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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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명인사들의 칼럼집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칼럼이란 것이 보통 시사적이기 쉬워서 그때그때 읽지 않으면,

아무리 저자의 사후에 모은 책이라 하더라도 엉성하기 쉽다.

그렇지만 김규항, 홍세화 같은 이들의 칼럼집을 또 사서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가진 사고의 명료함, 세계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식견들은 시대가 변해도 바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심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유명 작가의 온갖 잡문들을 그냥 끌어모은 건데, 값은 14,800원이라니...

 

그렇지만, 역시 세계적 작가의 글들 속에선 위트와 그 특유의 정확한 표현들, 재미를 찾을 수 있는 대목들을 만나게 된다.

 

오브라이언이란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소년 같은 소탈한 아저씨' 느낌의 사람이란 표현을 쓴다.

아, 소년 같은 소탈한 아저씨로 나이들어 갈 수도 있구나...

 

오늘 낮에 문태준의 '먼 곳'이란 시집을 읽으면서,

나이들어 아름답기는 힘든 노릇이다...라고 리뷰를 올렸는데,

하루키 이야기 중에,

폼나게 나이들기는 어렵다... 는 구절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나는 아름답게 늙기보다, 폼나게 나이들기보다,

정말, 소년 같은 소탈한 아저씨가 되고 싶다. 가능할까? ㅎㅎ

 

그는 작가보다 독자의 몫을 중시하는 소설가다.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이라면서.

그것을 맨 뒤의 인터뷰에서 '열린 결말'이라고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탁견인 구절을 발견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87)

 

그렇다. 결혼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고, 나쁠 때는 어쩔 수 없다.

이게 결혼의 진리다. 주례사로 꼭 맞춤한 구절.

 

자유분방해 보이는 그가 예루살렘에 가서 용기있는 말을 했다.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91)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것도 예루살렘상을 받으러 가서 한 말이란다.

 

나도 늘 궁금하던 '노르웨이의 숲'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ㅋㅋ

원래 제목은 Knowing She Would 였단다.

가사가 Isn't it good, knowing she would?

멋지잖니? 그녀가 해줄 거라는 걸 아는 일은... (아, 얼굴 빨개지는 내용이야...)

그런데 규제가 심해서 음반 제작이 불가했다고...

존레넌은 노잉쉬욷..을 금세 비틀어 노르위전 욷...으로 바꿨다는... 설이 있다는...

뭐, 미친놈(싸이)의 '완전히 좆됐어'가 '새됐어'로 변신한 거나 마찬가지다.

 

하루키도 젊은 시절, 재즈 카페를 하면서 음악에 빠진 적이 있다.

뭘 해도 잘 풀리지 않던 날, 존 레넌의 노래를 읽는다.

 

Isn't he a bit like you and me...

그런 사람이라면, 당신이나 나나 좀 닮지 않았나요..

 

재즈카페의 추억을 떠올리다 어느 여인과의 마지막 대화 후,

 

나는 좀더 제대로 된 말을, 뭔가 좀더 확실하게 마음이 담긴 말을 건넸어야 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내 머릿속에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이별의 대부분은 그대로 영원한 이별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입밖에 내지 못한 말은 영원히 갈 곳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런 가사가 아름다웠던 날들...

매일의 이별을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영원한 이별이 되기 때문에...

 

번역가로서의 그가 레이먼드 카버를 인터뷰했던 추억을 떠올리는 구절도 인상적이다.

 

이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 소설로도 인품으로도.

말수가 적고, 안절부절 못하고,

새우등을 점점 더 둥글게 말며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한다.

생각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따금 우스운 말을 던지고는 수줍은 듯 빙긋이 웃고,

그러고 나서는 매우 심각하고 떫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대화중에 홍차를 턱없이 많이 마시고, 이따금 창밖으로 보이는 태평양을 눈이 부신 듯 바라보고...

 

아, 이런 사람이 '소년 같은 소탈한 아저씨'로 분류되는 그런 사람일까?

 

은희경은 '생각의 일요일들'에서

문장의 탄력에 대해 궁리해야 한다...고 했는데, 하루키의 문장론도 멋지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잃지 않겠지.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주로 재즈에서) 배웠다.

그리고 그 리듬에 맞는 멜로디, 요컨대 적확한 어휘의 배열이 뒤따른다.

그것이 매끄럽고 아름답다면,

더 바랄게 없다.

그리고 하모니, 그 어휘들을 지탱해주는 내적인 마음의 울림.

그다음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뒤따른다. - 즉흥 연주.

특별한 채널을 통과한 이야기가 내부에서 자유로이 솟구쳐 오른다.

나는 그저 그 흐름을 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이 온다.

작품을 다 마치고 맛볼 수 있는

내가 어딘가 새로운, 의미있는 장소에 이르렀다, 는 고양된 기분이다.

그리고 잘만 풀리면, 우리는 독자 = 청중과 그 고조되어가는 기분을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데서는 얻을 수 없는 멋진 성취다.(406)

 

재즈 피아니스트 탤로니어스 멍크란 이가,

"어떻게 그렇게 특별하게 울리는 연주를 하나요?"하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했단다.

 

It can't be any new note.

When you look at the keyboard, all the notes are there already.

But if you mean a note enough, it will sound different.

You got to pick the notes you really mean!

새로운 음은 어디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음은 이미 그 안에 늘어서 있지.

그렇지만 어떤 음에다 자네가 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퍼지지.

자네가 해야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워담는 거야. (406)

 

그래.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태양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이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지,

의미를 담는 것이 중요한 음이 된다.

 

특별하게 울리는 연주를 위한 비법은 평범한 것이다.

곧, 특별한 삶을 사는 비법 역시 평범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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