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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ㅣ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클리나멘 :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학 흐름'에서 알튀세르가 그 존재를 부각하기 전까지 비주류였던 루크레티우스가,
세계는 형성되기 이전에 원자들이 비처럼 평행으로 떨어지는 상태에 있었다고 생각.
평행으로 떨어진다는 조건은 원자들 사이에 어떤 마주침도 없는, 무의미한 상태
어느 순간 이 원자들 가운데 어떤 원자가 평행에서 조금 이탈한 운동을 하게되고,
평행으로부터 어긋나는 미세한 차이, 이 미세한 편차를 '클리나멘 Clinamen' 이라고 부른다.
이 원자는 다른 원자와 마주치고, 거대한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을 읽으면 일상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난 생각들을 만나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테드 창의 이 책 역시 상당한 사고적 일탈을 맛보게 하는데,
그 일탈이 가져다 주는 것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철학적 의미의 고찰을 담고 있다.
아무튼, 궤도를 이탈하는, 어쩌면 주류를 포기하는 순간이라야만, 자유를 꿈꿀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 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이 소설집에는 8편의 소설이 있는데, 중편에서부터 콩트까지 길이가 다양하다.
주제도 다양한데, 과학적, 수학적, 철학적 함의가 가득한 소설들의 내용을 SF나 판타지로 규정짓기엔 협소해 보였다.
말을 굳이 해야한다면 <사고실험 확장 소설> 정도가 될까?
환상적 사변의 확장을 통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관심사를 형상화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읽기 쉽지 않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계속 했다.
이 소설을 영어 원문으로 읽는다면, 훨씬 감동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내가 이런 수준의 소설을 영어로 읽을 수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영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수준은 더더군다나 아니지만,
문장, 문단들의 유기적 논리성이 신선한 통찰을 불러옴을 읽을 때,
특히 고딕체로 강조한 용어들이 한국어의 문맥에서는 전혀 '강조'의 의미를 담고 있지 못해 안타까울 때,
왜 이 소설이 그토록 칭찬받아 마지 않았던 책인지를 읽어 내려던 내가 품는 의문은, 저것이었던 모양이다.
영어로 된 이 소설을 영어로 읽었을 때, 그 감동이 훨씬 컸을 것이라는... 번역의 한계.
여드름은 대수롭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병처럼 보일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입니다.(340)
칼리그노시아 조치를 받은 사람들은 패션이나 미의 문화적 기준 등에 대해서 결코 무감각하지 않습니다.(341)
이런 고딕체 단어들을 만날 때마다, 동명사나 부사어가 맨 앞에서 문장 전체를 감고 있을 영어 문장이 떠오른 것이다.
가장 재미있는 사고 방식을 만나게 된 소설들은 책 제목이 된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와 '72 글자'였다.
(단편과 책 제목의 차이를 구별하려는 의도는 읽히지만, 굳이 '네 인생의 이야기'와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구분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어차피 소설집 제목은 'Story of your Life'에 '그 외'를 덧붙인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였으니 말이다.)
영어 알파벳, 한글 등을 쓰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표의문자>의 체계일 것이다.
한자는 한 글자로도 하나의 사상을 담고 있을 수 있으며, 그 복잡한 한 글자 속에서 다종다양한 의미를 풀어낼 수 있는 언어다.
중국계였던 작가가 한자를 잘 이해하고 있어보이진 않지만,
그의 <어의문자>라는 개념은 <표의문자>인 한자를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글자가 뜻과 대응되는' 표의문자와는 또다른 의미를 담는다.
그 문자는 '어순'과 발화'와 무관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마치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관계처럼, 글자를 보고 직관적으로 그 내용을 알 수도 있다는 상상력.
언어의 불완전성을 강조하면서 '비음운적 언어로 사고한다는 개념'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신선하다.
인간의 언어는 서로 다르지만, 발화와 이해의 방식은 동일한 것.
인과적이고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물리적 세계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양자역학적 세계를 문법화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사고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고실험 확장 소설>이란 이상한 범주를 만들어 본 것일 뿐이다.
'72글자'에서는 '이름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천착한다.
이름 자체는 그것이 아무리 강력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경험할 능력이 없는 초심자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다.
인간은 이름의 산물인 동시에 매개체이고, 내용물인 동시에 그릇이다.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반향 과정 속의 메아리로서 '이름'은 인간에게 존재한다.
그래서 시뮬라시옹 세상에서 인간은 자기 이름을 버린다.
아바타를 내세우듯, 새로운 이름 속에 새로운 '내용물'을 담으려 하는 것이다.
그 '새로운 이름' 안에서도 '유지되는 자신'이 있지만, '새로운 울림' 속의 메아리로서 이름은 기능한다.
'이해'에서도 새로운 언어 설계를 꿈꾼다.
입 밖에 내지 않는 언어 커맨드를 통해, '말'을 직감한다는 상상력.
'지옥은 신의 부재'에서는 종교의 의미를 탐구한다.
평범하고 당연하다는 생각에 의문을 던지고,
우리의 사고는 '얼마나 의아한 세계인가?'를 묻는 것 같다.
종교와 인생의 목적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충고를 주는 소설.
'바빌론의 탑'은 묘사가 아름답다.
태피스트리처럼 보이는 경치를 묘사하지만,
인간 하나보다 더 가치로울 수 있는 벽돌 한 장의 의미,
결국 인간의 사고, 욕망이 인간의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시스템이란 비판도 읽을 수 있다.
'영으로 나누면'은 수학은 트릭이자 오류이며 자가당착의 모순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세상은 살펴 보면, 모순된 체계의 반복이란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놀라운 아름다움이 한 순간, 모두 환영이었음을 깨닫는다면,
글쎄, 세상은 끔찍하지 않을까?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는 재미있다.
루키즘에 반대하여 '칼리그노시아'를 끌어들인다.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시스템.
그래서 '칼리를 끄면' 못생긴 것도 괜찮게 보인다는 가정을 한다.
결국 칼리를 끄는 것은 상상이고, 철학을 통하여 <멍청이 회로>를 꺼야 하는 것이다.
그의 외침은 독자에게 깨달음의 순간을 준다.
"안돼, 너희들이 지금 뭘 가지고 있는지, 알아?"
이 말, 시타르타가 했던 말의 오마주겠지?
다시, 루크레티우스로 돌아가서,
모든 것이 '평행'할 때는 무의미하던 것이,
'클리나멘'의 순간 이후, 모든 것에서 새로운 의미와 질서를 발견할 수 있게된다.
테드 창의 이 소설들은 지적인 독자의 대뇌 속에서 '클리나멘'의 순간을 발견하는 기쁨을 주기에 충분하다.
결국 테드 창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거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
거기서, 상상을 시작해야 한다.
한 마리 눈먼 작은 벌레가 되어서...
어느 해 늦가을 어느 날 오후,
나는 경부선 급행열차를 타고 있었다.
열차가 수원을 지날 무렵,
서호에 반사된 현란한 저녁해가
차창 가득히 어떻게나 눈부시던지,
나는 골든 델리셔스라는
사과덩이 속을 파고드는
한 마리 눈먼 벌레가 되었다.
추수가 끝난 들녘도
잎이 진 잡목숲도, 인가도,
황금빛으로 무르익은 과육 속이었다.(김종삼, 저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