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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책은, 이쁘다.
표지에서 타이프체로 씌어진, 그리고 '러시안 커피'보다 맛있어보이는 발음.
새로 만들어진 어떤 당의 로고가 떠오르는 커피잔.
매력적인 아가씨가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정면을 응시하는 사이로... 커피의 김이 피어오르고,
금세라도 진한 에스프레소 향이 밀려들 듯 하게 생겼다.
그리고 책의 사이즈도 아담한 것이 손에 마춤하게 잡히고,
각 장의 첫머리엔 디자이너 박상희 munge(아, 먼지, 이런 단어 쓰는 삶도 좋아한다.)의 그림이 단정하게 놓여있다.
그 그림들은 바리스타 입문서를 베낀 듯한 이미지인데, 필선이 부드럽고 귀엽다.
허나, 이 소설은... 별로다.
술~술 읽히긴 한다.
무엇보다 흥행하지 못한 영화가 스크린에서 후다닥 내려올 것을 두려워하여
하루 두 번밖에 상영하지 않는, (그것도 조조, 오후 2시에...) 영화 <가비>를 보러갔던 기억이 있어서,
이야기는 대략 알고 있었지만,
대략 난감인 것은, 김탁환의 문체다.
장윤현은 영화 '가비'에서 김소연의 캐릭터를 '눈을 아래로 내리 깔고 커피 내리는 일에 혼신을 다하는 바리스타,
그 바리스타의 영혼을 보여줄 듯한 자태와 수려한 외모'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삶은 사기꾼이었으나, 사기꾼의 필수 요건인 '진정성이 가득 담긴, 심지어 뚝뚝 떨어지는 외모'로.
그런데, 원작의 따냐의 문체로 된 소설을 읽으면서, 내 귀엔 자꾸 주진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힘들었다.
영화를 보러가면 거친 줄거리를 적은 시놉시스를 보여주는 찌라시(팸플릿, 안내장보다 이 말이 가슴에 닿느다.)가 있다.
이 소설은 그 찌라시를 조금 구체화한 것처럼 거칠다.
이 소설은 좀더 매력적으로 부드러워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김탁환의 마음 속에 로망처럼 자리하고 있는 무협지의 스펙터클을 감당하기 힘든지는 모르겠으나,
따냐에게 더 애정을 담고 있다면,
따냐를 충분히 여성적인 이미지로, 부드럽고 달콤한 커피향처럼 녹여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랬다면 상대적으로 좀더 거친 이미지의 이반이 에스프레소 향처럼 자극적으로 강렬했을 수도...
발자크를 들먹여가며서 소설 노동자를 자처하는 이에게 용기는 못 줄 망정,
들입다 까는 건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김탁환의 전작들이 '역사'에 '서사'라는 옷을 거칠게 입혀 쉽게 읽지 못했던 것처럼,
이 작품은 '역사'에 '충무로식 시놉시스'라는 조각보를 둘러놓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한국 영화를 운운할 정도로 꿰뚫고 있는 마니아는 아니고,
뭐, 늘 유명한 영화를 봐야하는 직업이어서 강박적으로 보러 갔던 정도의 후기 적응자 정도인데(친구를 500만이 넘었대서 야간자습 감독 마치고 11시 반에 본 일도 있고...)
사기꾼이란 캐릭터는 '범죄의 재구성'에서의 박신양이 떠오르고, 염정아란 파트너도 있었고,
'타짜'에서 매력적이었던 정마담이 지나치게 따냐에게 빙의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따냐와 이반이 종횡무진 누볐다던 시베리아 벌판에서 왜 자꾸 나는 자꾸 '놈놈놈'의 만주 벌판이 떠오르는 것이냔 말이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란 영화가 있었다.
헐리우드 영화를 죽어라 보다가 영화 감독이 된 최민수의 영화는, 결국 헐리우드 영화의 아류로 판명된다는 줄거리였던 거같다.
소설 노동자 김탁환이 인문대 5동 커피자판기에서 뽑아먹던 100원짜리 커피의 맛은,
최루탄 가루 가득했던 80년대의 황량한 광야에서 슬픔을 달래주는 유일한 단맛이었을 것이다.
김탁환의 필력과 노동력이라면,
이제 21세기의 슬픔을 진심으로 어루만져 주는 캐릭터를 창조해 줄 힘이, 있어 보인다.
'열하'를 애인보다 더 사랑했던 '명은주'처럼 짜릿한 캐릭터가 21세기 한국의 서울에서 살아간다면,
그녀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내는 것만으로도,
김탁환은 그 이름처럼 '탁월한 환쟁이'가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싶은 아쉬움은 많이 남는다.
그의 글은 리얼리즘적 요소가 강하다.
그것이 그저 모작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 대한 리얼리즘의 승리'를 보여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 '충무로 키드'의 탄생을 보여주면, 어쩌자는 것인가 말이다.
진한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