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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못갖춘마디 ㅣ 문예중앙시선 15
강연호 지음 / 문예중앙 / 2012년 3월
평점 :
푼크툼 :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저서인 "카메라 루시다"에 언급된 용어.
롤랑 바르트는 사진을 스튜디움(studium)과 푼크툼 (punctum)으로 나누고,
코드화 되고 일상적인 것을 예를 들어 어떤 사진속의 여인이 아름답다든지 하는 정보에 관한것이라 든지 이런것을 스튜디움이라 하였고,
코드화 될수 없는 사진의 어떤 작은 요소가 자기의 마음을 찌르는것 , 작은 구멍, 작은 반점 , 작은 흠을 푼크툼이라 하였다.
타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진이 자신에게는 가슴을 찌르고 오랫동안 응어리가 지는 요소를 푼크툼이라 하였다.
시집 제목은 '기억의 못갖춘마디'다.
'못갖춘'이란 말은 묘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갖춘'이 세속적으로 인정받는 삶을 사는 듯하다면, 그 상대편에서 왠지 뒤떨어진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어휘다.
이 시집의 곳곳에서 '나'를 본다.
그 '나'는 내가 아니어서 낯설기도 하지만,
내가 아닌 그에게서 발견하는 '나'는 새로운 만남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의 시들의 곳곳에서, '나의 가슴을 찌르는 작은 얼룩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저 생경한 단어 푼크툼을 끌어들이게 되는 거다.
금 이쪽도 저쪽도 마음에 안 들었다
선택의 강요는 언제나 내게 숨가빴다
나는 금 위에서 머물고팠다
나는 금 위에서 아슬아슬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일 많이 얻어맞았다
일단 선을 죽 긋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넘어야 한단다
노선은 분명해야 하고
탈선이란 선을 벗어나는 것이다
내 분명한 노선은 탈선이 아니다
금의 본색은 아슬아슬하다는 데 있다
금은 왜 밟으면 안 되는가
금은 꼭 넘어야 하는가
금 위에서 오래 서성거리다(금 위에서 서성거리다, 부분)
세상에 이런 사람 참 많을 건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 드물다.
세상과의 대결에서 내가 입은 상처들, 그 얼룩들,
세상이 내게 내고 만 흠, 구멍, 반점, 딱지들...
그것을 강연호의 글에서 만나니,
반갑고 아련했던 추억을 간직하였던 잊고 살던 친구와의 해후처럼 들뜬 맘이 드는 게다.
유난히 '그늘'이 많다.
그늘의 속성이 '양지'에 상대적으로 개념되는 것이어서 그럴지 모른다.
그렇게 치자면,
그늘 역시 양지와의 '금 긋기'에서 발생한 서성거림일 수 있다.
일음일양을 도라고 한댔던가. 양과음은 그렇게 서로 번지고 물들어 바뀌어가는 것인데,
세상은 그걸 금긋기 좋아한다.
금 위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그 많은 사람들을 이편저편으로 가르려 한다.
오후의 그늘 아래 당신이 앉고/ 당신의 그늘에 기대 나는 누웠지
그늘에 그늘이 깊어 잠들기 좋았으나...
그늘은 심심해서/ 시샘해서/ 조금씩 자리를 바꿔 앉네
오후의 그늘은 문득 늙고/ 당신의 그늘은 자취가 없네
누울 자리가 없네/ 앉을 자리조차 없네(영원의 그늘, 부분)
하기는 젊음이나 늙음이나
하나의 받침으로는 견딜 수 없는 게 있기는 있나 보다
받침 하나로는 감당하지 못할 두 시절(꿈, 부분)
찬밥에 온도가 있나 / 밥의 온도야말로 /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
밥의 그늘/ 당신의 그늘 / 당신, 이라는 그늘
사내의 입속/ 그늘이 깊다(밥의 그늘, 부분)
사람의 그늘을 만난 지 오래다/ 어디 그늘이 없었을까, 눈 흐려진 탓이다
나이 들면 자꾸 멀리 보게 마련이고/ 멀리 건너다 보는 시력으로는/ 사람의 그늘도 흐리게 뭉개지는 법
그늘을 헤아리는 심사는/ 어느 늙은 나뭇가지 사이로/
한때 무성했던 세월이 구름처럼/ 뭉텅뭉텅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지금은 없는 누군가의 서늘했던 그늘/ 그 어두웠던 눈 밑으로/ 문득 흔들렸을, 잠깐 반짝였을
불빛인지 물빛인지를 놓치지 않았으나/ 그저 놓치지 않았을 뿐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애써 멀리 외면했던
그늘의 길이를, 마침내는 깊이를 /이제 와 곰곰 되짚는 일이다
그러나 눈 흐려진지 오래/ 한뼘 두뼘 겨우 더듬을 뿐/ 사람의 그늘을 재어본 지 오래다(사람의 그늘)
그늘에 앉아서 영원을 생각한다.
영원이란... 없는 거라고, 그늘이 가르쳐 준다.
언제나 그늘인 곳은 없으니까...
