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문학 - 세상과 소통하는 희망의 인문학 수업
고영직 외 지음 / 이매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이 나왔고, 한국에서도 몇몇 대학, 자활센터를 중심으로 시민 인문학 강좌가 개설되었다.
그 대상은 주로 프리캐리아트(precariats, 불안정계층)가 되겠는데, 대학을 못간 저소득 계층이나 노숙인, 교도소 재소자 등이었다.
수업 내용은 문학과 역사와 철학 같은 것들... 

당장 먹고 사는 일이 문제라고들 생각한다.
그래서 오죽하면 저 인상의 이명박이를 대통령으로 뽑았으며, 뉴타운에 속아 한나라당에 표를 던졌겠는가.
그렇지만 그게 속임수였음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상위 1%를 위한 프렌들리 정부임을 알고 시민들은 반이명박 전선을 형성하였다.
반이명박 전선에 앞장서지 못한 민주당은 당연히 시민대표에게 졌고, 시민대표는 한나라당조차 꺾었다.
위대한 첫 승전보다. 

먹고 살기 힘들다 보니, 그래서 힘든 삶을 영위하다 보니, 자존감이 어디 있는지조차 신경쓰지 못했던 사람들.
그들이 <교수님>이라고 부르면서 강의를 듣고 시를 쓰면서 울고 웃고 자신감도 비추고 정체성도 찾아간다.
듣는 이야 부담스럽든 말든, 그들도 <교수님>에게서 배우는 것 자체가 즐거워 늘 교수님~을 부르는 사람들...
수강생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수업들이다.
그들의 수업에서는 수업 내용보다 향후 인생의 문제와 자활에 더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정의가 아닐지 몰라도,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 

옳은 말이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희망은 존재론적 요구이며,
존재론적 요구로서의 희망이 역사적 실체가 되기 위해서는 실천의 닻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존재를 위해서는 희망을 보여줘야 하고,
존재에게 그 희망을 느끼게 만져지게 하려면, 박원순처럼 밥을 우선 먹여야 한다. 

미국 1900년대 가난한 이주 노동자들의 투쟁의 구호가 '빵과 장미'였음은 의미심장하다.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소설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빵을 일단 먹고, 사랑해야 한다. 즐겁게... 그게 희망이고 행복인 것이다. 

어느 수강생의 남긴 말... 

나는 요즈음 들어 학교를 가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 가는 것 같다.
잊혀지고 벼려지고 왜곡된 모든 것들이
새롭게 환희로 덮쳐온다.
한번도 보지도 상상조차도 하지 못한 엄청난 파고로 밀려 온다. 

아, 이게 인문학의 힘이구나...
학교에서도 학부모 교실을 열어봄직하다.  

책에서 읽게 된 루디야드 키플링의 <만일>과 강은교의 <진눈깨비>, 배한봉의 <육탁>도 멋진 글들이다.  

 

 

   
 

만일 - 루이야드 키플링

만일 네가 모든 걸 잃었고 모두가 너를 비난할 때
너 자신이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체하지 않고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네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네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너의 전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더라도
몸을 굽히고서 그걸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한번쯤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가슴과 어깨와 머리가 널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해도
강한 의지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만일 군중과 이야기하면서도 너 자신의 덕을 지킬 수 있고
왕과 함께 걸으면서도 상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적이든 친구든 너를 해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되
그들로 하여금
너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진눈깨비 - 강은교

진눈깨비가 내리네
속시원히 비도 못 되고
속시원히 눈도 못 된 것
부서지며 맴돌며
휘휘 돌아 허공에
자취도 없이 내리네
내 이제껏 뛰어다닌 길들이
서성대는 마음이란 마음들이
올라가도 올라가도
천국은 없어
몸살치는 혼령들이

안개 속에서 안개가 흩날리네
어둠 앞에서 어둠이 흩날리네
그 어둠 허공에서
떠도는 허공에서
떠도는 피 한 점 떠도는 살 한 점
주워 던지는 여기
한 떠남이 또 한 떠남을
흐느끼는 여기

진눈깨비가 내리네
속시원히 비도 못 되고
속시원히 눈도 못 된 것
그대여
어두운 세상 천지
하루는 진눈깨비로 부서져 내리다가
잠시 잠시 한숨 내뿜는 풀꽃인 그대여.


   
 

육탁(肉鐸) /  배한봉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 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도 저렇게  늘 열려서 불빛을 흘릴 것이다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잠깬
  그의 작고 둥근 창문도 소금보다  눈부신 그  불빛 그리워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방문을 열고
  나보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 봉지부터 마중할 새끼들 같은, 새끼들 눈빛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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