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상대의 아픔을 보지 못했다
유정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말은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 놓여 소통의 문을 연다.

그렇지만 상대의 말을 듣기 싫을 때, 또 말은 벽이 되기도 한다.

 

내가 볼 때, 박근혜처럼 한 말 또하고 또하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내 귀에서 흩어지고 말지 대뇌까지 전달되지 않는데,

어느 식당에서 박근혜를 무지 사랑하는 아줌마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비방하는 말을 들으니 또 그이에겐 박근혜의 말들은 생명수와 같았던 모양이다.

 

한국에서 '말'은 소통의 기능보다는 벽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최대의 폭풍은 김용민이었는데,

조중동이 악의적으로 확대해석 한 것을, 특정 집단이 과대포장하여 방송까지 도배한 것으로

김용민은 최단 시간에 최악의 정치가로 등극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bird-world-party는 급조된 것이므로 무시하고)이 제1당이 된 것은,

박근혜의 승리라고 볼 수 없다.

야당 제1당인 민주당이 너무도 바보스런 행보를 보였기에, 국민은 '차악'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 와중에 김용민이 당하는 걸 보고, 속수무책 얻어터지고 있었던 걸 보면... 한심한 당이다.

김용민의 발언이 정상적 발언은 아니지만,

미군이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적군에게 폭행과 추행을 범했을 때 있었던 욕설이었다는 맥락에서 보면,

전범에 대한 욕설로 볼 수 있는 개연성이 더 큰 것이다.

그걸 맥락 제거하고, 여성을 강간하는 변태로 해석해버리고, 언론은 그걸 대서특필한 거라고 하니, 한심하다.

 

그렇지만, 김용민과 김구라의 '언어 행위'는 기록으로 남아 그들의 발등을 찍었다.

도대체 정치적 비판의 언어가 제대로 소통된다는 것이 한국에서 가능한지... 의문이다.

 

유정아의 서울대 말하기 강의에 힘입어, 이번엔 소통과 공감에 대한 책을 썼다.

(요즘 서울대 교수들 신났다. 책의 품질에 비하여 판매고는 무지하다. ㅠㅜ 곽금주, 김난도, 최재천, 유정아까지... ^^)

이 책은 뭐, 뾰족한 매력이 넘치는 책은 아니다.

그리고, 말하기에 큰 도움을 주는 책도 아니다.

이명박의 월요일 주례방송을 모니터링하면서 그의 언어 행위가 주는 한계를 적었다.

(참 힘들었겠다. 그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는 일은... 휴 =3)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믿는 놈은 바보다.

정치적 언술, 특히 대통령의 말은 번지르르한 '수사'로 뒤범벅이 되었기 때문에,

언표의 겉을 휩싸고 있는 질펀한 조청의 늪을 걷어 내야 속내가 보이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을 위하여 싼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였다... 의 속내는 미국이 소고기 사라고 졸라 압박했다... 이며,

국가 경쟁력을 위하여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의 속내도 미국이 무지 압박했다... 이고,

언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미디어법을 통과시켰다... 의 속내는 미래를 위하여 언론을 장악하겠다... 처럼

앞의 수사는 뒤의 속내를 은폐하기 위한 위장 전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순진하신 유정아 님은...

대통령보다 무지하게 고매하신 조선 임금의 정치적 언술을 고대로 믿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걸로 보아서,

현대적 비판 능력은 발달되어 있으나, 조선 시대의 봉건적 충성심은 그대로 간직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훈민정음 글자가 역병처럼 번져나가 시중의 어여쁜 백성들이 익히고 깨닫고 알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고 싶은 것이 생기도록, 욕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왕의 대사.

설령 그것이 기존의 체제를 위협하더라도말이다...

그건 내가 여태까지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킹스 스피치였다...(14)

 

순진한 거야? 멍청한 거야?

세종이 훈민정음으로 찍어낸 책이 바로 조선건국의 피비린내를 정당성으로 왜곡한 '용비어천가'이며,

백성의 행복은 안중에 없고, 성리학적 질서의 충, 효 수직질서를 강요하기 위하여 '소학 언해, 삼강행실도, 두시언해' 등을 마구 찍어 돌렸음을 볼 때... 기존의 체제 위협 운운은 '킹스 스피치'의 수사를 그대로 믿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세종 실록을 보면, 세종 시절에 합법적 사형집행이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 공포정치, 공안정치의 선도 주자.ㅋ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벽을 느끼게 만드는 순간이다.