그늘에 누우면 편히 쉴까... 하지만, 영원한 그늘은 없다고...
당신의 그늘 역시 영원하지 않다고... 그늘이 가르친다.
영원은, 하나의 받침으로 떠받들지만,
젊음이나 늙음이나 받침 하나론 부대낀다.
밥을 먹는 사내의 처지,
만물상이지만 세상 만물로부터 차가워진 신세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음과 양, 그늘과 양지...
금 역시 절대적이지 않은 걸...
그 그늘이 사람의 그늘로 흘러들면서는,
마음이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추억으로 흘러간다.
말로는 눈 흐려진 탓을 하지만,
'지금은 없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애써 멀리 외면했던',
그러나 '문득 흔들렸을, 잠깐 반짝였을'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그늘에 들인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지나간 옛사랑의 그림자에 드리운 그늘은 애수에 젖어 돌아보게 만드는 것.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라는 안부를 건넬 틈도 없이
그녀는 문득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저 침묵했다
전화 저쪽에서 그녀는 오래 울었다
이쪽에서 나는 늦도록 침묵했다
그녀의 울음과 내 침묵 사이로도
바람과 강물과 세월은 또 흘러갈 것이었다
그동안을 견딘다는 것에 대해
그녀와 나는 무척 긴 얘기를 나눈 것 같았다
아니 그녀나 나나 아무 얘기도 없이
다만 나뭇잎과 나뭇잎처럼 귀 기울였을 뿐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나보다는 건강하다는 것
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울음을 건넬 수 있다는 것
슬픔에도 건강이 있다
그녀는 이윽고 전화를 끊었다
그제서야 나는 혼자 깊숙이 울었다(건강한 슬픔, 부분)
마치 줄거리를 엮듯, 이 시의 통화와 침묵 부분만 걸러 적었다.
시를 읽는 나는 시적 화자가 낯설지 않다.
너무도 낯설지 않아, 도리어 이제껏 드러내지 않았던 감정이 돌출되어 드러난 것 같아,
당황스러움이 오히려 낯설었다.
그래, 나는 이렇게 우는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그 깊숙한 울음은 건강하지 못한 슬픔일 수 있었구나... 이런 것을 바라보는 무연함이란...
여느 사랑 노래가 명랑하고 건강한 데 비하여,
그의 사랑은 역시 그늘에서 나온 탓인지, 조금 우울하고 조금 어색하다.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는 사랑.
왠지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30도는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린 사랑.
잘 지내고 있지? 설마 외로운 건 아닐 테고
옷깃만 스치는 날들이 지나가서 나는 이윽고 담배를 끊었다
내 기억의 못갖춘 마디 속에 꼭꼭 도돌이표를 찍어놓고
이쯤에서 우리 그만두자고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적어를 명시하지 못한 객기는 조금 불안했다
옷깃만 스치는 생의 말엽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다만 잘 지내지? 지나가는 말로 안부를 물어주는 게
그나마 세상의 인연을 껴안는 방식이라는 것
설마 외로운 건 아니었으면 싶다 나는 또 담배를 끊었다(중언부언의 날들)
그의 사랑법은 끝없는 관심, 그러나 따뜻한 시선을 건네지 못함, 오랜 시간을 견딤... 이런 것이다.
어느날 문득, 사랑니 빠진 자리에서 허방다리를 짚는 혓바닥처럼,
문득, 지나간 인연을 껴안지 못했던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옷깃만 스치는 인연이 외롭지 않기를, 잘 지내고 있기를 괴로워하며,
그는 이윽고 담배를 끊고, 또 끊는다. 그의 사랑은 끝없는 관심으로 골똘한 그것이다.
명확하게 결론지어지지 않은, 목적어가 명시되지 않은 못갖춘마디처럼 중동무이된 사랑은,
그의 마음 속에서 도돌이표를 만나 자꾸 떠오르지만, 담배를 끊음으로써 중언부언 하는 마음을 갈앉힐 뿐.
그렇게 불꺼진 창 밖에서 서성거리던 그의 마음 안에도 늘 '불끄고 우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사랑과 삶에 대한 태도를 읽을 수 있는 시여서 한 마디도 빼지 않고 옮기게 된다.
그의 마음에 불 꺼진 창, 그걸 아쉬워 한다고 불 켜라고 할 수 없었다.
불 꺼진 창, 그 밖에 서성거리는 것이, 그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에 불 꺼진 창이 있었다
그는 늘 밖에서 어둡게 서성거렸다
그리고 누군가/ 내 안에서 불 끄고 우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연애는 언제나 깜깜했으나/ 돌이켜보면 그래서 결국 환했다
나를 서성거리게 할
누군가를 내 안에 남겨둔다는 것
그것을 알기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을 뿐/ 그동안 아프게 늙었을 뿐
언제라도 만나고 싶어 간절했으나/ 막상 창을 열고 불을 켜면/ 텅 비어 있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불 꺼진 창이 켜놓은 연애가 환하려면
불 꺼진 창을 불 꺼진 창으로 남겨둘 것
밖에서 오래오래 서성거릴 것
열지 말 것
마음에 불 꺼진 창이 있었다(불 꺼진 창)
그래. 침묵할 것.
