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의 다시 한국의 지식인에게 당대총서 11
한완상 / 당대 / 2000년 4월
평점 :
품절


한완상. 하면 민중과 지식인의 저자로 먼저 떠오른다. 그분의 강의는 숱한 예들로 재미있었고, 그분이 교육부장관 할 때는 실망스럽던 기억들.

80년대의 최루탄 냄새로 기억나는 그 이름을 새삼 읽는데,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개혁이란 과제는 그대로이다.

냉전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제 3의 길을 모색하던 시기에도 우리는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 사이 보수 꼴통들은 타워팰리스를 짓고, 견고한 성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이 시대의 지식은들은 앙가주망(engagement)에 얼마나 당당한가. 게오르규의 25시에 나오는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불의에 대항하는 바로미터로써 지식인이 쓰이고 있기나 한 것일까.

한완상 교수의 삶의 조각조각들이 모인 책인데, 개혁에 대해 적은 부분은 상당부분 동감이 간다. 그러나 잡문들을 너무 한꺼번에 엮은 것은 책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 같고, 하드커버로 둘러친 성곽은 그도 이제 개혁을 이야기하는 성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는 개혁을 시대적 소명이라고 하면서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렵다. 막강한 반개혁세력에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개혁의 주체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효율성있게 작동되어야 한다. 개혁좌절과 냉전 구조의 관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논지를 편다.

한국에서 근대화의 논리는 효율성을 억제하는 기능으로 작용해오고 있다. 박근혜 공주를 보면 그 논리의 허구성을 알 수 있다. 대형 승용차가 즐비한 천막 당사의 모습. 그리고 우리는 반개혁, 가해자 세력을 처벌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리고 선안정 후개혁의 논리에 맞서야한다. 경륜과 전문성의 논리 말이다. 언제 우리에게 경륜을 쌓을 기회를 주었나? 미국유학파가 쌓아올린 경륜의 타워팰리스와 신자유주의에 빌붙은 전문성의 성곽에 해자를 파고, 민중들과 강고하게 대치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조선말 동학농민군을 일본군을 시켜 몰살시킨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개혁의 몸통과 날개를 이야기하는 그는, 개혁의 틈바구니에서 개혁이 얼마나 불가능할 정도로 강고한 적에게 저지당하고 있는가를 익히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쓰던 당시만 해도 그는 아직 순수한 학문적, 학자적 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개혁의 몸통은 원칙과 비전에 충실해야하고, 개혁의 날개는 실용적 지식과 화합에 효과적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기억한다. 전교조 이수호 위원장과 한완상 교육부장관이 만났던 자리에서 '알고보면 교육부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적은지 모른다'고 하던 그 나약하던 거짓말쟁이의 모순을. 책에는 실용적 지식과 화합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무기력한 테크노크라트로 전락한 시대의 비운을.

그는 장,중,단기 개혁의 청사진이 필요하고, 전투를 지휘할 개혁상황실이 필요하고, 몸통과 날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시킬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하지만, 지금의 대통령으로서도 이럴 능력이 없음이 밝혀졌다. 우리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만델라와 같은 비전과 소신과 사랑을 가진 대통령을 기다리기 까지는... 대통령이 그것들을 이뤄주길 바라는 것 자체가 허상일 지도 모른다.

마땅히 변화되어야 할 것들은 온고의 이름으로 보존되어 가며, 변화되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은 지신의 이름으로 훼손되어 가는 현실. 냉전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이 땅은 냉전근본주의가 판을 치는 동토의 제국이 되어 개혁의 백일몽을 꾸고있는 것인가.

솔직히 별표 넷도 그분에 대한 추억의 향수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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