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식형 인간으로서의 김제동
김제동이 초식형이라니...
김제동이 풀만 먹고 산다는 얘긴가?
그게 아니다.

무릇 동물들은 초식성과 육식성으로 나뉜다.
초식성 동물과 육식성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눈의 위치와 어금니의 생김새다.
사자, 치타, 표범 등 육식성 동물의 두 눈은 얼굴의 전면에 위치하여 눈의 사이가 가깝다.
목표로 하는 먹이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사슴, 기린, 소 등 초식성 동물은 두 눈의 사이가 너르다.
항상 자신들을 노리는 육식성 동물들을 살피기 위해서다.
올빼미, 부엉이, 독수리 등 육식성 조류의 두 눈 사이는 가깝다.
공격적이며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기러기, 쇠오리, 비둘기 등 초식성 조류의 두 눈 사이는 넓다.
참으로 착하고 평화롭고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가?

사람도 같다.
두 눈의 사이가 가까운 사람들은 육식형 인간으로...
두 눈의 사이가 너른 사람들은 초식형 인간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관상학에도 나오지만 육식형 인간들의 성향은 공격적인 면이 많고, 초식형 인간들의 성향은 내성적, 수동적이며 성품이 부드럽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김제동이 안경을 벗으면 초식형 인간임을 금방 알 수 있다.
특히나 강호동의 얼굴과 비교하면 더욱 확연하다.
김제동이 남을 공격하는 액션을 취하더라도 하나 무섭지 않은 것은 그가 초식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 좋은 강호동이라 하더라도 약간의 액션만으로도 그에게서 두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육식형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김제동은 소나 사슴과 같은 성품을 가진 초식형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쉽게 다가오며 거부감이 없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에게든지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은 사람이다.

▶ 말짱 뇌짱으로서의 김제동
말짱, 뇌짱...
무슨 말인지 금방 알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말로 하여 김제동을 따를 자 감히 없다할 정도로 그의 언어구사법은 극적이다.
온통 얼짱, 몸짱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외모가 아닌 것으로 승부를 거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이에 도전하는 사람은 그가 거의 유일하다.
얼굴이나 몸과 같이 선천적이며 외모지상주의에만 얽매어 있는 사회현상에서 그만큼 가치있는 활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

작은 눈, 못난 얼굴, 작은 몸, 구부정한 자세, 숏다리 임에도 불구하고 게스트들은 한결같이 그에게 호감을 나타내며 장래의 신랑감으로 은유를 하는 등 새로운 짱의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얼굴 잘 생기고 멍청한 인간,
긴 다리에 몸매 쫘악 빠지고 모자란 인간,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고도 골이 빈 인간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정말 인간적인 수단인 말로써 승부를 거는 사람이 있기나 한가?
김제동의 인기는 그가 김제동이기 때문이다.
김제동만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캐릭터는 기존의 인기 공식을 완전히 뒤엎었다.

그가 뇌짱인 이유는 설명이 길 필요가 없다.
누구나 그를 보고 머리가 좋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했다.
물론 가정환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직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그런 인재를 인재로서 받아들이는 시스템이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만 달달 외운 인간, 문제풀이에만 매달려 공식만 적용시키려는 인간들만 양산 시키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인재 발굴에 있어서는 제로에 가까운 비효율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뇌짱으로서의 그의 두뇌 활용법은 이 나라 미래를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열린 교육이니 어쩌니 하여 교육 시스템 자체가 붕괴되고 있는 이 때 그의 학습 방법을 교육에 반영하여 교육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올 법하다.
그의 두뇌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그 운영법은 새로운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슈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는 생활, 경험, 인간관계 뿐 아니라 보이는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학습 대상이다.
교과서에만 묶여 있는 공적 교육의 맹점을 학습자의 시야를 확장함으로 해서 지식의 양과 깊이와 그 활용도를 넓히는 모범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교실에서만의 학습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극적으로 극복한 표본이 김제동인 것이다.
이만하면 김제동 연구소 하나 따로 차려서 이 나라 교육을 뒤바꾸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 요리사로서의 김제동
낚시 채널에서 라면 먹는 걸 봤다.
바닷가에서 먹는 라면이 미치게 맛있단다.
때마침 나는 아침 먹은 직후라 배불러 있었기에 다 불어 터진 라면에 끌릴 리가 없었다.
요리란 이렇다.
제 배 부르면 쳐다보기도 싫은 법이다.
그런데 그 곳에 김제동이 있었다면...
아마 나는 내 배 부른 것도 잊고 그 라면이 먹고 싶었을 거다.
그렇다.
어떤 음식도 맛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자 - 김제동이다.

그가 요리를 잘 하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와 같이 먹으면 무조건 맛있을 것 같다.
이보다 더한 요리사가 또 있는가?
어떤 음식도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재주는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그가 요리를 잘 한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또 있다.
음식은 우리가 입에 맞도록 잘 가공하여야 영양섭취도 쉽고 양도 많이 먹을 수 있다.
배고프다고 배추 한포기 생으로 먹고 날고기 한 근을 그냥 씹어 먹지는 않는다.
갖은 양념을 하여 적당히 익히고 조리하여 보기 좋게 상에 올려놓아야 잘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입에 맞는 음식에서는 벼라별 재주를 다 부리면서도 기타 생활에서는 이런 가공 법칙을 전혀 적용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당장 지식의 습득과정만 해도 김제동식 입력방법을 가동하면 그 효율이 몇 배로 불어날 것이다.
아이들 공부하라고 하면 교과서 문장 외우기에 전념하다가 그 재미없음에 포기해 버린다.
몇 시간이고 책상머리에 앉아 있어도 머리 속에 입력된 정보는 ‘0’ 상태다.
그건 문자를 문자 자체로 입력 시키려 하니 날배추 한포기, 날고기 한 근을 생으로 먹는 것과 같다.
문자라는 지식을 만나면 양념을 하고 익히고 우리 두뇌가 잘 섭취할 수 있는 갖은 방법으로 조리하여 섭취된 김제동의 지식은 바로 살아있는 요리다.
그 요리의 조리사가 바로 김제동인 것이다.
같은 재료 같은 맛의 요리를 만들어도 김제동이 요리하면 그리도 맛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의 어록에서 이미 체험하지 않았는가?
김제동에게는 "지식 가공 요리사"라는 신종 자격증을 수여해야 한다.

여러 상상력과 연상법을 이용하여 재가공된 지식을 즐거움이라는 양념을 가미하여 자신의 수평적 데이터베이스에 입력시킨다.
그의 정보 가공력에서부터 입력 시스템, 정보 저장 방법, 재생산 매카니즘에 대해서는 ‘김제동 연구 1편’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는 세상사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입맛을 알기에 그의 요리방법은 성공을 하는 것이다.
정녕 그는 미식가이기도 하다.
떡볶이를 같이 먹어도 까물어치게 맛있게 먹는 비법을 그는 알고 있다.
우리는 거기에 깜빡 죽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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