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인간의 법칙 - 64괘에서 배우는 인간과 자연의 지혜
이창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내가 주역에 대하여 이해하려 노력한 적이 몇 번 있었으나,

강론을 들을 기회가 없는 처지에선 산의 초입에서 길을 잃고 만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개중에 주역이 놓인 위치를 알려주는 책이 있었다면, '주역의 과학과 도' 정도가 아닐까 싶다.

 

주역의 과학성을 상징체계에 의지하여 설명하려 했던 책이었는데, 비교적 재미있었다.

 

이 책은 64괘에서 배우는 자연의 지혜란 부제로 풀이되고 있는 바,

주역은 자연의 지혜를 배우기 위하여 64괘를 활용하고 있는 체계이며, 그것은 '삶의 법칙'을 찾으려는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라는 제목으로 명쾌하게 내용을 요약하여 준다.

 

춘추전국시대의 피바람이 불던 시절,

진시황은 황제의 나라인 '진'을 건국한다.

그러나, 각 지역에 할거하던 호족들을 견제하려 지나친 순수(돌아봄)에 몰두하다 과로사하고 나라는 망한다.

진시황이 국가를 다스리려하였을 때 내세웠던 프로그램은 토목공사를 통한 노동력 창출로 인한 경제 부흥이었을 것이고,

그 결과 만리장성, 운하 등도 건설붐을 이루었을 것이다.

 

진시황이 오랑캐 호(胡)자를 두려워하여 만리장성을 쌓았으나, 자식(호해)때문에 망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진시황을 타산지석 삼아 이후의 정권을 잡은 한나라는 단순한 '프로그램' 차원에서 경제부양을 시켜봤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중앙집권을 위한 봉건제, 군현제 등을 실시한다. '시스템'의 변화가 체제 유지의 동력이 됨을 생각했을 것이다.

 

주역은 '우발성'으로 점철되는 인간의 운명을 단순한 '프로그램' 하나로 그때그때 넘기는 고식지계를 거부한다.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일들은 어떤 '시스템' 속에 내재된 법칙이 있을 것이며,

그 법칙을 알아내서 대비하는 것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인간의 자세를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장자의 제물론에 조삼모사 이야기가 나온다.

송나라(모지란 놈은 맨날 송나라야 ㅋ) 저공이 원숭이한테 먹이가 부족하게 되자,

앞으론 아침에 3개 저녁엔 4개 주겠다 했더니 원숭이가 화를 냈고,

저공이 다시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제안하자 원숭이가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보통 조삼모사는 조령모개, 임기응변으로 남을 속임, 협잡꾼 등으로 쓰이기 쉬운 말이지만,

장자의 원문에는 이야기 뒤에 이런 구절이 덧붙는다.

 

명분과 실질이 변함이 없는데 기쁨과 노여움이 일게 되었다.

이는 시비에 구애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시비를 떠나 조화롭게 하고 도리에 맞게 처신한다.

이러한 것을 양행(兩行)이라 한다.

 

'먹이가 부족하게' 된 시대.

한국은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한다.

그래서 노여움이 하늘을 찌르지만, 권력자들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성인이라면, 양쪽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그것이 <和>일 것이고, <不同>일 것이다.

양편이 모두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의사소통에서 온다는 이야기겠다.

원숭이들이 화를 낼 때,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정현종의 시 중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시가 있다.

사람에겐 가지 못한다. 내거 너일 수 없고, 네가 나일 수 없다.

그렇지만, 군자는 '네가 이만큼 와, 내가 이만큼 갈게, 우리 섬에서 만나자'하는 '화'를 활용한다면,

소인은 '일로와 인마, 짜슥이 죽어 봐야 저승을 알지?'이렇게 자신과 같지 않은 존재를 처벌한다.

 

주역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통하면 오래 간다'는 말이다.

조삼모사에서 변화의 '양행'이 상생의 길이 되고 소통이 되어 오래간다는 이야기이고,

사람들 사이의 섬에 가려는 자세가, 소통과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겠다.

 

주역을 점치는 책으로 치부하기엔 소문이 너무 많이 났다.

특히 공자가 죽간으로 된 주역을 읽는데, 하도 여러번 폈다 접었다 해서 세 번이나 줄이 끊어져 새로 가죽끈을 묶었다는 위편삼절의 책이다. 공자가 머리 싸매고, 주역의 <시스템>적 사고를 국가 운영에 도입하려고 골머리를 앓았단 근거겠다.

