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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지음, 안중식 옮김 / 지식여행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시한 사랑은 없다. 그러나 시시한 사랑 이야기는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러브레터 생각을 자꾸 했다. 분위기는 비슷한데, 내용은 별로다.
그녀의 머리에서 풍겨오는 샴푸 냄새인지 비누 냄새인지 어렴풋이 달콤한 냄새가 내 코끝에 닿았다... 아키의 입술에서 낙엽 냄새가 났다. ... 희미하게 남아있는 아키의 냄새가 내 안의 시간과 공간을 휘저어 놓았다.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든 아키의 냄새를 떨쳐 버리고 겨우 방을 나왔다...
간혹 풍겨오는 아키의 냄새는 이 이야기를 시적인 리듬을 타게할 법도 하지만,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기에는 삶과 죽음, 순수한 사랑을 엮어내기에 작가가 역부족이다.
차라리 고은 시인의 문의 마을에 가서, 를 읽으며 삶의 한 끝에서 만나게 될 죽음을 긍정하든지,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읽으며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삶을 누리는 게 행복할 일이다.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 고 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귀천(歸天)
- 千祥炳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