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 당신의 반대편에서 415일
변종모 지음 / 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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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에게 꿈이 있다면,

나이든 어른들에게는 '로망'이 있다.

'로망'이라고 하면 '로망스'처럼 사랑 이야기를 이루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배나온 아저씨가 '벤츠 600시리즈' 운운 하거나,

보톡스 맞은 아줌마가 '무슨 백화점 스파 회원권'를 거론하는 속물적인 거 말고,

'로또'라고 걸리면 해보고 싶은 '로망'들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나의 '로망'이라고 한다면,

혼자서 훌쩍 한달쯤 세상을 버리고 산티아고 가는 길에 오르는 것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 매년 몇 권씩 산티아고를 마음 속으로 읽으며 걷는다.

그리고, 곧 쉰이 다가오는데, 쉰이 오기 전에 꼭 산티아고엘 가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스페인어를 공부하긴 쉽지 않고, 아쉬운대로 영어라도 좀 해야겠단 생각도 있는데, 언어가 문제는 아니다.

 

변종모의 글은 달콤쌉싸롬한 초콜릿 맛이다.

속에는 조금씩 위스키가 담긴 초콜릿.

잇사이에 살짝 물고 혓바닥 위를 궁글리면 끈적한 초콜릿이 달착지근 묻어나오다가도,

와삭~ 씹는 순간 쌉쌀한 위스키 향이 입을 가득 메우는...

 

여행은 모든 것을 잊고 가자고 걷는 길이다.

치유를 목적으로 모든 뗏목을 두고 걷기 위해서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

그러나, 뗏목은 머릿속에 늘 늘어붙게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차라리,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외침이 진실되다.

 

여행지에 가서 거기 자기 친구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처럼 외로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럴거면, 거기 왜 갔니? 이렇게 묻고 싶다.

 

여행을 갔더니, 그리움을 떨쳐버리려고 갔더니,

거기서 극한 그리움을 만난다.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는 쿨한 마음으로 걸으려던 애초의 마음은 소실되고,

그리움에 몸부림치는 자신을 만나... 거짓말의 담배 연기만 씁쓸하게 내뿜는 책이다.

 

확신이 없어도 가능성이 희박해도 믿어보는 것.

그것이 약속의 의미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으니 나는 그대로 움직여 보는 것.

그리고 확인해 보는 것.

확신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지난 일.

어디 세상의 약속 중 과거가 있겠는가.

약속은 미래이며, 미래는 희망이다.

그리고 희망은 결국 우리 발로 찾아가는 것.(29)

 

약속은 미래다. 참 멋진 말이다. 희망적이고.

 

결국 이렇게 만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그동안 당신과 나 사이에 머물렀던 한 뼘의 간격은 얼마나 먼 것이었는지요.

우리 허물어버릴 것이 있다면 빨리 허물고 말죠.

괜한 오해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는지.

각자의 앞만 보고 서로 등 돌려 사는 동안 당신이 그리워했을 나와

내가 그리워했을 당신은 더 이상 말하지 말기로 합시다.

이렇게 만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때는 왜 그랬을까.

어차피 볼 거라면 하루빨리 만나지기를 바랍니다.(31)

 

그리우면 만나야 한다. 그러길 바란다.

알고보면 우리는 모두가 잠시 여행자... 이므로.

다음, 을 기약하기 쉽지 않은 존재들이므로...

 

"우리, 껌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말아요." 누군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행복할까?(55)

자두의 '김밥'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모든 것은 지나고 나면 그저 순간인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어쩌면 사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만 기억하며 살아도 짧은 인생이다.

그 짧은 순간, 섬광처럼 빛나는 불꽃을 보면서 오래오래 행복했던 밤.

우리는 자주 슬픔에 밀려 행복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며 산다.

당신이 외롭거나 힘들거나 괴로워도 당신이 품고 있는 행복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69)

 

정말 그럴까? 잘 모르겠다.

 

"여행을 하면 어떤 기분인가요?"

"반쯤 불안하고 반쯤은 행복하지요.

                     ...

        불안하지 않으면 행복하지도 않지요."

 

그렇다. 여행의 묘미는 불안감과 행복감의 혼합에 있다.

그 비율의 묘한 차이에 따라 여행은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한 것.

 

'같이'라는 말은 참으로 가치있는 말이다.

나는 결국 '같이'를 가치있게 지켜내지 못했지만,

가치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가치 있어야 진정 같이 있는 것.

 

있을 때 잘해. 이런 유행가 가사가 진리다.

 

반짝하고 잠시 마주하는 것에만 열광한 채 늘 가슴에 두어야 할 것들을 머리로만 생각하고 살았다.