 

주역은 괘와 효의 풀이를 통하여 삶의 기운생동의 법칙성을 풀이하려는 시도다.
그 풀이에는 무식한 놈도 알아먹을 수 있는 <형상>을 들이미는데,

그게 관조의 법칙이다.

원리를 형상을 바라보고 비춰보는 데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그 비유가 워낙에 상징성이 강하기때문에, 이현령비현령이 되어버릴 수도 있지만,

서양의 생각이 이원론 또는 사원소론 정도로 분화되는 데 비하자면,

주역의 64괘의 384개의 효를 설명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사고의 증폭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네 개의 화구로 불을 때던 중국의 봉수대와 다섯 개의 화구를 갖춘 조선의 봉수대가

약속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16개와 32개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던 것에 비하자면,

이원론이나 사원소론에 비하여 주역의 괘사와 효사의 <상징성>이 가지는 힘은 가히 폭발적이다.

 

 

    연기의 도시, 중국 옌타이(燃台)의 봉수대                                   한국 천성산의 봉수대

 

 

 

그런데 384개의 효사가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치 한글의 천지인 세 가지 획으로 한국에서 발음되는 21개의 모음을 이어 붙이는 마법처럼,

효들이 아래위로 뒤집히기도 하고, 아래위의 괘가 뒤바뀌는 연상작용도 의미를 가진단다.

더 환장하겠는 것은, 비슷한 효들이 이어져 있으면, 뭉뚱그려서 이건 하나야~ 이렇게 보는 호연지가가 담겼으며,

여섯 개의 효 중에서 3-5효와 2-4효를 취하여 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음까지 상상한다면,

이건 뭐,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음양에서 사상으로 팔괘까지 퍼뜨린 뒤에 다양한 운용법을 활용하여 태극의 변화 원리를 하나의 원리 속에 꿰뚫으려 한 방대한 사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끊임없는 '예스'와 '노'의 길을 따라 걷게 되는 알고리슴의 지루한 순환과 전진을 나는 주역 속에서 본다.

'노'의 렉에 걸린 알고리슴의 지루한 반복은 어느 값이 채택되는 순간,

'예스'의 수로를 타고 미끈하게 다음 단계로 전진한다.

그러나 다시 '노'의 반복 속으로 빨려들게 되는 컴퓨터의 원리가,

상징적으로 본다면, 인간의 시지프적 삶과 상통하는 거나 아닌가 싶다.

 

 

주역은 우리에게

 

네 마음이 저 자연의 영원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고,

네 마음은 저 천지와 일월의 움직임에 따른다고 가르쳐준다.

점을 묻는 것은 자연의 흐름을 다시 음미하여,

그 안에서 마음의 있는 그대로의 흐름을 찾아내고 확인하는 행위이다.

주역의 괘들은 모두 역,

즉 한번 음이 되었다가 양이 되는 자연의 변함없는 흐름이 자연이나 인간의 마음 모두를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울처럼 비춰보여주고 있다.

자연의 흐름이 괘를 낳고, 점을 쳐 그 괘를 얻어,

그것의 의미를 묻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지금 어느 때에 있는 것이고, 어디로 변해갈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통해야 할 곳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멈춰야 할 곳에 서있는 자신을 반견한다.

통하지 않고 서있는 자신을 뉘우치고,

 

멈춰서는 안 되는 자신을 독려하게 된다.(229)

 

 

그래서 주역은 개인적인 삶에도 중요한 관조의 요소를 부여하기도 하는 셈인데,

솔직히 그 많은 원리들을 읽어나가는데 나는 게을렀다.

이 책만으로 그 원리들을 이해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으므로, 그 부분은 스킵하였다.

상세한 내용은 주역1,2와 계사강의를 더 읽는 수밖에 없다.

 

거북점은 '확정적인 상징'이며 주역점은 '오르고 내리며 가고 오는 상징, 승강왕래'가 있다고 한다.

이것이 주역의 힘이고, 원리의 탁월성인 지점이다.

 

심리학자 '융'이 주역에 빠진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mbti처럼 간단한 도구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마음 나도 몰라~ 이런 것이 인간이지, 나는 내향성이야, 라고 단언할 수 있는 스타일은 없는 셈이다.

 

 

오직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생각하지 좋아하는,

 

깊이 생각하고 되돌아볼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해 적합한 책.(337)

 

 

 

이라고 융은 기꺼이 주역의  판촉 사원이 된다.

