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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김성 옮김 / 책만드는집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로의 글을 읽고 있으면, 수천 년 전에 인생의 덧없음과 자연에 동화할 것을 노래한 소동파의 적벽부도 떠오르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도 떠오른다.
케이티엑스가 시속 삼백킬로로 달리고, 하늘의 비행기는 시속 천킬로로 나는데, 우리는 시속 사, 오 킬로의 속도로 걸어다니면서도 쉴 틈을 못 낸다. 이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벌써 백오십 년 전에 소로는 느리게 살 것을 권하고 있다.
우리가 매달리는 부와 명예와 출세라는 것은 행복과 멀리 있는 것인데, 우리는 적게 먹고 천천히 사는 '웰빙'의 길을 버리고, 경쟁과 스트레스의 '배드빙' 내지 '워스트빙'의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진리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통하는 것인지, 소로의 길을 따라 풀냄새를 듣고(聞香), 선득하게 발목을 스치는 풀잎 이슬을 걷어 차며 폐부 가득 신선한 아침 공기를 들이키며, 하늘 가득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아침을 갖는 것만으로도, 삶은 풍부해 지는 묘미를 가진 것이어늘, 작은 머리의 욕심을 억제치 못하여 이른 아침에 일어나기를 그토록 힘들어하고, 밤 늦도록 헛된 일에 머리를 썩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랜만에 소로의 책을 읽으며 풀밭을 거닐 시간을 얻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유럽여행까지 갈 수 있는 행운을 얻었고, 거기에 소로의 글을 읽으며 선진국 사람들의 훈향이 담긴 공원들을 달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여행이 끝날 즈음에는 발이 시큰거리기도 했지만, 조용히 걷는 것 만으로도 느리게 사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평범함 속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나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성공한 삶을 사는 길이리라.
또 한가지 기쁨. 이 책의 단 한 명의 리뷰를 작성한 분이 여우님이라니... 오후 네 시에 나를 기다린다던 밀밭이 떠오르고, 약속한 적 없지만 여기 와서 기다리신 여우님이 정말 반갑다. 미리 약속한 만남도 아닌데 문득 만나게 되는 인연이 있다. 그럴 때면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이 떠오른다.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 맑은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면 장님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나!
그리고 그의 '한 사람의 인생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어떠한 전망을 제시하는지는 누구도 알아맞힐 수 없다.'는 글을 읽었을 때, 나의 일이 단순한 업무가 아닌 '사업'임을 깨닫게 되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는 인기 있는 인생이란 수많은 인생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왜 다른 삶의 방식을 희생하면서 하나의 삶만을 과대평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나는 예전에 석회석 세 덩어리를 책상 위에 놓아둔 적이 있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가구의 먼지는 전혀 쓸어내지 못한 주제에 이 돌멩이에 쌓인 먼지는 매일 쓸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내 두려워져 석회석 덩어리들을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매일매일 무엇을 버리고 사는가. 쓸데 없는 것들을 모으는 데 집착하고 있지 않을까.
가장 기품있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만족을 아는 것이다.
그들은 시장 가치를 갖기엔 너무 순수한 것이다. 이것은 호수를 두고 한 말이지만,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십년 전에 서태지가 교실이데아에서 외친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니 옆에 앉아 있는 그애보다 더.'의 상대로 우리 애들을 보아선 안된다 안된다 하면서 자꾸 눈이 삐뚤어져가는 나를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