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지성 시인선 359
송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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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를 처음 만난 건, 그의 시 '구두'에서였다.

 

http://blog.aladin.co.kr/silkroad/4812436

(글샘의 문학 수업 100. 송찬호, 구두)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보는 것이다 <송찬호, 구두, 부분> 

 

그의 시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과 같이 초현실주의 시로 읽힌다.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벗어나게 도와주는 시.

 

이 시집에 와서, 그의 상상력은 활짝 꽃을 피운다.

어린 시절, 동화 속에서 읽었던 서랍 속 꽃들의 춤동작처럼,

그의 시집 속에선 상상의 세계를 돌아다니는 앨리스처럼,

독자를 풍성한 상상 속에 빠트린다.

 

그 상상 속에서 일관된 리듬이나 서사를 찾아내려 하는 것은 헛된 노력이다.

상상해~

그것은, 무엇을 상상하단, 예상 이상의 결과를 낳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그의 <늙은 산벚나무>를 보면,

나이든 사람의 관조의 눈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앞으로 늙은 곰은 동면에서 깨어나도 동굴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는 기라

동굴에서 발톱이나 깎으며 뒹굴다가

여생을 마치기로 했는 기라

 

그런데 또 몸이 근질거리는 기라

등이며 어깨며 발긋발긋해 지는 기라

문득, 등 비비며 놀던 산벚나무가 생각나는 기라

 

그때 그게 우리 눈에 딱, 걸렸는 기라

서로 가려운 곳 긁어주고 등 비비며 놀다 들킨 것이 부끄러운지

곰은 산벚나무 뒤로 숨고 산벚나무는 곰 뒤로 숨어

그 풍경이 산벚나무인지 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우리는 한동안 산행을 멈추고 바라보았는 기라

중동이 썩어 꺾인 늙은 산벚나무가

곰 발바닥처럼 뭉특하게 남아 있는 가지에 꽃을 피워

우리 앞에 슬며시 내미는 기라

 

두 친구가 산행을 간다. 나이들어 느릿느릿 올라갔으리라.

그러다 특이하게 생긴 늙은 산벚나무 하나 만나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바라보았으리라.

마치 '곰 발바닥처럼 뭉특하게 남아있는 가지를 우리 앞에 슬며시 내민' 것처럼 보이는 산벚나무.

그 늙은 가지에 신기하게 꽃핀 모습을 바라보았으리라.

 

그리곤, 상상이 발동했으리라.

우리 두 친구처럼, 잘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었으리라고,

그 친구들은 산벚나무와 빛깔도 비슷한 늙은 곰이었다면 재밌으리라고...

 

이런 늙은 시선의 뭉특한 상상력이 독자를 사로잡는 멋진 시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의 젊은 시, <붉은 눈, 동백>에 비하면 훨씬 노회한 시로 보인다.

 

 

  

 

 

어쩌자고 저 사람들 / 배를 끌고 / 산으로 갈까요

홍어는 썩고 썩어 / 술은 벌써 동이 났는데 / 짜디짠 소금 가마를 싣고 / 벌거숭이 갯망둥이를 데리고

어쩌자고 저 사람들 / 거친 풀과 나무로  / 길을 엮으며 / 산으로 산으로 들까요

어느 바닷가, / 꽃 이름이 그랬던가요

꽃 보러 가는 길 / 산경으로 가는 길 / 사람들 / 울며 노래하며 / 산으로 노를 젓지요

홍어는 썩고 썩어 / 내륙의 봄도 벌써 갔는데 / 어쩌자고 저 사람들 / 산경 가자 할까요

길에서 주워 / 돌탑에 올린 돌 하나 / 그게 목 부러진 동백이었는데 <붉은 눈, 동백>

                                                                                              - 2000 제 19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산으로 가는 배.

썩은 홍어와 술.

울며 노래하며 산으로 가는 배.

내륙의 봄도 갔는데, 꽃보러 가자는 거?

목 부러진 동백 하나 보고 떠올린, 상여 메고 산으로 오르는 풍경의 상상

길에서 돌 하나 주워, 돌탑에 올리면서,

그게 목 부러진 동백같다고...