 

 

 

주역의 상징성이 다양하다는 것이 장점이 된다는 주장에,

그것이 무슨 법칙성이냐는 비판이 붙을 수 있다.

저자는 이런 반박으로 주역을 감싸안는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모시고 와서...

 

은유는 하나의 사물에 그것과는 다른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은유에 정통하는 것이다.

이것만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것이며,

천재성의 징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훌륭한 은유는 서로 다른 사물들의 유사성에 대한 '직관적 지각'을 함축하기 때문이다.(시학)

 

상징성의 관조로 이뤄진 물상, 그리고 변화의 방법론인 호체, 추이, 변효 등의 상세한 설명은 어렵다. 스킵이다. ㅠㅜ

그렇지만, 물상, 호체, 추이, 변효 등에서 주역의 활용 방안은 무제한으로 메가톤급 폭발력을 발휘한다.

 

융의 관심은 마음의 고통에 대한 치유,

그를 위한 자각, 결국 마음을 찾아나서기를 권유하고, 자각하여 삶을 온전히 누리라는 제안을 하는 셈이다.

 

융의 주역에 대한 접근은

마음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자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각이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항상 '각성'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깨어있다'는 비유는 여기에 참 적절한 표현이다.

대부분 잠들어 있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움직임이 밝게 자신에게 알려질 수 있다면,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병적 조건들은 그 자체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은 고통이라는 실체가 파괴되고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을 알기때문에 더이상 고통으로부터 연유되는 불필요한 삶의 짐을 지지 않고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깨어있는 우리들은 슬픔때문에 슬프고,

기쁨때문에 기쁘며,

노여움때문에 노여워하고

즐거움때문에 즐거워할 수 있다.

그 느낌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슬픔과 분노를 감추거나 은닉하고, 다른 대체물로 그것을 소외시키는 몽매한 짓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울고, 웃으며, 기뻐하고 화낼 줄 아는 인간이 되자는 것이 그네들의 최상이지만 평범한 목표이다.(421)

 

자신의 삶을 대체할 수 있는 시뮬라시옹은 없다.

시뮬레이션 게임 속에서, first-person shooter (FPS) 게임처럼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들썩거려 봤댔자,

또는 롤플레잉 게임(RPG)처럼 특정한 능력을 구비하여 아무리 기를 쓰고 용을 쓰며 만렙이 되어봤댔자,

본인은 소외될 따름인저.

 

이 책은 주역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알아듣겠는 부분은 밑줄 그어가며 공부하고,

아, 쫌 복잡한데, 하는 부분은 스킵해서 다음 챕터부터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

도움이 되고 재미있는 부분도 있는데, 괘사의 물상 설명이나 특히 효사의 호체, 추이 등은 지나치게 깊이 들어가면 머리가 아프다.

머리 아픈 부분은 뛰어넘고, 취할 부분은 취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 읽고 뒤표지를 보니 'CEO를 꿈꾸는 리더라면 그 어떤 책보다 주역을 먼저 읽어라!

리더의 안목을 높여주는 행복한 주역읽기'라고 상업적 문구를 붙여 두었다.

ㅋㅋ 아마 실패했을 확률이 높다.

왜냐면, 그런 리더들이라면, 본제목과 부제에 그 구절이 적힌 책들을 샀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더들이 이런 변화의 원리를 공부하면서, 세상 변하는 걸 탐구한다면 아, 이 또한 아름답지 아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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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 글 중간에 작게 삽입된 괘들이 이어졌는지 끊어졌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 것들도 많아 읽기 곤란했다.

 

그리고 맨 뒤에 덧붙여둔 (455-) 괘사표는 복사해서 붙여놓고 공부하기에 좋은 도표인데,

화수기제, 수화미제는 좀 그렇다.

불이 위에 있고 물이 아래 있으면, 불은 훨훨 날아가고, 물은 더 아래로 갈앉는다.

가정이 이러면 절단난다. 남편은 바람다고 아내는 우울증 거리는 셈이다.

불이 아래 있고 물이 위에 있어야, 서로 <소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화수미제이고 수화기제여야 할 것이 그 뒤편의 460쪽 그림에서도 화수기제, 수화미제로 그려져있다.

그 도표에서도 선이 가늘어 맘이 쓰이고 계속 불편했다.

 

427쪽에 호체괘를 호괘 분석이라 쓰고 있다. 줄여서 그렇게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색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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