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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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인가, 김지하가 '중심의 무거움'이란 시를 썼다.

그때부터 김지하는 읽지 않았다.

시인이 중심에 놓이는 순간, 그는 '시의 가슴'을 잃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소설가는 좀 다르다.

소설가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데,

그 이야기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면 성공할 수도 있다.

공지영의 '우행시'와 '도가니'가 그런 예다.

그의 다른 책들에 비해 이 두 책은 서사도 치밀하고, 영화도 괜찮았다.

 

신영복이야말로 변방의 지식인이다.

변방이 그를 지식인으로 기른 셈이다.

20년의 감옥생활이 없었다면, 그가 그토록 글을 치밀하게 쓰고, 읽지 못했을 수도 있다.

감옥은 그에게 또 하나의 대학이었다.

 

신영복의 글씨는 변방의 글씨다.

주류의 글씨가 중국의 '전예해행초'를 답습하는 반면,

그의 글씨는 자유로운 행보를 보인다.

물론 기본적 운필은 한자의 필법을 무시하지 않고 있지만, 민중체라고 불릴 만한 힘이 가득한 필체가 유려하다.

 

그의 글들이 놓인 곳을 찾아가는 길을 적은 책이다.

책은 얇고 가볍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읽어낼 수 있는 사유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의 중심은 '글자'라고 생각하여 예술 서적으로 읽었지만,

그 안엔 철학도, 역사도 다 들어 있다.

 

지금... 한국 사회가 가고 있는 곳은, 지옥이 아니라, 현실에서 지옥을 완성시키려는 잠재태인 것처럼 보인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으면서 그걸 사랑이라 착각하고,

가정은 파괴되어 모두 아프나, 누구도 아프지 않은 체 한다.

술집과 모텔은 짝짓기에 혈안이 된 짐승들로 넘쳐나는데, 이렇게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 웃긴다.

대학은 누구나 나와야 한다는데, 대학생들은 실제로 공부를 하지 않고 취업 준비만 한다.

뭔가, 온갖 비명이 다 존재하는 곳...

정치권도, 종교적 집단도, 학교도, 돈벌이의 세상도, 가정마저도...

모두 피비린내와 돈냄새를 향한 똥냄새로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다.

 

<지옥도>를 현실에서 가능하게 할 수 있음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학계가 모두 힘을 합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이 똘똘 뭉쳐 <잠재태>를 <가능태>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지옥도>를 가까운 미래에서 <현재완료>로 진행시키기 위한 정치가 목하 진행중이다.

진보진영은 까발리고, 추잡하게 욕보인다.

이명박 무리의 추잡함은 검찰에서 무죄로 떠든다.

친박의 무리는 무조건 입다물고 조용히 있는다.

지옥도의 완성은 멀지 않아 보인다.

 

신영복의 글자가 있는 곳, 땅끝 마을의 도서관,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 박달재, 서울시청, 홍벽초 문학비...

사연은 달콤하고, 애리고, 서글프고, 눈물겹다...

모두, 변방 아닌 곳 없다.

 

서울 시장실의 글씨를 찾으러 가니, 박원순 시장이 '변방이 중심부로 진입하는 과정'이 역사란 말을 한다. 따뜻하다.

다행이다. 시장이 다섯 살 훈이였으면... 재수 없을 뻔 하지 않았나.

 

변방은 과연, '낙후되고 소멸해가는 주변부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전위'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지...

이성적으로 비관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여야 한다는 그람시의 말을 힘으로 삼아 본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에서 나온다는 말.

저항이야말로 창조이며, 창조야말로 저항이다... 변방에게 들려줄 좋은 말이다.

 

허균, 허난설헌의 기념관에 가서, 매화를 보고는

한고를 겪고 청향을 발하는 매화, 그것도 변방의 창조성으로 읽는다.

 

유감스럽게도 세상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맞추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에게 세상을 맞추려 한다.

어리석게도 세상을 인간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처럼 우직한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조금씩 새롭게 바뀌어져 왔다는 사실...(57)

 

이런 것이 변방을 찾는 의미다.

상원사 표지석을 쓰면서 '分과 析이 아닌 圓融이 세계의 본모습'임을 생각하며 한 돌에 쓴다. 좋은 말이다.

상원사 동종을 치는 구절도 일품이다.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단정하고 겸손한 모습과 달리 종소리는 높은 파도가 되어 온몸을 덮쳤다.

깨달음이란 우선 이처럼 자신이 깨뜨려지는 충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옳다.

종소리는 나를 깨뜨리고 멀리 오대산 전체를 품에 안았다.

나는 나를 남겨 두고 종소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오대산 1만 문수보살의 조용한 기립이 감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종소리는 긴 여운을 이끌고 가다가 이윽고 정적이다.

소리가 없는 것을 靜이라 하고 움직임이 없는 것을 寂이라 한다.

1만 문수보살은 다시 산천으로 돌아가고 세상은 적멸이다.(100)

 

이 책을 쓴 이유는 이것이다.

 

중심부에 대한 환상과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는한 변방은 결코 새로운 창조 공간이 될 수 없다.

중심부보다 더욱 완고한 아류로 낙후하게 될 뿐이다.

 

신영복 선생이 더욱 건강하여 변방의 축성에 많은 돌을 놓아 주시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며 새로 느낀 말 : 순애보(殉愛譜) 따라 죽는 사랑의 기록... 난 대략 순정한 사랑(純愛譜)으로 생각했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을 위해 목숨거는 일을 일컫는다. 한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41쪽. 미황사의 금강스님... 도서관 글씨를 부탁한 장본인이다.... 장본인...은 사고친 넘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좋은 의도일 땐 '주인공'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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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k182s 2012-06-13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왕,, 신교수님 책이 나왔군요,,

글샘 2012-06-14 10:47   좋아요 0 | URL
꼭지가 오래 진행이 못돼서 책이 얇은 아쉬움은 있지만, 내용은 알찹니다.
명불허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