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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우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8
샤를 보들레르 지음, 윤영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보들레르의 '악의 꽃', '내면 일기'나 이 책 '파리의 우울'을 그냥 읽으면 좀 어리둥절 하다.
도대체 그 당시 작가들의 머릿속에선 어떤 사고 기제가 작용하였기에 이런 글들을 마구 적어대고 있는지...
그림이 환하게 그려지지 않아서다.
보들레르의 시대를 읽기 위해서는 당시의 문화사를 공부해야할 것인데,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섬세한 해제를 붙여두고 있다.
글마다 붙어있는 해제에서는 보들레르의 다른 시집에서 다루고 있는,
유사한 소재, 유사한 주제가 담긴 작품들을 나란히 실어 두고 있어서 독서에 도움을 준다.
겉모습은 아름답게 꾸미고 있지만, 속물적인 사고로 가득한 여자들에 대한 그의 혐오는 정말 시니컬하다.
<마음을 털어 놓고> 하는 이야기에서 그의 여성 경멸은 대단하다.
여성의 무감각과 정신성의 부재를 대놓고 깐다.
이런 것을 두고 여성비하론자라고 비판할 순 없다.
그것이 그의 시대였고, 그 시대에 대한 리얼리즘의 승리라고 사회주의 문학관에서 내세우던 것이니 말이다.
<시는 도덕과 독립되어야 한다>는 말은 의미있다.
시가 가진 세계는 인간의 내면의 반영이므로,
신과 사탄의 세계를 향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니, 도덕성의 잣대를 거기다 들이대는 일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각자 자신의 키마이라(괴물)를 등에 짊어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 잔인한 짐승에게 화를 내고 있지 않은 기묘함>을 가진 존재라고 읽는다.
그는 '나선과 포물선, 나사와 만화경'라든가, '갑자기 던져진 조약돌의 파문' 같은 선을 좋아한다.
그 선들은 유연하면서 충분히 거친 불협화음의 욕구의 세계를 감지하는 자신의 마음과 어느 지점에선가 교차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속한 물질주의와 거짓 자만심, 비겁으로 가득한 인간의 세계에 침을 뱉는 보들레르의 글에선,
위선, 인간의 무지가 드러나는 낮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정적, 휴식, 고독이 드러나는 밤이 인간의 내적 성찰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으로 느낀다.
아, 별 수 없는 개새끼. 배설물 꾸러미나 좋아하는...
너 역시 대중과 다를 바 없다. 그들에게는 절대로 은은한 향수를 줘서는 안 된다.
오물이나 잘 골라 주면 된다.
속된 대중의 성향을 애완견에 빗대었다.
<악마>의 이미지를 띠는 보들레르의 시들은,
충동적인 패덕성과 불건전함의 매력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우리가 영화에서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 아닌가 말이다.
잔인함의 극치를, 더럽고 비겁한 인간의 형상화를 갈데가지 가도록 만드는 데서,
우리는 '관음증'의 자유를 만끽한다.
그런 것이 예술임을, 예술은 인간의 내면 세계를 환하게 밝혀서 자유를 던져주는 것임을,
보들레르는 '유리장수'에 대한 폭력적 언설로 던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