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황홀 -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성석제를 보면 소양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태양이 열기를 가득 품고만 있는 봄이라면, 소양은 열기가 활활 피어오르는 여름이다.
태양이 깊은 호흡으로 인간을 살아있게 한다면, 소양은 왕성한 먹성으로 인간을 존재하게 한다.
태양에 해당하는 장부가 폐라면, 소양에 해당하는 장부는 비위다.
태양에 해당하는 시기가 어린이라면, 소양에 해당하는 시기는 청소년 시기다.

그래서 그의 말은 노홍철 뺨치는 다변이고 어질어질하도록 황과 홀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그의 위장은 늘 온갖 세상의 비위 상하는 음식들로 가득 들어차야 흥이 나서 슬슬 이야기가 풀려 나온다.

어쩌면, 그에게 ‘맛’이란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술꾼이 주류불문, 원근불문, 청탁불문, 남녀불문, 안주불문을 외치며 들이키는 것을 풍류로 여기듯이, 그도 종류와 원근과 향료와 지역과 재료를 불문하고 맛있게 많이 먹는 미식가요 대식가가 아닌가 싶어서다.

인간에게 먹거리란 존재의 이유가 된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는 시시한 대답을, 멋도 모를 시절엔 당연히 잘 살기 위해 먹는다고 먹는 일을 부수적으로 제쳐두기도 하지만, 삶이 이어질수록 인생의 온갖 갈등과 시기, 질투, 부정부패와 중상모략은 ‘밥그릇’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본다면, 남들보다 더 많이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마음이 미치곤 한다.

일본 텔레비전의 영향으로 요즘 맛집 기행 같은 프로그램이 화면에 넘쳐난다. 그 기행들은 대부분 짬짜미에 의한 조작임이 ‘트루맛쇼’라는 영화에서 밝혀졌으나, 그 영화를 본 사람은 많지 않고, 지상파에서 방영할 수는 더더욱 없으니 그 부정은 다시 밥그릇 지키기로 옹호된 것 같다. 

이 책을 읽다보면 배고픈 사람들은 때때로 라면을 먹고 싶어지고, 술을 한 잔 들이켜고 싶어지고, 닭다리를 질기든 쫄깃하든 하나 주워 들고 싶어진다. 이 책을 출출한 야간에 읽는 일은 다이어트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인 바, 이 책은 반드시 식후 30분 정도에 복용하는 것이 ‘먹기 위해 사는 삶’에 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아, 어제 저녁에 두툼한 벌집삼겹살을 구워서 소주를 한 잔했던 고소한 기억이 떠오른다.
지방질의 고소함과 소주의 쌉싸롬한 조합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트루맛’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는, 오늘 학교에서 푸석한 급식을 먹고 자습 감독(자율학습에 감독이라는 역설이라니...)에 나서야 한다. 자습 감독은 거의 교정 기관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을 주는 슬픔이 덧붙어, 고소한 삼겹살과 쌉싸롬한 소주를 더 구미당기게 하는데, 비라도 우울히 내려 버리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가을 비 우산 속에 출출한 배를 안고 다시 공씨디(0CD)의 ‘소주와 삼겹살’을 들으며 삼겹살집을 찾게 된다.

비가 내리니까 소주에 삼겹살이 생각나

비가 내리니까 니가 뒤집던 고기 생각나~

왜 난 이 뻔한 가사를 ‘비감이 짙던 곡이 생각나~’로 알아 들었을까? 

아직 삽겹살의 고소함에 덜 빠져서 그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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