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3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CJK, 이 석자가 표지에서 시종 거슬린다.

"원래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은, 내용으로 첨부되는 게 아니라, 형식 속에 침전되는 것."

이런 중요한 걸 아는 저자가 왜 표지에 지 이름 석자를, 그것도 미제 글자로 떡하니 박아 두었단 말인가.

이 책의 뒷표지엔 알라딘의 어느 독자 리뷰에, 쉽게 쓰였고 이해하기 쉽다고 한 서평이 적혀 있지만, 미학과 그렇게 멀리 살아오지 않았다고 착각하는 나에게 이 책은 충분히 어려웠다.

'가상'과 '진리' 사이를 오간다는 예술의 진자를 작가는 잘도 따라가는 것 같지만, 나는 능력(Konnen) 부족을 의지(Wollen)로 읽었다는 쪽이 가깝다.

美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란 명제에는 동감이다.

'어렸을 적에 우연히 들어간 대나무 숲은 푸른색 숨결을 내뿜고 있었다. 이 신비야 말로 진짜 자연이다.'고 하며 '아우라'를 설명하는 부분은 탁견이다. 올 6월 교육과정 평가원 모의고사에도 실린 부분이다. (난 수능이 정말 대학 입학 고사의 수준으로 적합한지 상당히 회의적인 국어 선생이다.)

몇달 전, 트로이를 볼 때, 트로이 성 앞의 금빛 신상을 보았다. 그 신상이 있던 자리는 바다와 어울려 정말 신성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던 자리였다. 그 많던 그리스, 로마, 이집트의 신전, 제단, 오벨리스크, 그리고 숱한 프레스코화들, 그것들이 '존재'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러나는 아우라를,

합리주의적 정신이라는 이름의 제국주의자들은 신비가 존재하는 것을 못견뎌해 그 비밀을 밝혀내 굳이 자연의 아우라를 깨뜨리고 만다. 영국, 빠리의 박물관, 광장들의 미술품들은 그래서 아름답기 이전에 날 다리만 아프게 했던가.

그는 에셔, 마그리뜨, 피라네시의 알레고리를 통해, 눈에 보이는 형체는 아무 의미도 없으나, 뭔가 다른 무언가를 말하려고 우의적 기법을 다양하게 구사한다.

그리고 플라톤, 아리스, 디오게네스의 투박한 대화들과 구어적 문체도 글을 쉽게 읽도록 한 형식적 배려로 보인다.

그러나 이 관점은 역시 고전에 치중한 1권에서 유효했고, 우연의 카오스가 필연의 코스모스를 뒤엎어 우연과 필연의 카오스모스로 변해버린 현대 예술의 이해에는 그닥 효과적인 것 같지 않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 하듯이, 모든 위대한 화가는 자기만의 미술사를 갖고 있다. 진중권의 이 저작은 그의 폭넓은 비평 활동의 한 함축이라 하기엔 아직 좀 미흡해 보이지만...

유홍준(그도 미학과 출신이다.)의 답사기 1권이 '아무리 가까운 말투와 쉬운 예들을 들어 말해도 어떤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을 지닌 원작의 아우라를 가진 데 반해, 2권이 멀리 있어도 가까운 것이 반복된 듯한 복제의 아우라를 보여주었던 것은, 문화재에 대한 그의 독보적인 아우라가 1권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느낀 적이 있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복제술은 "피카소를 보는 보수적 태도를 채플린을 보는 진보적 태도로 바꿔" 주듯이, 매체는 대중을 주체로 만든다고 한 그의 말처럼, 이 책의 제 1권은 충분히 미학 오디세이의 제목을 붙일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본다.

다시 돌아와, 갓낫아이 이름을 원주로 붙일까, 지현이로 붙일까를 고민하던 전씨 부부가 내지른 말, "그래, 전원주가 전지현보다 이쁘다!"는 우리의 눈을 고정시키지 말라는 경고로 듣고 있다.

P.s. 이 책의 저자가 이 비평적인 리뷰를 읽는다면 상당히 기분나쁠 것이다. 이 참에 더 기분나쁘게 하자.

1권 166쪽의 정 12면체는 정20면체의 오류다. 개정 전 저지른 오류를 그대로 싣는 것은 나쁜 일이다.

3권 316쪽의 스탈린의 순서를 다시 보시길...

CJK, 너무 기분 나쁘신가. 그럼 칭찬 한마디. 개정 전의 칼레이도치클루스는 따라 만들기 어려웠는데, 이번 책에선 좀더 상세한 그림을 덧붙인 점, 훌륭하다. (근데 순서가 좀 이상하긴 마찬가지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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