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아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3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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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한 학생이 자살했다.

유서로 보이는 글에서 괴롭힌 학생을 지목했고, 그 학생은 병원에 입원했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그 진실을 밝히는 일도 중요하다.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까지 괴롭힌 사람이 있다면, 그 나이를 불문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진실을 밝히기에 앞서,

청소년 자살 문제에 대하여 지나치게 '선정적' 프레임을 들이대고 있다는 느낌을 사건이 있을 때마다 받는다.

 

선정적... 부채 선, 뜻 정... 감정이 일어나도록 부채질하는 일이다.

작금의 학교 폭력에 대한 과잉 관심은, 작년 12월 한미 FTA 반대 여론을 잠재우고자,

조중동에서 마련한 정책적 프레임이었다.

마치 전 국가적 차원에서 어떤 대책을 마련할 것처럼 날이면 날마다 조중동 1면에서, 9시 뉴스 헤드라인으로 씨부렸지만,

그자들이 한 거라곤... 각 교육청에 '학교폭력과'를 만들어서 장학사를 배치해서,

공문이 졸라 많아진 것 외엔... 아, 보고 공문이 무지무지 많아진 것 외엔... 별로 없다.

 

학생들은 자살한다.

물론 한국 학생들의 자살률이 뭐, 세계 1위란다. (1위 무지 좋아하는 나라면서? 저출산 1위, 고령화 1위, 교통사고 1위 ㅎㅎㅎ)

근데, 학생들을 죽음으로 모는 <사회의 프레임>에는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다.

학교 폭력이 일어나면, 그 원인을 묻지 않고 가해자를 처벌하려고만 한다.

사회가 문제고 학교가 문제인데, 가해자만 문제란다. 이런 젠장~

 

조금 핀트는 다르지만, 얼마 전 김연아의 교생 실습은 '쇼'라고 실언한 교수가 있었다.

솔직히 교생 실습은 한다손 치더라도, 김연아가 체육교육과 4년의 커리큘럼을 이수해서 졸업하는 건 아니잖은가?

한국의 엘리트 체육의 문제는 비껴가면서, 그 교수의 실언 한 마디만 문제인 것처럼 몰아붙인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조차도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판국에 말이다.

김연아는 개인이 아닌, 개인 기업 수준의 부를 획득했다.

그 말고, 그늘에서 시들어가는 '엘리트 학생 선수'들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하는 멍청한 사회, 불쌍하다.

 

이 소설은 무지 재미있다.

엄마는 해외로 간다. 무슨 봉사 기구에서 일하는데, 암튼 사라진다.

아빠는 전세를 빼서 탐정 사무소를 차린다. 헐~

근데, 그 사무소에서 하는 일은 주로 고양이 잡기다. 코믹 설정.

 

문제는 이쁜 여학생이 사건을 접수한다.

여동생의 물건 하나를 찾아달라는 사건.

그런데 며칠 후 여동생의 자살 사건이 발생한다.

 

이 소설의 장점은, <선정적 프레임>을 들이대지 않는 데 있다.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가해자의 색출과 가해자 처벌이 중요하지 않다.

일단 아이의 죽음이 발생했다면, 그 아이의 죽음에 모두들 '애도'를 표할 수 있어야 한다.

타살이라면 진실을 밝히는 일이 가장 우선이지만,

단순 사고사 내지 자살이라면 죽음을 둘러싼 애도를 통하여 주변 사람들도 충분히 치유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도, 실제 사회에서도...

학교에서 아이가 죽으면 학교는 공황 상태에 빠진다.

애도와 치유보다 <선정적 프레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급급할 따름이다.

 

죽은 아이의 급우, 조금 터프하게 생긴 플룻부는 여학생, 유가련(이름만 가련)의 입을 빌려 작가는 하고 싶은 얘길 한다.

 

"5W1H.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그런데 뉴스를 보면 '왜'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아.

'왜'만 빼고 보도하는 건, 기자 아니더라도 그 자리에서 구경한 사람이면 다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꼭 필요한 것을 뺀 뉴스가 무슨 뉴스냐?

우 달려들어서 실컷 떠들어댈 뿐이야.

그러다 싫증 나면 금방 잊고 잠잠해지겠지. 웃기지 않냐?"

 

한국에 뭐 언론이 제대로 있길 하냐고 묻는다면, 하긴 그렇다... 할 수 있지만,

그 프레임의 문제를 직시하는 소설은 드물다.

 

소설의 주인공인 탐정의 아들 역시 초딩 시절 곤란을 겪었다.

