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반 소년들 카르페디엠 29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오근영 옮김 / 양철북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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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야만 했던 걸까, 아니면 순전히 우연이었을까.

 

이렇게 소설은 시작된다.

세 소년은 필연적으로 만나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우연히 어울리게 된 걸까.

 

공부에 시달려야 할 세 소년이,

그것도 각자 개성이 두드러진 아이들이,

우연히 말라 죽어가는 풀들을 돌보는 원예반에서 모이게 된다.

 

아는 꽃 이름이 늘자 집 근처나 학교를 오가는 길에 갑자기 꽃이 많아졌다.

물론 눈에 띄니까 그런 느낌이 나는 것일 뿐이지 전부터 늘 있던 꽃이다.

하지만 화단이 완성되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반 친구와 마찬가지로,

그때까지 나는 이렇게 풀이나 꽃이 많았다는 것을 정말 몰랐다.

 

관심을 가지면, 눈에 보이는 법이다.

어떻게 보면, 시시할 정도로 이 소설엔 스토리가 없다.

그저 무덤덤하게 꽃을 기르고, 거기서 기쁨과 삶의 의욕을 맛보게 된다는 것인데,

사실, 모든 생명을 기르는 일은 그런 힘을 주는 것 같다.

 

나더러  Green Thumb 이란 이름을 붙인 이가 있었다.

학교에서 죽어가는 말라비틀어진 난초 화분이나 보잘것없는 풀꽃 화분들을 보면,

나는 내 책상 주변에 주워다 두고 매일 물을 준다.

특별히 물주는 요령은 없다.

관심을 가지고 매일 주는 것이다.

흥건히 고여있으면 조금 주고, 바싹 말라있으면 많이 준다.

그러다보면 한달 정도면 풀꽃들이 생생해지게 마련이다.

물론 가망없이 시들어버리는 것도 있지만, 풀꽃들의 생명력은 참 질긴 편이다.

 

이렇게 식물을 기르는 일은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일임은 분명한데,

갈수록 아스팔트 포장이 지구를 덮고 있어 아이들은 원예란 말조차 잊고 살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소설은 더욱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식물을 큰 화분에 옮겨 심으면 갑자기 커집니다.

그걸 보고 늘 생각했습니다.

큰 화분에 옮겨 주기 전까지는 작은 화분에 맞게 답답한 상태로 살아 있었구나 하고...

 

쇼지란 아이는 사람을 마주보지 못하고 박스를 뒤집어쓰고 다닌다.

그렇지만 식물에 대한 사랑으로 세상에 적응하게 되기도 한다.

사람도 작은 공간에서 답답하게 살아 있을 때, 자라지 못하는 법인 모양이다.

 

자기를 알아주는 곳에 가면 사람도 급격히 성장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엔 마치 수미상관처럼 처음의 구절이 되풀이된다.

 

그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만나야 했던 친구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래, 그게 발전이다.

필연이든, 우연이든, 상관없이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법.

그게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리라.

 

삶의 의욕을 잃은 중고생이나,

매사 시들하게 여기는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청소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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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 2012-04-1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 님, 안녕하세요? 저는 <원예반 소년들> 담당 편집자입니다. 리뷰를 읽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 댓글을 남깁니다. 글샘 님의 서평을 읽는 동안 원고를 읽어내려갈 때처럼 마음이 푸근해졌어요. 시든 풀꽃을 통해 나와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던 세 소년의 모습이 전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글샘 님도 그런 마음이지 않으셨을까 감히 상상해봅니다. 이름없이 피어있는 들꽃을 닮은 청소년들에게 이 책이 쉼터가 되기를 바라면서 따듯한 서평을 써주신 글샘 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인사 드립니다.^^

글샘 2012-04-10 16:09   좋아요 0 | URL
아, 편집자님께서... 영광입니다. ^^
양철북 책이 좋은 점은... 그런 거예요. 마음이 따뜻한 책을 낸다는 거...
아이들이 힘든데,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 주려는 책을 낸다는 거...
이 세 아이도 시들한 아이들인데... 꽃을 피운다는 걸 보여줘서 좋았습니다. ^^

근데... 편집자 맞네요. ㅎㅎ 글샘하고 님을 띄어쓰시는 거 보니까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