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레레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성당에 가면 졸수가 없다.

툭하면 섰다가 앉았다가, 뭐라고 중얼중얼 함께 소리내서 말하는 구절들이 잠을 깨운다.

그 중에 한 마디가 저 구절이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미저리란 영화가 있었다.

스티븐 킹의 스릴러였던 것 같은데 내용은 모르겠는데...

영어 뜻이 고통, 비참, 불행... 같은 거니깐,

잔인한 사건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내용이었던 듯 하다.

인터넷에서 이야기를 찾아보니 이렇다.

 

소설가 폴(제임스 칸)은 폭설이 내리는 깊은 산 속에서 집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다 사고를 당한다. 마침 폴의 열광적인 팬인 전직 간호사 출신의 애니(캐시 베이츠)가 그의 생명을 구해주고 정성스럽게 간호한다. 그러나 폴에 대한 애정은 집요한 편집증으로 돌변해 애니는 폴을 감금하고 그를 폭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의도대로 소설을 완성하게 강요하고 점점 난폭해져간다.

 

스릴러는 보통 살인 현장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현장에 나타난 형사와 범인의 꼬리... 꼬리 감추기와 꼬리 찾기의 연쇄...

작가의 관심사에 따라서 범인의 삶이 유색인종의 고단함이거나 무산자의 핍진함이어서 독자가 연민을 느끼게도 하고,

정신적 불안정함과 심한 경우 우울, 착란, 섬망, 과대망상, 분열로까지 나아가는 경우는 흔하다.

 

이 스릴러 역시 살인 사건의 현장에서 시작되고, 형사들과 범인들의 숨고-찾기(영어론 hide-and-seek가 숨바꼭질이란다.)가 이어지는 전형적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독특함은 작가의 관심 분야가, 교회음악과 종교, 그리고 약물학과 클럽, 무정부주의 같은 분야까지 번져나가 서로 간섭현상을 일으키고,

그래서 일반 독자들은 음악 따로, 종교 따로, 정치사상 따로, 여행 따로의 사고를 하기 쉽지만,

소설 속의 사건과 소재들은 서로 회절 현상을 일으키면서 독자들의 심리적 파동에 변화를 준다.

 

그 변화가 재미일 수도 있고,

소설을 읽으면서 음악을 듣고 있는 현장에 있는 듯한 가슴의 박동 변화를 느끼게 하기도 하는 듯,

연속극처럼 흥미로운 사건들이 잇따르지만,

자칫 치밀한 곳까지 다소 현학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에선 지루하게 하는 요소가 될 법도 하다.

그렇지만, 지루할 만한 부분에서 그의 현학은 절제되어 있다.(휴, 작가가 술마시고 떠들면 끝도 없을 사람이다.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란 사람.)

 

기묘한 살인은 다이달로스의 미궁으로 빠져들지만 그들에겐 아리아드네의 실이 없다.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아르메니아 출신 퇴역 경관 카스단과,

고아 출신이며 무에타이와 음악에 뛰어난 마약쟁이 경찰 블로킨의 추리.

그들을 내세워서 '왜 악은 반복되는지?', 또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알 수 있는지?'

이런 존재론적 또는 도덕론적 사고를 한번 해보자는 심산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면,

몽롱한 정신 세계가 범죄의 세계와 마구 뒤섞인 수채물감들처럼 번져나가는 영화가 될 것인데,

인물들의 중성적 이미지를 잘 살려내는 것이 성패의 열쇠가 될 수도 있을 듯 하다.

 

어린이의 이미지에 얹어 탄생시킨 '殺聲'의 창조.

문명을 거부한 중세적 풍요로움의 종교집단과

현대적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정상인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우울에 중독된 인간들인 현대인들을 대비시키면서,

칠레와 프랑스, 자치정부 아순시온 등 소설 속 공간 여행을 통해,

특히 아순시온(파라과이의 수도)을 프랑스 내의 환상적 공간처럼 묘사함으로써,

작가는 진정 '불쌍히 여기셔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혼동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국가라는 '절대 선'에 의한 '평화를 위한 폭력'으로

자치정부(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절대 악'은 '평화를 위한 궤멸'을 당하는 것으로

뻔한 결말을 맺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세레레... 작가가 곱씹으면서 보여주는 주제는,

과연... 선과 악이 구별되는 것인지...

평화와 폭력은 반대되는 것인지...

아르메니아 카스단의 정체를 알고 나면,

카스단은 카스단이 아니다.

아르메이아인 카스단은 아르메니아인도 카스단도 아니다.

이런 모순 명제에 담긴 '진실'을 생각해게 되듯,

아순시온에 맞서는 블로킨이 마약을 끊었다가 잊혔던 과거를 되찾는 과정에서 다시 마약을 활용하는 이야기라거나,

블로킨을 죽이려던 무리들과 블로킨은 모순 관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뒤적거리는 것은,

과연 인간의 <의식>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존재론적 철학의 명제를 가슴에 가득 남기고 이야기는 스러진다.

 

다양한 곳을 떠돌며 살아온 작가가

유목민적 '리좀'의 사고방식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덩굴뿌리가 땅속에서 뻗어가듯 생각의 결을 자꾸 확산시키는데,

한 곳에서 붙박혀 살아온 독자인 나는,

정착민의 '트리'식 사고방식으로 글을 읽게 되면서,

자꾸 선과 악의 충돌과,

선의 승리에 의문 부호를 다는 텍스트의 변신에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지적 통찰의 바다에 빠져보고 싶은 독자라면 한번쯤 성가곡 미세레레의 물결에 푹 젖어봄 직도 하다.

야수파 작가 루오는 같은 주제인 미제레레 연작 58편을 그렸다.

 

 

41. Augures 운명의 여신들(그리스 신화의 모이라이Moirai, 즉 생명의 실을 잣는 클로토(Clotho), 그것을 재는 라케시스(Lachesis:할당자), 그리고 운명의 순간 거대한 가위로 그것을 자르는 아트로포스(Atropos:강직한 자))

43. 우리는 죽어야 한다. 우리와 우리의 모든 것도 다 함께

 

37. 호모 호모니 로푸스(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이다)

46. 의인은 향나무처럼 후려치는 도끼를 향기롭게 한다

49. 마음이 숭고할수록 목은 덜 뻣뻣하다

22. 여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가장 좋은 직업은 척박한 땅에 씨를 뿌리는 것

 

55. 때때로 장님이 눈이 보이는 자를 위로했다

56. 허세와 불신의 이 암흑 시대에 깨어 있는 '땅 끝의 성모'

58. 그의 고통 덕분에 우리는 치유되었다

 

http://cafe.daum.net/37TH/SYQT/214?docid=1Fo0b|SYQT|214|20100421204814

(루오의 연작 링크)

 

인간의 한계, 인간의 운명

그 앞에서 인간의 약자이고, 악한이 되나,

후려치는 도끼조차 향기롭게 하는 의인이 있고, 척박한 땅에 씨를 뿌리는 이도 있는 법.

 

그 희망을 믿고,

헛똑똑이들을 믿지 말고,

허세와 불신의 암흑 시대에 깨어서

치유받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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