 

극한의 어려움을 겪은 일이 없을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낮은 곳까지 떨어져본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힘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간혹 낭만적 경항도 보인다.

 

넘치지 않되 함께 달콤해질 수 있는 삶.

 

이걸 진정한 연대의 삶..이라고 이름 붙이긴 좀 낯 간지러운데...

이 땅의 천대받는 용산, 평택, 강정마을에 연대...의 소통을 보내진 못할 망정, 함께 달콤해지는... 이야기는 좀 그렇다...

소통을 물론 <영원한 것은 없으며, 다만 진행되는 것이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고, 수정되고 반성하면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노력과 반성이 찾아가는 자리는 역시 낮은 곳이기 어려운 모양이라 많이 아쉽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는 <격조있는 스피치>가 밑바닥 삶과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서 모르는 것인지 몰라도, 진정한 평등함에 다가가는 모습이 아쉽다.

 

소통에는 이명박의 한계를 말함으로써 다가설 수 없는,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나누는 모습을 보여 줘야 비로소 문이 열리는 것도 있는 법인데...

(민주당이 하는 뻘짓이 그렇다. 이명박의 한계를 말하지만, 아픈 사람들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소통의 부재)

 

나는 누구에게 속해 있거나 누구와 비교 대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로서 존재한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 비로소 입을 뗄 수 있게 된다.

그 자신감을 되찾는 길이 바로 입을 떼고 좋은 스피치를 하는 시작이다.(132)

 

이것이 한국인들이 말하기에 능하지 못한 이유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작가는 개인적인 문제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 조지 6세를 굳이 들먹이며 이야기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내세우다가는 왕따 당하기 쉽다.

조직 내의 조용한 일원, 쥐죽은 듯 찍소리 말고 있어야 하는 회의 자리.

여기 적응하는 일이 더 시급한 게 한국의 회의 문화 아닐까?

말 많은 놈 빨갱이고 감옥가던 시절은... 옛날이 아니다. 김용민과 김구라를 보면 된다.

현재 진행형으로 <나>의 스피치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유정아가 가장 멋진 강의를 펼친 것으로 기억되는 건, <질 나쁜 연애>란 시를 낭송한 그 강연이었을 거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눈높이에 맞춰, 온실 속의 화초가 가능한 한 낮게 <질 나쁜> 사람들 이야기를 들먹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선배에게 배우는 공통 화제가 궁할 때, 벗어나는 법, 이건 좀 배워둘 법 하다.

그 사람의 하루를 생각해 보는 것.

그래서 또 영화 써니를 끄집어 들인다.

소통을 위하여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져야 함은 기본이다.

 

김훈이 <내 젊은 날의 숲>에서 '꽃은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디 그러한 것'이라고 했단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단다.

무엇이든, 온몸으로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하여, 말하는 일에는 언제나 결핍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온몸으로 밀고나가 겪어본 자만이 지적인 언어, 격조높은 언어는 아닐지라도,

삶의 언어로 말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 교수의 번드르르한 말보다,

시골 아낙의 투박한 몇 마디가, 인생의 묘미를 함축하고 있는 수도 있는 법이다.

 

불통의 시대, 공감하지 못하는 시대를 만나, 소통과 공감에 대한 책을 쓴 것은 가상하지만,

작가가 온몸으로 꿰뚫고 지나간 이야기를 쓰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신경민 앵커의 코멘트가 그립기도 한 것이다.

 

손석희가 밝힌다.

솔직히 말해 두 번이나 추천사를 쓸 생각은 없었다.

역시 손석희다.

 

김정환 시인이 말한다.

아나운서의 본분이... 투명하게 하고 더 나아가 영롱하게 하고, 갈수록 그 영롱을 심화하는 거.

그러나, 그러므로, 하여 '당신은 상대의 아픔을 보지 못했다' 이 책으로 유정아는 말하기에 대한 글쓰기,

혹은 글쓰기에 대한 말하기 장르를 개척한 첫 아나운서이자 작가가 되었다고 할 만하다.

뭐라는 겨?

 

내 평은 이렇다.

작가는 대한민국의 아픔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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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0 0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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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0 0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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