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내한테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꼬 - 이지누가 만난 이 땅의 토박이, 성주 문상의 옹
이지누 글.사진 / 호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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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란 영화가 십만을 넘었다고 해서 유명해졌던 때가 있다.

경북 봉화라는 산골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이 가감없이 연출된 독립 영화였는데,

워낙 투박한 사투리라 경상도 말이라면 어지간히 알아듣는 나도 자막이 없으면 알아듣기 힘든 녹음 상태였던 기억이 난다.

 

이지누가 성주의 문상의 옹을 찾아가 정을 붙이고, 일도 도와주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할아버지의 사진도 찍고 한다.

 

이 책의 절반은 이지누가 할아버지를 찾아간 이야기고, 절반은 사진에 얽힌 이야기다.

경상도 사투리로 '이바구'로 적힌다.

 

표준어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도 있을 것이지만,

대~충 분위기로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인과 젊은이의 만남은 어색한듯 어색하지 않게 흘러가는데,

거기는 문 할아버지의 삶 자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매일매일이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그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할아버지의 삶에서는 식물성 냄새로 가득하다.

결국 할아버지에게서 찔레꽃 냄새까지 맡게 되는 것인데,

그 냄새는 인격에서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고, 인생에서 맡아지는 것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사는 우리들은 온통 매연과 인간이 퍼뜨리는 붉은 먼지의 악취 속에서 살아간다.

옛날 사람들이 속세를 '붉은 먼지 紅塵'라고 불렀던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를 보고 읽으면서, 전우익 선생님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연결이다.

전우익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어려운 말 하나도 없이 진리에 가까이 가듯,

권정생 선생님의 글들이 쉬운 말로만 되어있어도 불후의 명작이듯,

잘난 체 하며 자기 가진 것을 수치화하려는 속물들에게 할아버지의 삶은 그대로 '자연'이다.

명사로서의 'nature'가 아닌 '원래 있는 그대로'라는 부사적 용법으로서의 '자연' 말이다.

 

할아버지에게는 '시간'이란 개념이 없다.

아적(아침)과 점심, 저녁 정도의 분류만으로도 충분히 살아낼 수 있다.

물론 할아버지가 사람에 그리운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자연의 삶 속에서 사람 역시 없어도 자연스럽다.

할아버지는 최소한의 '도구'에 기댄다.

장자에 나오는 '기심'을 굳이 끌어다 댈 필요도 없는 좁은 논에서 그 도구는 유용하다.

'머라카노, 손이 젤이라.' 이러면서 말이다.

 

할머니 묘 옆에서 햇살을 쬐며 약나무를 쪼개는 할아버지.

사람이 없는 산골짝에서 죽어버렸지만 양지바른 녘에 누운 할멈이 유일한 '이야기 상대'였을 거다.

거기가 제일 따뜻하기도 한 자리니, 거기서 작업을 하며,

이미 저세상 간 아내와 두런두런 마음을 쬐었을 거고 말이다.

사람이 자연스럽게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는 이렇게 따뜻하다.

소통의 다른 말이 사람과 마음을 쬐는 행위인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가족이 있다면 '소'다.

워낭소리에 등장하는 노인들은 부부가 함께지만, 할아버지에게 소는 가족이자 온기를 쬐는 존재다.

'애완'이란 이름을 등장하는 동물들에게서 느끼기 힘든 연대감이 이 둘에게서 느껴진다.

이미 오래 겪어와서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소통과 교감이 이들에게 가득하다.

50미터 남짓한 거리를 소와 함께 소요하는 할아버지.

장자가 말을 빌려서 '소요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역시 '말일 뿐'이다.

실제로 소와 함께 그 거리를 소요할 줄 아는 마음, 그걸 이지누가 보고 적는다.

 

요즘 농사는 과학이라 합니다.

그러나 할배의 농사는 하늘이었습니다.

태양과 달빛 그리고 이슬과 바람, 비와 사람이 동시에 일구는 농사라는 말입니다.

할배가 소를 끌지 않고 그저 붙들고 따라가기만 하듯이

할배의 농사는 그저 하늘을 바라보는 기다림의 연속이지 싶습니다.(67)

 

이렇게 작가는 새경 대신 공부를 얻어 온다.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은 자꾸 늘어가는 물질만은 아니다.

정말 삶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근원으로 돌아가 물어보는 일은 그래서 늘 새로워보인다.

하늘 아래서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는 일인데 말이다.

 

그림 공부를 더 해서 그리고 싶은 그림이 몇 장 있는데,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도 한 장 구해놓고 있고,

이제 문상의 옹의 사진도 한 장 갈무리해 둬야겠다.

삶 자체가 두고두고 가벼운 배움의 도에 가까운 사람들은 도처에 깔린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인생 도처 유상수'라고 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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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4-23 0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은 진짜 책도 많이 보고 리뷰도 열심히 쓰셔요~~~~ ^^

2012-04-23 0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5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