붉게 충혈된 눈 들어 바라보던 사람...

 

시가 젊다.

그가 상상력의 바다로 들어간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듯...

상상력의 발걸음을 <집어넣어본다>

 

이 시집에선 온갖 동식물이 마치 도감처럼 살아 나온다.

아니, 그의 꽃씨 가득한 서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인간들이 잠든 사이, 조용히 그들만의 축제를 시작한다.

 

그 축제에 참가한 동식물을 살며시 꼽아보면 이렇다.

 

동물 팀 : 나비, 반달곰, 고양이, 염소, (동사자), 고래, 종달새, 당나귀, 코끼리, 기린, 산토끼

 

식물 팀 : 채송화, 꽃밭, 칸나, 민들레역, 찔레꽃, 산벚나무, 코스모스, 토란 잎, 복사꽃, 살구꽃, 깜부기 삼촌, 오동나무,

              진남교 벚꽃, 사과, 맨드라미, 단풍, 패랭이꽃, 개나리, 나팔꽃 우체국, 백일홍, 사과, 유채꽃

 

무생물 팀 : 황사, 봄, 가방, 촛불, 오월, 만년필, 가을, 빈집, 겨울, 실연, 초원의 빛, 소나기, 소금창고, 손거울, 일식

 

동물원에 갇히거나 식물원에 도감처럼 박제된 것들이 아니라,

마치 시골 장터처럼 흥성한 곳에서 온갖 동식물들이 살아 움직인다.

삶은 팍팍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고,

그저 그날이 그날인 시골 가을 햇볕 비치는 초등학교 담벼락처럼... 그렇게 또렷하게 퇴색된다.

 

그의 시들을 보면, 그렇게 나이듦이 섧지 않다.

 

경북 문경시 진남교반에는

문을 연 지 백 년이 넘는다는

아주 오래된 벚꽃 은행이 있는데요

 

해마다 사월이면 나도 그 벚꽃 은행을 찾는데요

간 때마다 꽃 사태 사람 사태

천지간 온통 희부옇게

벚꽃 인출 사태가 벌어지는데요

 

그렇게 꽃을 퍼내다 그 늙다리 나무

은행 파산하는 거 아닌지 몰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올해는 벚꽃철 맨 끄트머리에 찾아갔는데요

 

늦은 오후, 풀풀 날리는 꽃그늘 아래

한 평짜리 평상 휴게실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빗자루 경비가 들려주는 말,

오늘은 내 앞으로 딱 두 사람

고모산 흰 사슴과

서울 사는 비단 구두 장수가 다녀갔다는데요(진남교 벚꽃, 전문)

 

풍성한 시골 장터의 흐드러짐이 벚꽃 은행을 찾아 가득 만끽하게 되는 시...

 

그의 시 당나귀를 읽노라면 사석원의 당나귀가 떠오른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지 못하고 무거운 짐 가득 지고 날마다 허둥거리리라.

하지만, 사석원의 그림 속에선 당나귀에게 아름다운 장미 다발 가득 선사한다.

 

   

 

이런 집이 있다 구름 안장만

얹어놓아도 힘들다고

등이 푹 꺼지는 게으른 집

그래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갑다고

방울 소리 울리는 늙고 꾀 많은 집

 

아직도 이런 집이 있다

해가 중천인데도 창문에 눈곱이 덕지덕지한 집

집 뒤 갈밭에 커다른 임금님 귀가 산다고 소리쳐도

들었는지 말았는지 기척 하나 없는 여전히 모르쇠의 집 (당나귀, 부분)

 

삶은 팍팍하고 쉽사리 지치게 한다.

그러나 당나귀는 그런 것따위 기척없이,

꿋꿋하게 걷는다.

당나귀처럼 어리석게 사는...

차라리 당나귀귀처럼 사는...

꾀바르고 재바른 짐승보다 어리숙한 당나귀처럼 사는...

그런 상상을 하나부다.

어른의 삶이 너무 재바른 길로 들어서서 스스로 얄미울 때,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의 아무 페이지나 펴서 읽어 보면,

슬쩍 시인 따라서 서랍 속 '그것들의 축제'에 끼일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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