나는 자주 그런 식으로 내가 나를 소외시키며 살았다.

가끔 먼 곳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도 허전했던 이유.

 

왜 인간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불행한 동물일까?

 

삼백원을 주고 지어온 몇 봉지의 알약을 털어 넣으며 흔들리는 커튼을 쳐다봤다.

낡고 오래된 커튼은 도망갈 수 없는 운명처럼 억지로 붙들려 있는 듯 보였다.

때로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숙명의 시간들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다.

그러다가 그 마음 속의 시간들을 불쑥 몸이 대신 말해 주었다.

몸과 마음은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나는 또 이렇게 지나간 시간을 익숙하게 앓아내야 했다.

어느 날, 당신 생각이 나면 이유없이 며칠을 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정말로 아프기 시작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그림자처럼 붙잡고 아파하는 일.

순전히 당신을 위해 앓고 싶었지만,

어쩌면 나는 나를 위해 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이라는 사람.

참...

그렇군요.

 

말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생각을 줄여야 했다.

상대방의 생각을 나의 의도대로 함부로 읽지 말아야 했다.

나의 생각이 나만의 것이 되지 않게 발설하는 일을 신중히 해야했다.

나는 자주 내 말에 내가 상처를 입었다.

"그때 차라리 침묵하며 당신의 말을 들었다면,

침묵으로 당신을 존중했다면,

나의 마음이 지금처럼 무겁지는 않았을 텐데."

 

어떨 때는, 몹시 미안할 때도 있다.

비트겐 슈타인의 침묵에게 말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던...

 

방금 헤어지고도 다시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한 적 없는데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멀리 있지만 항상 마음에 두고 싶은 사람이 있다.

아득히 멀어졌지만 생생히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

자주 못 볼 사람이지만 꼭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은 사람.

당신은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 나의 마음만 자꾸 부풀던 일.

그래서 가끔 반대편을 바라보며 위로하던 일.

결국 당신에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에게 전부인 일.

그것은 모두 내가 사랑한 일.

그랬으니 괜찮다.

십년 뒤에도 당신일 것 같으니.

그 하나의 사랑일 것 같으니.

 

천 년의 사랑...은 뻥이 심했지만,

십년 뒤에도 당신,

그 하나의 사랑, 이라고 현실적으로 말하니,

그 십년이... 현실적으로 아프다.

 

그대, 사랑하시오. 당신이 사랑한다면 사랑하시오.

그렇게 하시오. 당신은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오.

다만, 그대가 사랑하는 것이 그대를 사랑해주기 바라지 않고도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사랑하시오.

하지만 사랑한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그리 오래도록 당신 곁에 머무는 것은 아니라오.

그러니 때로는 당신 마음이 그렇다 할지라도 한 번쯤 그 마음을, 그 말을 비밀로 묻어두는 것도 좋을 일이오.

그대, 언젠가 그대도 꼭 그대 같은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오.(225)

 

사랑, 에 대하여 이렇게 명령형을 쓸 수 있을까?

예수님도 아니면서...

그렇지만, 이렇게 명령형으로라도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사랑, 그 앞에서 인간은 용기없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저기, 당신의 시선이 끝나는 그 끝에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풍경들, 시간들.

그리고 그곳에 닿으면 그곳은 어느새 출발점.

아무리 걷고 걸어도 쉽게 끝나지 않는 것이 삶.

끝까지 걷는 것을 중요시 여길 것이 아니라

그곳까지 가는 동안 만나는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당신의 의지가 멈추지 않는 한 길은 끝나지 않으므로,

당신의 의도로 걷는 그 길 위에서 의도하지 않는 많은 것들을 만나는 일.

그리고 또 걸어야 하는 일.

삶은 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보는 것이다.

생이 끝날 때까지.

 

그의 사진은 어둡고 슬프다.

그렇지만, 그의 앵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사람이다.

 

결국 앵글에 사람으로 채우느냐, 풍경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여행의 목적은 달라지게 된다.

그가 사람으로부터 입은 상처의 치유는,

결국 사람이 도와주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앵글을 가득 채운 것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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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 변종모 (A lie of yearning for nobody)
    from 512 2012-10-14 14:57 
    노련한 여행자의 솔직한 이야기.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한국에 돌아오면 제일 처음으로 읽고 싶던 책. 다른 몇 권의 책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친구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몇 장을 읽고, 오랜만에 만난 녀석들과 술을 한잔 마셨습니다. 목구멍까지 술이 차올라 찰랑거렸으니, 어쩜 술 한잔이라 하기엔 좀 과할 정도였을지도 모르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