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천국과 지옥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기다란 숟가락으로 제 입에 넣으려 애쓰다 굶주리는 곳이 지옥이라면,

똑같은 숟가락으로 서로 먹여주는 화기 애애한 곳이 천국이라는...

그런데, 두 곳 다 흥미 없긴 마찬가지다.

먹는 거, 그걸로 연연해한다면 차이는 없다.

 

고 최진실 씨는 교회를 안 다녔나보다.

한 성령 충만하신 목사님이 고인을 지옥에서 만났다는 걸로 봐서, 그분은 지옥을 수시로 다니시는 듯.

세상은 늘 지옥이었는데, 뭐, 새삼 지옥을 가보시려고... ^^

 

최영미, 그가 영시를 번역하고 감상도 덧붙인 책이다.

유명한 작품들, 예를 들면 워즈워스나 바이런, 릴케 등의 시는 당연히 실렸다.

동양 시인들, 중국, 일본 뿐 아니라 인도의 시인들도 제법 있다.

 

반짝이는 금속조각처럼 허황한 일생인데

삶의 비결을찾느라 시간을 낭비할 건가 - 벗이여!

거짓과 진실은 머리카락 한 올 차이인데-

그대는 무엇에 의지해 인생을 살려는가. (루바이 49)

 

12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오마르 카이얌의 4행시 '루바이야트'의 시란다.

역시 영감이 풍부한 쪽은 동양이다.

서양의 시들로 가면 영 싱겁다.

나도 대학 시절, 프랑스 시학에 경도된 교수 시학을 졸면서 수강한 일이 있어서,

서양 시인들의 번역된 시집을 숱하게 읽은 일 있었으나,

감동적인 것은 거의 없고, 이게 번역의 불가능에서 기인한 건지, 번역의 띠방함에서 기인한 건지... 이러고 말았다는...

 

누구든 그 스스로 완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부분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흙덩이가 바다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지며, 어떤 높은 곶이 바다에 잠겨도 마찬가지,

그대의 친구들 혹은 그대 자신 소유의 땅이 물에 잠겨도 마찬가지니라.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느니. (존 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헤밍웨이가 이렇게 멋진 말을 했는줄 알았는데, 음, 표절이었군. ㅋ

 

모든 감정은 사랑으로, 정열로 이끌어질 수 있다.

증오도, 연민도, 냉담도, 존경도, 우정도, 공포도 -

그리고 멸시까지도 그렇다.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단 하나 감사만을 빼놓고.

감사는 - 부채, 사람은 누구나 부채를 갚는다......

그러나 사랑은 - 돈이 아니다. (투르게네프, 사랑에의 길)

 

인간의 감정을 모두 사랑으로 귀결시키지만, 감사는 제외하는 시인.

그것은, 사랑하는 이에게 왜 '감사'를 말해선 안 되는지...

그걸 깊이 생각한 시로 읽힌다.

감사는 부채의식에서 나온 것인데,

사랑은 뭔가를 갚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주는 감정의 발현임을 강조한 시겠다.

뭔가 엉성하다. 번역이 엉성하든가... 내 머리가 엉성하든가...

 

탁자 위에 오렌지 한 개

양탄자 위에 너의 옷

그리고 내 침대 속의 너

지금의 달콤한 현재

밤의 신선함

내 삶의 따사로움. (프레베르, 알리칸데 : 스페인 항구도시)

 

야하다. ^^

그렇지만, 가벼운 야함이 아니라 따스함이 함께한다.

이보다 달콤한 현재를 그릴 수 있으랴?

 

내가 제일 예뻤을 때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나는 너무나 안절부절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제일 예뻤을 때)

 

같은 제목의 공선옥 소설집으로 듣게된 제목.

그런데, 일본인들은 늘 이렇게 자기들이 피해자임을 강조한다.

분명히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전한 국가이면서,

패망의 슬픔만을 강조하다 보니, 일본은 불쌍해 보인다.

그런 일본의 생각이 외려 더 불쌍하다. 왜, 있었던 일을 인정하지 못하나?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 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신동엽, 그 사람에게)

 

호젓한 인생론이다.

만날 때, 뜨겁게 만나야 한다.

다시는 못 만날 것 처럼...

(불만 사항. 이 시처럼 간결한 시에선, 콤마 하나 마침표 하나가 참 중요하다. 이 시의 콤마와 마침표는 더 고쳐야 할 거 같다.)

 

저 어두운 녹색의 언덕 위에

안개가 흔적을 남기지 않듯이

내 몸은 당신에게 영원히

상처를 남기지 않을 거야.

 

바람과 매가 부딪칠 때,

하늘에 무슨 흔적이 새겨질까?

그렇게 당신과 나는 우연히 만났지,

그리고 몸을 돌려, 그리고 같이 잠들었지.

 

달도 별도 없는

많은 밤들을 견디었으니

한 사람이 멀리 떠나더라도

우리는 참아야 하겠지. (레너드 코헨, 안개가 흔적을 남기지 않듯이)

 

남녀의 운우지정을 '몸을 섞는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인간은 몸을 섞을 수 없다고... 아무리 결합을 꿈꿔도... 몸은 섞이지 않는다고...

인간의 외부성.

그래서 당신은 언제나 타자일 뿐.

 

그걸 아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상처입히지 않고 깊이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암튼,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한 것 같다.

삶의 숨은 뜻을 찾아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시를 쓰고, 읽는 것 아닐까?

이런 면에서, 시집을 찾아 펴는 일은,

삶의 비기를 펼치는 일의 출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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