.
아는 사람은 아는 경지라서...
왜 이렇게 높은 곳까지 꽃대를 밀어 올렸나
원추리는 막바지에 이르러 후회했다
꽃대 위로 붉은 새가 날아와 꽁지를 폈다 접었다 하고 있었다. 원추리는
어쩔 수 없이 방을 내어주고 다음달부터 여관비를 인상한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했다.
멀리서 온 것이나 키가 큰 것은 다 아슬아슬해서 슬픈 것이고
꽃밭에 널어놓은 담요들이 시들시들 마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어린 잠자리들의 휴게소로 간판을 바꾸어 달아도 되는지 면사무소에 문의해볼까 싶었지만
버스를 타고 올라오기에는 너무나 멀고 낡은 집이어서 관두기로 했다
원추리 꽃대 그늘이 흔들리다가 절반쯤 고개를 접은 터였다 (원추리여관, 전문)
시인은 키가 큰가보다. 그러니 이런 경지가 보이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을 이쁘게 쓴 시가 있다.
'폭'이다.
바다의 폭이 얼마나 되나 재보려고 수평선은 귓등에 등대
같은 연필을 꽂고 수십억 년 전부터 팽팽하다
사랑이여
나하고 너 사이 허공의 폭을
자로 재기만 할 것인가 (폭, 전문)
좀 한심하다. 왜 그걸 사랑한테 묻나?
자기가 먼저 다가서지 못하고 말이다.
연필 같은 등대...를 바라보면서,
직선 하나 주~~~욱 그어버리고 싶은 마음, 견딘다.
주~~~욱 그어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팽팽하게 아리겠지.
그의 시집을 읽노라면,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이 떠오른다.
그이 '벚꽃'은 송찬호의 '늙은 산벚나무'의 대작이다.
코끼리가 간밤에 벚나무에 몸을 비비고 떠난 뒤에 벚나무
는 연분홍 코끼리 새끼들을 낳았다 이 기이한 착종에 의해
태어난 코끼리들은 울지 않았다 벚나무의 한숨이 십 리 밖
까지 번졌다
이 소식을 듣고 맨 처음 달려온 것은 수의사와 식물학자였
다 그러나 그들은 둘러앉아 화투 패를 맞추었고 몇 순배 흰
술잔을 돌렸다 벚나무의 저고리 고름이 붉어졌다
어린 코끼리들의 양육이 부담스러웠을까 석유 삼키듯 자
신을 탕진하고 싶었을까 아무도 세상을 무거워하지 않는데
벚나무 혼자 가지 끝이 찌릿찌릿 저렸다 바람이 불지 않았
는데 통증이 가지를 마구 흔들었다
그 순간, 어린 코끼리들이 벚나무의 사생아처럼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식물학자는 하강 속도가 초속 오 센티미터라고
짧게 기록했다 수의사는 삶이 삶을 벗어버리는 따뜻하고 슬
픈 속도에 취해 청진기를 꺼낼 수 없었다
봐라, 벚나무 아래 뿔뿔이 돛대도 아니 달고 떠나는 저 어
린 코끼리들의 정처 없는 발자국 좀 봐라 (벚꽃, 전문)
앞으로 늙은 곰은 동면에서 깨어나도 동굴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는 기라
동굴에서 발톱이나 깎으며 뒹굴다가
여생을 마치기로 했는 기라
그런데 또 몸이 근질거리는 기라
등이며 어깨며 발긋발긋해 지는 기라
문득, 등 비비며 놀던 산벚나무가 생각나는 기라
그때 그게 우리 눈에 딱, 걸렸는 기라
서로 가려운 곳 긁어주고 등 비비며 놀다 들킨 것이 부끄러운지
곰은 산벚나무 뒤로 숨고 산벚나무는 곰 뒤로 숨어
그 풍경이 산벚나무인지 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우리는 한동안 산행을 멈추고 바라보았는 기라
중동이 썩어 꺾인 늙은 산벚나무가
곰 발바닥처럼 뭉툭하게 남아 있는 가지에 꽃을 피워
우리 앞에 슬며시 내미는 기라 (송찬호, 늙은 산벚나무, 전문)
경북 사투리. 재미있다.
경상도 사투리라도 말맛이 다 다르다.
대구 사투리가 투박하고 우악살스러운 반면,
부산 사투리는 경쾌하고 소박한 맛이 있고,
안동 사투리는 ~능교를 깔면서 질펀한 맛이 있는가 하면,
경주 사투리는 ~니껴를 감돌면서 친근한 맛이 있고,
진주 사투리는 핵맹과 엄악실(혁명, 음악실) 사이를 헤매면서 웃음을 머금게 하는 멋이 있다.
예천 사람은 역시 예천 말을 써야 맛깔지다.
있잖니껴, 우리나라에서 제일 물이 맑은 곳이
어덴지 아니껴? 바로 여기 예천잇시더.
물이 글쿠로 맑다는 거를 어예 아는지 아니껴?
저러쿠러 순한 예천 사람들 눈 좀 들이다보소.
사람도 짐승도 벌개이도 땅도 나무도 풀도 허공도
마카 맑은 까닭이 다 물이 맑아서 그렇니더.
어매가 나물 씻고 아부지가 삽을 씻는 저녁이면
별들이 예천의 우물 속에서 헤엄을 친다 카대요.
우물이 뭐니껴? 대지의 눈동자 아이껴?
예천이 이 나라 땅의 눈동자 같은 우물 아이껴? (예천 醴泉, 전문, 단술 예, 샘 천)
해설자는 사족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
시인이여, 늘 잘 쓰지 말라.
저 빛의 손상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말이 더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연탄재처럼 뜨거운 시를 또 써줬으면 좋겠다.
그를 아끼는 독자인만큼 그의 빛이 손상되는 일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