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니파타 - 불교 최초의 경전
법정 옮김 / 이레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불교를 '유아론적 사고'의 극치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유아론은, 실재하는 것은 자아 뿐이며, 다른 것은 자신의 의식 속에 존재할 뿐이라는 말이다.

극단적 형태의 주관적 관념론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어이, 세상이 내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냐?

암 것도 없지.

 

숫타니파타는 소승 경전 중 하나다.

여시아문,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 하고 증언하는 기록들인데,

중국을 거쳐 대승 불교가 삼국에 전파되다 보니,

소승 불교의 원뜻을 개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류를 구원하겠노라는 '대승'적 차원의 큰 수레에 비하면,

제 혼자 고통을 벗어나려는 '소승'적 작은 수레는 보잘것 없다는 것인데,

나가르주나의 '공' 즉 있는 그대로 보라. 뭐가 있다는 것인지,

이런 잔혹극 속에서 대승의 승리는 쫌, 우스워보이기도 한다.

 

소승불교가 요즈음 다시 인기를 얻었었는데,

위빠사나라든지, 틱낫한 스님처럼,

한국 현상의 독특한 토착 불교인 '혼합 종교'로서의 불교의 성격을 버리고,

자신에게로 돌아가자는 반성이 일으킨 현상이겠다.

 

8정도가 소승 불교의 중심 계율인데,

특수 계층의 초창기 불교가 주가 되므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잔혹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세상을 어떻게 혼자서 가는데... 너무 래디컬한 모습이기도 하다.

 

8정도 대신 대승에서는 6바라밀의 단계를 설정한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경지...

보시하고, 계율을 지키며, 수모를 견디어 나도, 중생도, 오래 사는 사람도 없음을, 곧 텅빔을 관조하란 것.

그러기 위하여 정진하며, 지혜를 얻기 위하여 선에 들고, 드디어 지혜로운 자가 되어 반야의 눈을 얻는 것.

계, 정, 혜가 말은 좋아 보이지만,

호국 불교, 가르침의 불교, 이렇게 보편 종교를 지향하노라면,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는 것은 하나도 구하지 않겠다는 것과 모순적으로 통하는 구석도 생기게 되는 것.

 

소승의 자신을 위한 수양을 넘어서

대승의 아미타(과거불), 미륵(미래불), 정토사상 등은 애초의 종교 사상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초기 승려들은 탁발을 하였는데,

구걸을 하는 일은 모든 수모를 견뎌내겠다는 자세라고 한다.

삶에서 이렇게 치열한 삶을 살아야하는데,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스스로 배를 비우라>고 하고 있다.

<텅 빈 배, 虛舟>가 와서 부딪힌다면 그 배한테 화를 낼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상대 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화를 내게 되는 것.

자신을 닦는 일은 스트레스를 안으로 삭여서 '사리'를 만들라는 노릇이기도 해서,

정신건강상 좋지 않을 수도 있어 보인다. ^^

 

바닥이 얕은 개울물은 소리내어 흐르지만,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는 법이다.(247)

 

스스로를 닦는 일이 우선인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는 '선공후사, 멸사봉공'의 정신이 아름다운지,

글쎄, 실존의 인간에게 '공'적인 사상의 강요는 또하나의 폭력이었던 것이 인간 역사의 결론임을 보면,

호국 불교로서의 종교 행위는 초기 종교의 정신을 배워야 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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