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 김대중 잠언집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 / 다산책방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난 그가 임기를 다 마치기를 기대했다.
독재 정권을 물리치고 처음으로 민선 대통령이 된 사람. 

그는 독재 정권하에서 치열하게 투쟁하였으며,
탄압받았지만,
그 독재 정부의 시녀인 언론들에게서 늘 빨갱이로 견제를 받곤 하였다.
그 시녀들은 대통령 당선자 앞에 '시대의 인동초'란 아부를 바치곤 했지만 말이다. 

그가 아쉽게도 2009년 후임 대통령의 의문사 후에 스러졌다.
물론 그의 재임기간 중에도 구조조정의 여파로 노동 문제는 악화되었고,
비정규직 문제 들은 더욱 심화되었으며,
대중경제론 역시 맥빠지게 대중의 삶은 팍팍해지기만 했던 아쉬움도 남지만 말이다. 

대북 기조의 일관성이나 희망을 주는 정치에 대한 믿음이 있기는 했다.
그를 이은 대통령 역시 권위주의를 타파하려는 노력이나 복지에 대한 배려 등을 믿을 수 있도록 살기도 했다. 

전진할 때 주저하지 말며,
인내해야할 때 초조해하지 말며,
후회해야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20) 

나아가려는 사람이게 가장 필요한 주제다.
주저하고, 초조해하고 낙심하는 자세는 비관을 낳는다. 

우리는 중요한 일과 중요한 것같이 보이는 일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후일에 되돌아보면 하찮을 일에 중요하다고 매달려
얼마나 많은 인생을 낭비했던가.(24)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매달린 나.
후일에 얼마나 후회할 것인지...
그리고 낙심에 빠질 것인지... 

이기심과 탐욕은 가장 큰 죄악이다.
이기심은 자기를 우상화하고
탐욕은 탐욕의 대상을 우상화한다. 

자기를 우상화하지 말며,
대상도 우상화하지 말 일이다.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일에 흥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흥미가 한 분야로 집중되면 그것을 관심이라고 한다.
관심을 체계화시킨 것이 연구다.
인류의 진보에 기여한 위대한 사상과 업적도 실은 이처럼 흥미를 갖는 아주 단순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86) 

인격의 바탕위에 서지 않은 학문은
천박한 지적 기술에 불과하다. (115) 

흥미, 관심, 연구...
나는 흥미는 많으나 연구엔 관심이 적다.
뭐, 그것도 그것대로 좋은 삶이라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은 연구는 아니니 말이다.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남도 똑같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믿으며,
양심적인 사람은 남도 다 그런 것으로 알고 처신한다.
우리가 처세에서 실패하는 큰 원인의 하나가 여기 있다.(158) 

우리가 괴물과 싸울 때 가장 두려워할 일이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남도 다 나와 같을 것이라 착각하고 살면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 

가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가난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으로 성장하더라도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167) 

허균의 '호민'이나 마찬가지 이야기다.
가난한 사람은 저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억울한 사람은 저항한다. 

물질적으로 성장할수록, 억울한 사람이 늘면, 건강한 사회는 썩는다.
변증법적으로 그런 사회는 부정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마음 한켠이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직업을 가지고 살면서 왠지 서럽고, 
대접받지 못하고 늘 쫓기듯 사는 내가,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못하지만 허둥지둥 사는 내가,
서럽고 안쓰러웠던 모양인데,
좋은 말들은 그런 안쓰러움 위로 살포시 눈이 되어 내려 덮어준다. 

고고함이란... 이렇게 살짝 눈발이 내린 북한산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그렇듯, 이 책의 글들은 고고하면서도 지적이고, 교훈적이면서도 명상적이다.

고고
      김종길

북한산(北漢山)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 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白雲臺)나 인수봉(仁壽峰)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化粧)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水墨)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신록(新綠)이나 단풍(丹楓),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래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밋(薔薇)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變質)하는,
그 고고(孤高)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白雲臺)와 인수봉(仁壽峰)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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