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여 나의 산하여 - 감성시인 고은의 북한 순례기
고은 지음, 김형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5월
평점 :
절판


유홍준 교수와 함께 북녘 땅을 밟고 쓴 기행.

유홍준 교수의 적확한 묘사, 적절한 자료의 인용과 어우러진 풍부한 입담의 교술성에 비하여, 고은의 이 글은 감격에 치우쳐 오히려 감상이 부족한 글이 되고 만 느낌이다. 차라리 그의 시들은 좋은 작품이 있는 반면, 정말 시가 나와야 할 장면에서 얼버무리거나 입을 닫아버린 부분이 많아 불만이었다. 그보다는 우리가 지리지라고 알고 있는 이중환의 택리지의 한 대목이 얼마나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미적 감상을 갖추고 있는지...

산 복판에 정양사가 있고 절 안에 헐성루가 있다. 가장 요긴한 곳에 위치하여 그 위에 올라 앉으면 온 산의 참 모습과 참 정기를 볼 수 있다. 마치 구슬 굴 속에 앉은 듯 맑은 기운이 상쾌하여 사람의 장위 속 티끌 먼지를 어느 틈에 씻어버렸는지 깨닫지 못한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자연이 아니라 차라리 예술인 금강산에서 옥구슬처럼 흐르는 옥류, 길이 편안한 장안, 푸르디 푸른 청천, 조선 천하의 풍류처 삼일포 뱃놀이를 잡아내는 그의 시선은 역시 시인의 그것이었다.

똑같은 모국어를 쓰는 축복을 아직 간직한 분단 국가. 하루 아침에 통일이 이루어질 지 모르는 운명을 지닌(이 점에서 나는 많은 통일론의 지적 성과들을 믿지않는다)던 그의 시각은 차라리 솔직하여 공감을 얻었다.

김형수의 시원스런 사진맛과 어울린 이런 글은 중앙일보에 연재되었을 때는 감격에 겨워하는 멋을 느낄 수 있었으나, 책으로 묶은 것은 무리한 작업이었다는 생각 떨쳐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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