사랑법은,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는 거랬나.
실눈뜨고 볼 것.
관심은 가지되, 배놔라 감놔라 할 일이 아닌 것.
열지 말 것.
불거진 창으로 남겨둘 것.
괜찮은 사람이다.
괜찮은 시고...
그의 마음에 잠시 사랑이 찾아오면,
그는 마음을 곧게, 가지런하게, 단정하게 곧추세운다.
도덕교과서 그대로다.
그래요 옷깃만 스쳤던 거예요
이 난데없는 격렬함은 말하자면
일종의 나비효과 같은 것이겠지요
나비 한 마리의 팔랑거림이
태풍이 될 수도 있다지요
그 역도 성립하겠지요
곧 가라앉을 평지풍파 앞에서
나는 수선을 피운 적도
빈틈을 내 보인 적도 없는데
어느 새 내 속에, 당신 참 날렵하군요
틈새 공략이 성공했다고요
하지만 그대는 다만 무례하게 비집고 들어온
잠시의 파문일 뿐
그래요 우리는 옷깃만 스쳤던 거랍니다(틈, 전문)
격렬한 냉정함이 반짝인다.
틈새 공략에 성공한 그대를 무례하다고 굳이 내쫓는다.
황진이가 화담 선생 앞에서 절할 때,
이런 마음을 읽었던 것일는지... ^^
새벽 두시인데 아니 세시인가
어디선가 희미하게 끈질긴 울음처럼
전화벨이 운다, 아무도 받지 않는다
한참을 울다 겨우 잦아드는 전화벨
그러나 그 뒤끝을 채며 이제는 냉장고가 운다
시곗바늘이 운다 보일러가 운다
유리창을 흔들며 바람이 엉엉 운다
울음은 전염병이다
한 아이가 우니까 다른 아이가 따라 우는 격이다
정말 어디선가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온 도시가 끈질긴 울음을 우는데
그 속에서도 악착같이 잠을 청하는 나
나란 놈이 싫어지는 밤이다(울음, 부분)
세상이 남자보고 울지 말라고 한다.
웃기는 세상이다.
온 세상이 울고 있는데, 온 세상에 아파하는 이 아무도 없다니...
그나마, 악착같이 잠을 청하면서, 자신을 싫어하는 양심의 금속성이라도 만날 수 있음은... 축복이다.
그의 시는 단정하다.
책상 앞에 이황 선생의 심경이라도 펴놓고 읽는 듯,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한 터럭도 흐트러져선 안 된다는 듯,
애써 단정하려 한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의 달뜬 몸살기가 맘에 드는지도 모른다.
몸이 겪는 살기는,
애써 단정하려는 모습조차도 잠시,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지점에서 인간미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 인간미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
뜨겁고 춥다, 이 모순의 육체는
그럭저럭 매력적이다
약 기운 때문인지 지면에서 얼마쯤
붕 떠 있는 느낌, 금방이라도
곤두박질칠 듯 아슬아슬한 공중부양 같다
들뜬 청춘 같다
초봄이 한겨울보다 매서운 건
세상 움트는 것들의 통증 때문이다
연초록은 원래 비릿하고
청춘은 불량을 무기로 내세운다
이빨 사이로 찍찍 침을 내뱉거나
면도날을 질겅질겅 씹기도 하는
그 시절 지나면 몸살이란
스위치를 올리자마자 팍 불이 나간
백열등 같은 것, 잠시 미련처럼 빛살이 어려
알전구를 귀에 대고 흔들어본다
이 어둠을 어찌 돌이킬래?
누군가 속삭인다
끊긴 필라멘트마냥 파르르 오한이 온다
추워서 뜨거웠고 어두워서 환했던
기억이 있다, 그 불량의 시절인 듯
연탄불처럼 다시 층층 포개지고 싶다
포개져 마침내 화르륵 타오르는 체위이고 싶다
나중에는 부엌칼로 갈라야 하더라도
가르다가, 앗 뜨거라 불투성이로 깨지더라도
몸살이란, 그 기억에 살이 낀 것이다
혼자 열없이 열 오른 것이다(몸살, 전문)
몸살이 걸릴 정도로 온몸이 사랑을 느껴 부들거려야,
그제서야 조금,
끊긴 필라멘트 정도 미약한 정도로 오한을 느낀다.
추워서 뜨거웠던, 어두워서 환했던
그 추억은 연탄불처럼 <깨지더라도 화르륵 타오르는> 기억이지만,
<부엌칼로 갈라야 할 정도로, 깨지더라도 포개지고 싶은> 사랑이었지만,
이 모순 속에서
혼자 열없이 열 오른 거라고 중얼거리며 독백하는 그 남자의 뒷모습이,
왠지 나는 한번 꼭 껴안아 주고 싶은 것이다.
왠지 낯설지 않아서,
왠지 외롭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