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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림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본부장님의 입담을 듣고 있다보면... 참 말도 빨리도 하는데, 또박또박 알아듣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십 분 안에 어떻게 통제를 해? 우리도 다 위에다가 보고를 해 가지고 허락을 맡아야 된단 말이야! 일단 청장님한테 가 가지고 '청장님' 그러면 청장님이 '어, 자네 무슨 일인가' 그럼 내가 '지금 한국대교를 급히 통제해야 되겠습니다' 그럼 청장님이 '어, 그런가. 그럼 장관님한테 보고를 하도록 해' 그럼 내가 장관님한테 가 가지고..."
아파트 물탱크에 독극물을 살포하겠다는 범인 때문에 반장을 찾아가 단수 조치에 대한 주민 전달을 부탁하면 "쉿! 집값 떨어지니까 절대 그런 얘기 하지 마이소, 잉? 내일 반상회 가서 얘기할 테니까!" 하는 싸늘한 반응만 돌아오고, 도로 좀 통제했다고 "우와~ 민중의 지팡이가 민중한테 화를 내네?"
사회의 비틀린 면들을 이렇게 가볍게 이끌어내는 것이 '비상대책위원회'의 힘이다.
성석제의 '홀림'에는 모두 8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의 글쓰기에 대한 분석은 김만수의 해설에 잘 담겨있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류의 무의미한 대사의 연속에서 느껴지는 희극과 비극의 교차,
웹브라우저처럼 '소가 풀이나 새싹을 조금씩 뜯어먹는다'는 어원같이 탈개성화된 이야기 구조,
잉여와 낭비를 인생의 중요한 에네르기로 파악한 바타유의 생각,
옷(衣)에 주름(谷)이 지면, 품이 넓어 넉넉한(裕) 글이 된다는 등...
노름하는 인간, 술 마시는 인간, 소설 쓰는 인간...
이런 소설들의 특징은 인간의 '잉여적 여기'로서 소설과 노름과 술과 춤은 한통속임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 텐데,
그 말발이 가히 김원효 본부장의 말투를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김원효더러 성석제 글을 낭독하게 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무지무지 빨리 읽을 수 있다. ^^
홀림, 붐빔과 텅 빔... 이런 소설에서는,
인간의 삶은 모두 거기서 거기이며,
겹치게 마련인데,
누구의 삶이든 돌아보고 씹어보면... 열심히 분열하는 세포의 흔적이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바,
그의 말 속도에 홀려 마치 의식의 흐름 기법에 이끌리듯 읽노라면 한세월 한숨만 쉴 일도 아닌 것이란 위안을 얻는다.
꼭 해야할 일을 하고, 남은 시간은 휴식하고 느긋하게 쉴 것...
쉰다고 경찰 출동 안 하니깐, 불안해하지 말고 즐길 것... 이런 말을 툭, 던지는 것 같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