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지음 / 오래된미래 / 200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대학다닐 때, 독설을 잘 내뱉었던가보다. 내 주변에 이드(id, 본능)가 강해 '슈퍼이드'란 이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나 자신이 얼마나 슈퍼에고에 둘러싸여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쥬스를 마시면서 길을 걷다가 빈 깡통이 되어도 그 빈 깡통을 아무데나 버리지 못하는 나, 식당에서 들고 나온 이쑤시개를 계속 들고 다니는 나. 새벽 건널목에 아무도 건너지 않아도 신호를 지키는 나.

이런 나는 착해서가 아니다. 어떻게 착하지 않다는 걸 아느냐면, 그런 내가 나도 짜증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정상적 자아를 지나치게 억누르는 슈퍼에고맨이라고 할 수 있다. 루쉰의 이야기대로 치자면, 아큐의 말대로 나는 '슈퍼맨'이다. 아큐는 자기에게 부정적인 것은 빼먹고 말하는 '정신적 승리법'의 대가니깐.

우리는 너무 착하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사소한 잘못에도 마음 아파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작 내가 마음 아파하고 미안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실은, ... 사실은 엉뚱한 것들이 아니었나.

정말 내가 미안해야 할 것들은, 이 안에 다 들어 있다. 내가 배부른 것, 내가 방금 마신 독일 맥주.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 그리고 나를 둘러싼 평화로운 공기, 먼지 묻지 않은 잠자리와 가족.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호화스런 것이고, 사치스런 것들이었는지...

난 이 책을 할인매장 갈 때마다 읽고 또 읽는다. 어떤 날은, 읽은 기분이 아닌 날, 그림만 보고... (*그림 아래는 세상이 100명의 나라라면의 글귀들이 적혀 있다.) 오늘같이 피곤한 날은 느릿느릿 여기 저기 랜덤으로 읽는다.

슈퍼맨인 나는, 너무도 도덕적인 나는 정말 쓰잘데기 없는 것들로만 고민해왔다는 걸, 이 책은 금세 깨닫게 해 준다. 김혜자의 웃음도, 가엾은 아이들과, 여인들과, 사내들의 씁쓸한 웃음도... 나를 깨끗하게 한다. 그 더러움이 나를 깨끗하게 하고, 그 고단한 삶이 나를 싱싱하게 한다.

싱싱하게 살 일이다. 고단한 척 하지 말고. 그 이들이 본다면,

너, 그렇게 호화스럽게 살면서도 선생 노릇 올바로 못 하겠니? 하고 꾸짖을 것만 같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