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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 ㅣ 창비시선 343
문태준 지음 / 창비 / 2012년 2월
평점 :
문태준의 가재미는 납죽 엎드린 존재다.
가장 낮은 곳에서, 눈을 둥글리며 세상을 보는 존재.
그 가재미와 소통하기 위해 시인은 납죽 엎드렸던 존재다.
이제 그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낮은 곳에 대한 연민과 애타는 마음 역시 스러진 것은 아니지만,
삶의 미련이 숨통을 옥죌 때,
하루중 때때로 이유없이 느닷없이 막막한 심사를 만들 나이,
먼 곳을 응시하는 남자의 뒷모습은 외롭다.
조용하여라
저 가슴
꽃그림자는 물속에 내렸다
누구도 캐내지 않는 바위처럼
누구든
외로워라
매양
사랑이라 불리는
저 섬은 (섬)
70년 개띠인 남자가 나이들면서 외로움을 느낄 때,
그의 뒷모습은 하나의 섬 같아 보인다.
또 하나의 객지(客地)가 저문다(망인, 부분)
죽음 역시 낯설지 않은 그림자로 남는다.
그 남자가 사랑하는 법은 이렇다.
서로 넘나들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물들어가는 사랑법.
서로 외면하면서도, 아름다이 나이들어가는 사랑법.
쓸쓸하다.
그러나, 사랑이 듬뿍 묻어남은,
그대와 나 <사이>가 있기 때문인지...
그 사이엔 초원이 있어도 무방하고, 지평선, 대양이 있어도 무방하리라.
나이들어 아름답기는 힘든 노릇이다.
그대와 나 사이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그대는 그대의 양 떼를 치고, 나는 나의 야크를 치고 살았으면 한다
살아가는 것이 양 떼와 야크를 치느라 옮겨 다니는 허름한 천막임을 알겠으나
그대는 그대의 양 떼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고
나는 나의 야크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자
오후 세 시 지금 이곳을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나 되어서
그대와 나도 구름 그림자 같은 천막이나 옮겨가며 살자
그대의 천막은 나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있고
나의 천막은 그대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두고 살자
서로가 초원 양편으로 멀찍멀찍이 물러나 외면할 듯이 살자
멀고 먼 그대의 천막에서 아스라이 연기가 피어오르면
나도 그때는 그대의 저녁을 마주 대하고 나의 저녁밥을 지을 것이니
그립고 그리운 날에 내가 그대를 부르고 부르더라도
막막한 초원에 천둥이 구르고 굴러
내가 그대를 길게 호명하는 목소리를 그대는 듣지 못하여도 좋다
그대와 나 사이 옮겨가는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옮겨가는 초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