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탁샘 - 탁동철 선생과 아이들의 산골 학교 이야기
탁동철 지음 / 양철북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참 오래 읽었다.

 

도종환, 이계삼, 이상석 선생 같은 이가,

교육은 이런 일을 해야하지 않는가?

이런 당위론을 이야기할 때는,

나는 달팽이집 안에 들어앉은 채,

이런 의견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것이고, 이건 또 너무 감상적이고, 이건 또 상당히 도발적이고,

이러고 평가를 내리면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재단하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는, 무장해제 당하고 만다.

 

길을 오래 걷다보면 발바닥에 굳은살이 배겨서 감각이 둔해지지만 걷는 데는 도움이 된다.

망치질이나 특별한 도구를 사용하는 일에서도 오래 숙련되노라면 굳은살이 배기고 감각이 둔해지면서 작업에 도움을 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 역시 그렇다.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새살이 아려서 몹시 힘들었다.

아이들과 다투면 주말 내내 몸살을 앓았고,

우리반 아이들이 너무 의견이 많고 시끄러우면 나의 잘못된 교육관 탓을 하며 엉뚱하게 술을 마셨다.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삐딱선을 탄 아이를 만나면 미운 마음이 막 들었고,

내가 좋다고 졸졸 따르는 아이들은 이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곤 했다.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이 살아있어서 너무 이뻤고,

아이들은 서로 발표를 하려고 했고, 글쓴 거 하나 읽고 칭찬 듣고도 세상을 얻은 듯 해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도 오래오래 편지를 보내왔고,

지금도 가끔 그때 토욜 저녁에 학교 운동장에서 야영하면서

내 팔베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헤던 이야기를 하는 '소설창작반' 아이들도 있다.

 

야영하던 밤, 엄마가 없어서 '어머니의 손'을 못써온 아이 손바닥을 때린 일을 알려줘 나를 부끄럽게 했던 아이,

일요일이면 키는 나보다 더 큰 여학생 둘이 총각 선생님 자취방에 쳐들어와서 볶음밥 해달라고 조르던 아이들,

고등학교 입학해야하는데 등록금이 없다고 통장에서 27만원 빼줬더니,

그길로 날라서 아직 연락이 없는 아이.

알콜중독 아버지한테 매일 맞다가 머리가 굵어 집나가서 중국집 배달한다던 녀석,

엄마 없이 이모집에 사는데 감기로 결석했다고 아이들이랑 병문안갔더니 스승의 날 담배한갑이랑 불티나라이터 연습장에 둘둘싸서 선물이라고 들고온 아이...

 

아이, 아이, 아이들...

그래. 이 글을 읽으면서 끝도 없이 많은 아이들이 계속 떠올라서,

글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던 건가보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내가 탁샘처럼 다정하고 자상하게 친절하고 지혜롭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

스스로 몹시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의 결에 굳은살이 배긴 것 같다.

경력있는 교사랍시고, 수업에 자신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고,

내 맘대로 아이들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작은 신'의 권력을 맘껏 누린 모양.

 

학생부 선생이라고 학교를 뺑뺑이 돌면서

담배 피우는 넘, 돈놀이 하는 넘, 수업 땡땡이 치는 넘, 친구 돈 삥뜯는 넘... 잡아다 패고,

형사처럼 조서 꾸며서 심사해서 처벌하고...

또 무슨 연구학교 한다고 이런저런 연구자료 뒤져서 몇마디 적어놓고는 보고서랍시고 떠들어대고,

별 쓸데 없는 공문서 응대한다고 끙끙거리고 컴퓨터 앞에서 시간보내면서 아이들 자습시킨 교사...

그 부끄러운 시간들이,

잊혀진 줄 알았던 지나간 시간들이,

깨어진 듯, 가느다란 균열 사이로 솔솔 피어올랐던 모양이다.

 

탁샘, 을 읽으면서,

아이들을 부처로 보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고,

여기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면,

교사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는 반성을 한다.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 삼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상장을 못 받는 아이들을 향해 위로를 보내고,

과자를 못 사먹는 아이들에게도 동정의 마음을 내고,

아이들이 자기 의견을 내는 걸 보고 기뻐하고,

자기 의견을 못내는 걸 보고 화가 일어나는...

그런 마음을 배우자.

 

내 마음에 아이들을 가진자와 못가진자, 나은자와 낮은자로 가르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깨닫고,

항상 상하쌍회향(위아래를 모두 보는) 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살며,

내가 안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르고 모르는 사람끼리 같이 헤매며 알아내는 과정은 아름다울 수 있겠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의 미운 말도 이쁘게 들어줄 줄 아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기를...

 

아이들은 부드럽고 따뜻한 말에 반응해서 움직여야 하고, '감동'으로 움직여야 함을 잊지 말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아무 것도 아닌 한쪽으로 잡아끄는 것 또한 폭력임을 잊지 말고,

경험없는 아이들은 뭘 봐도 놀라운 눈빛으로 반짝이듯, 자꾸자꾸 놀라고 허둥대며 오늘 하루를 만나길 바란다.

 

싸우려 해도 싸움이 되지 않는 아이, 싸움없는 세상, 바보 이반의 나라, 평화... 이런 것을 소중히 여기고,

아이들은 사탕 하나에도 감동할 줄 아는 존재임을 늘 잊지 말고,

어른이 지어 올리는 백 개의 탑은 추상임을, 지 혼자 알아냈다고 뻐기는 하나가 초라해도 진짜임을 알게 하고,

내게 필요없는 걸 주는 건 죄이며, 내게 필요한 걸 줘야 진짜 주는 것임을 배우게 되기를...

 

이 책의 리뷰는 도무지 평가를 내리는 글로 지을 수 없어서,

몇 줄 참회의 글로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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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7: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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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2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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