 

놈은 내게 중요한 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았다.

친구들과 함께 놀고, 급식을 같이 먹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 시간을 내게서 빼앗아 간 것이다.

그 시시한 시간이야말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사실 학교는 그 시답잖은 시간을 위해 가는 것 아닌가?

 

내가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때 몽키는 딱 한 마디 했다. 웃기시네~

어설픈 복수극을 연출하거나 서투른 증오심을 불태우는 일 없이 나는 몽키와 같이 학교를 가고,

따로 수업 시간을 견디고, 같이 집으로 돌아와 만화책을 들여다보며 낄낄거렸다.

몽키의 깜짝 놀랄 만큼 무심한 태도가 내게는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몽키만은 나를 믿어 줬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종종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늘 어두운 교실에 홀로 앉아 있다.

 

다시 김연아...

엘리트 학생 선수들이 잃어버리는 시간이 바로 저거다.

시답잖은 시간을 위해 가는 학교... 오로지 대회만을 위해 달리는 그들은 체육 기계 이외의 학생은 전혀 아닌 것이다.

피해자에게도 충분히 위안이 될 수 있는 글이다.

그리고 학교와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하는 글이다.

 

가해자의 의식 역시 명료하게 제시된다. 섬뜩하다.

 

"그게 즐거웠던 거니"

"왜? 안돼? 그런 애는 수도 없이 생겨날 거야.

밟히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밟아야 하는 걸 애들은 알거든."

"왜 꼭 누군가를 짓밟아야 하는 거지?"

"몰라. 하지만 우리 그렇게 배우지 않았니?

살아남으려면 약한 것들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고.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잖아.

그렇게 가르쳐주고 이제 와서 잘못했다는 건 너무하잖아.

우린 배운 대로 했을 뿐이야."

 

그래, 분명 어른들의 잘못, 사회의 잘못도 크다.

다시 피해자 의식으로 들어가 보자.

 

내게 초등학교 6학년 2학기는 검은색이다.

지워버리고 싶어 덧칠하고 또 덧칠했다.

누군가 기억한다면 그놈의 머릿속도 지워버리고 싶다.

아마도 다들 잊었을 것이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한 일이니까.

기억하는 건 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뿐이다.

 

하지만 나는 죽을 힘을 다해 견뎠다.

그놈에게는 사소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잊지 못한다.

빠져나왔다고 생각하지만 늘 어두운 터널 속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기억하는 건 상처입은 사람들뿐인지도 모른다.

 

만약 사망한 당사자 오유리의 일기 같은 걸로 이야기를 풀었더라면,

눈물이나 찔찔 짜는 신파가 되어,

또 역시 엉뚱한 프레임에 갇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오유리의 죽음에는 덧칠하지 않는 기법으로 건너간다.

오유리가 언니에게 보낸 편지는 오히려 가벼워 다행이다.

주인공 아이의 독백을 통해, 학교 폭력의 해결책도 제시된다.

문제는 '자신'인 셈.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 생각했던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나는 건 아무래도 나한테 달린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쯤은 내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터널 끝에 손톱만 한 빛이라도 비쳐야만 그 빛을 따라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내게는 병아리 발톱을 끔찍이도 무서워하는 얼간이가 하나 있다.

어쩌면 듬직한 등짝을 지닌 녀석도 손을 내밀어 줄지 모른다.

아빠 명탐정도 내가 어두운 터널 속에서 서성인다면 아마도 그들은 내 엉덩이를 차서 터널 밖으로 날려 버릴 것이다.

그 정도라면, 나쁘지 않다.

 

해결책의 핵은 '자신'이고, 그 부차적 '빛'으로는 가족과 친구가 필요하다.

가족을 해체하는 한국 사회.

맞벌이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경제적 부담,

과중한 업무로 인한 늦은 퇴근...

사회가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피해자와 가해자 학생에게만 잘잘못을 묻는 일은,

결국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책임 회피>에 다름없다.

 

이 소설은,

피해 학생, 가해 학생 모두에게 읽힐 만한 책이다.

마침 학교 폭력에 관심이 많은 시즌이니,

교육청에 널리 알려서, 초등학교 고학년~ 고등학생 정도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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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굉장히 싸게 팔대?... ~하더라 의미일 때, 팔더라... 니깐, '팔데'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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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무 2012-06-1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역시 글샘 짱!!!

글샘 2012-06-10 16:55   좋아요 0 | URL
공감에 감사를 표합니다. ^^
소설이 좋아요. ㅎㅎ

2012-06-12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2 0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2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2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