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쓴 책
데이비드 미첼 지음, 최용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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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지배하는 분.

초월자가 등장하는가 하면,

옷으로 싸인 고기, 고기로 싸인 장기... 이런 것이 인간으로 상정되기도 한다.

 

이 책의 유령은 고정된 형태로, 하나의 존재로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 몇 편의 이야기는 그 유령의 형태가 다양함에 힘입어,

마치 사진의 배경에 우연히 찍힌 존재들에게서 기시감을 느끼듯한 재미를 엮어내기도 하는데,

이야기가 길어짐에 따라 통일감이나 찰진 연결 고리를 놓쳐버리는 느낌에 시들해지게도 한다.

 

결국 유령을 매개로 하여 이어지는 이야기들이므로, 제목도 '유령이 쓴 이야기' 정도가 낫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문에 단 종이 울리더니 공기가 확 움직이고 가게에 있는 모든 종이들이 바스락거렸다.

 

이렇게 미세한 파동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면, 스스로 유령이라 일컬을 만 하다. ^^

음악과 관련된 언표들도 이 소설의 재미를 돋워줄 수 있다.

굳이 음악을 듣지 않더라도, 글의 흐름 자체가 음악적이다.

 

평소에는 조용히 느릿느릿 나무 아래를 흘러가다가, 바람이 스치면 물결이 이는 냇물같은 앨범.

또다른 노래들에서는 내해에 닿아 반짝이는 화음들...

 

작가는 세계 각지의 상황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등장시키려고 하고 있는데, 그것이 응집력의 약화를 부르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벚꽃이 지면서 공중에서 이리저리 흩날릴 때만 아주 잠깐 가장 완벽한 거야...

내 생각에는 오직 우리 일본 사람만이 그걸 이해할 수 있다 봐.

 

유령의 모습을 단적으로 그린 부분도 있다.

그러나, 놈들...의 모습은 인간의 일면이기도 하다.

 

당신은 놈들이 오는 모습을 절대 볼 수 없다.

놈들은 남들이 보지 않고 지나치는, 그리고 먼지를 털어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놈들은 거대하게 자라고,

그 동안 당신은 놈들의 진짜 모습은 물론이고 존재에 대해 꿈에서조차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날, 때가 되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힐끗 보게 되고 빗장이 풀리면서......

 

인간들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려 한다.

보기 싫고 믿기 싫어하는 것들은 억지로 외면하고 눈감으려 한다.

그렇지만, 사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고, 인간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사실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힐끗 보게 되고 빗장이 풀리는...

그런 '우연'성이 인간에 대한 본질에 다가서는 유일한 열쇠 풀림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등대가 각자의 독특한 신호를 가지고 있듯 모든 마음은 특유의 방식으로 신호를 보낸다.

어떤 마음은 변함없이 신호를 보내고 어떤 마음은 변덕스럽게 신호를 보낸다.

어떤 마음은 미적지근하고 어떤 마음은 뜨겁다.

어떤 마음은 이글거리고 어떤 마음은 거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

어떤 마음은 퀘이사처럼 주변부에 자리잡고 있다. ... 내 경우 동물과 인간은 각각 다른 등급과 색과 중력을 가진 별과 같다.

 

이렇게 인간에 대한 탐구가 이어지는데,

그들이 벌이는 사랑, 탐욕, 살인, 살상 들은 모두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들이지만,

어쩌면 운명이 벌이는 장난일 수도 있겠다. 인간은 자신이 저지르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 있는 존재니까.

 

그래서 인간의 운명과 우연성에 대한 탐구는 '원인'에 치중하는 사색이다.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면서, 늘 '원인'을 밝히려 든다.

그것이 낳은 결과가 눈앞에 처참하게 널부러져 피흘리고 있는데도, 굳이 외면하면서...

 

갑자기 당신이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즐긴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당신은 '결과' 얘기는 절대로 안 하잖아요.(437)

 

결국 인간은 존재의 의미 파악에 관심이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유령이 들여다본 인간은, 참 시시하고 시들한 것이었는지도...

쪽팔려서 그들이 저질러 놓은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려고도, 개선을 꿈꾸지도 않으니 말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

모든 것이 담긴 테이프가 당신 손에 있다. 우연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모든 결정과 임의로 떨어지는 공의 방향은 이미 운명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운명인가?

음, 그 답과 시간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이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면, 삶을 지배하는 것은 우연이다.

하지만 당신이 읽고 있는 책처럼 외부 관점에서 보자면 삶을 지배하는 것은 늘 운명이다.

내 삶은 우물이고 나는 바로 그 우물 안에 있다. 우물은 깊고 나는 아직 바닥에 닿지 못했다.

 

결국 '상대적'이라는 말로, 운명을 설득하려 한다.

작가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온 세계를 돌아온 거리감의 피로도에 비하면, 응집력이 약해져 버린 느낌인데,

그의 인간에 대한 탐색 내지 사색의 내용들은 제법 거둬들일 것들이 있다.

 

능동적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살 수 있는지,

어쩔 수 없이 자기 삶이란 의식도 없이 마지못해 사는지...

우연이 춤추는 자신의 삶의 앞길에서 고통에 몸을 내어 맡기고 흔들리는 춤을 추며 걷는 삶도 아이러니지만,

그는 적절한 고도를 유지하면서 날아가는 새의 시선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인 반면,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힘겨워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삶의 비척거림 역시 아이러니라면,

그는 방향감도 거리감도 다 놓쳐버린 걸음인지 비틀거림인지를 반복할 수도 있겠다.

 

유령이 들려준 이야기를 듣노라면,

당신이 어디에 살든, 무슨 일을 하며 살든,

오늘이라는 '우연'의 선물을 한번 들여다보라는 충고를 나즉히 들려준다.

그 목소리는 여성의 그것도 남성의 그것도 아니지만,

당신이라는 삶의 우물물에,

한번쯤 철버덩 하고 두레박을 던져 시원한 물을 길어올리기를 권해준다.

 

 

----------- 틀린 맞춤법...

 

98. 쉬흔 번째로... 쉰 번째로

306. 횡경막을... 횡격막을

502,. 걸프 만의... 걸프 =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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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5-2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가 왕 사랑하는 책이지요.
요 위, 샘 리뷰에서도 언급되지만...
'나로 인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를 깨닫게 되는 순간,
삶은 유령같은것이 되기도 하고, 운명이나 우연 같은 것이 되기도 한 걸 보면 말이죠.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ㅋ~.

글샘 2012-05-23 08:4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삶은 '... 때문에'나 '... 덕분에'란 말 한 마디 차이로도,
운명같은 순간을 맞기도 하고, 유령처럼 쓸쓸해 하게도 되는 거겠죠.
좋은 리뷰~라시니... ^^ ㅋ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