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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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적힌 이 글자를 골똘히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면, 숲 사이로




이 슬그머니 걸어나온다.
술이라도 한 잔 걸친 듯,
조금은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다. 

그 걸음걸이를 바라보면서,
김훈은 기록을 시작한다.
그런데 늘상 그렇듯, 김훈의 걸음걸이에 대한 묘사는,
스틸컷으로 정지영상처럼 기록될 뿐이다.
보통 소설이라는 장치가 담는 서사는 수많은 스틸컷들이 모인 동영상처럼 착각하도록 엮는 도구이거늘,
김훈은 그 동영상의 길이를 길게 만들지 않는다. 

수많은 스틸컷들이 착시를 일으켜 마치 동영상의 착시를 만드는 작업 대신,
그는 수많은 스틸컷들을 모으고 모아서 무덤 하나를 이룬다.
그 무덤이 하나의 인생이라면,
그 무덤들의 모임은 숲이 되려나?
저 글자처럼 말이다. 

소설속의 사람들은 무던한 결핍을 끌어 안고 있다.
그 결핍은 대부분 '관계'에 대한 결핍이다.
혼자 있을 땐 온전한 한 장의 스틸컷인 것 같지만,
몇 장의 관계가 어긋날 때, 아버지는 감옥엘 가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꿈 속에서 좆내논으로 찾아오고, 떠나간다. 

수목원의 세밀화가인 주인공,
안실장과 자폐인 그의 아들,
김중위와 얽혀드는 유골 발굴 기록화 작업,
그리고 목매달고 죽은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옥영'의 그림자.
그들은 '사람'과 '사람'이 닳고 닳아 사랑을 만든다는 논리를 따르지 못하고,
그저 낯설게 서있을 따름이다.

 

김훈의 눈길은 세상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언어의 켜들 사이이기도 한데, 

   
  돌이켜본다는 말은 돌이켜 보인다라고 써야 옳겠다.
보여야 보이는 것이고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도 아닐 터이다.
돈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돈이 다 떨어지고 나면 겨우 보이는 수가 있다.
돈이 떨어져야 보이게 되는 돈의 실체는 사실상 돈이 아닌 것이어서,
돈은 명료하면서도 난해하다.
돈은 아마도 기호이면서 실체인 것 같은데,
돈이 떨어져야만 그 명료성과 난해성을 동시에 알 수가 있다.
구매력이 주는 위안은 생리적인 것이어서
자각증세가 없는데,
그 증세가 빠져나갈 때는 자각증세가 있다.
그래서 그 증세를 느낄 때가 자각인지, 느끼지 못할 때가 자각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돈이 떨어져봐야 이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47) 
 
   

언어란 것이 원래 '사물'과 '개념'과 '언어'를 잇닿게 하는 삼각형을 틀로 오가는 것이어서
그 켜켜를 관찰하는 일은 철학에 가깝게 마련이다. 

그의 소설이 이야기로 마구 달리지 못하고, 머뭇머뭇 철학적 심상을 머물게 되는 것은,
그의 관찰이 이야기 사이에서 자주 멈추기 때문일 것이다. 

   
  검은색을 이끌고 흰색으로 가는 어느 여정에서 내가 작약 꽃잎 색깔의 언저리에 닿을 수는 있을 테지만,
기름진 꽃잎이 열리면서 바로 떨어져 버리는 그 동시성,
말하자면 절정 안에 이미 추락을 간직하고 있는 그 마주당기는 무게의 균형과 그 운동태의 긴장을 데생으로 표현하는 일이 가능할 것인지를 머뭇거리는 동안에...(143) 
 
   

그래서 이렇듯 묘사하는 구절이 나오면 그의 절창이 시작된다.
그의 '자전거 여행'에서 감동적이었던 부분들이 이런 묘사였음을 나는 기억한다.
묘사에서 뛰어난 그가 왜 서사로 눈을 돌리는가.
그것이 '밥벌이의 구차함'이라면 또 덧붙일 말은 없다.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본다봐 보인다 사이가 그렇게 머니까
본다와 그린다 사이는 또 얼마나 아득할 것인가를,
그 아이의 뒤통수 가마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이가 자라고 여자가 늙는 것은 닥쳐오는 시간 앞에서 쩔쩔매는 난감한 사태일 터인데,
그림을 그려서 그 난감한 것들을 종이 위에 붙잡아 놓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 어린아이의 가마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는 말은 만진다는 말이나 품는다는 말과는 대척점에 있는 반대말이었지만,
그 두 개의 국면이 반대되는 대척점에서 서로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말일 수도 있다고...(187)

 
   

김훈이 주인공 여자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면서,
사람들에게서 뚝, 떨어진 마치 수목원같은 곳에서,
동물적이기보다는 식물적인 삶을 살아온 자신을,
어쩌면, 굵직굵직한 사건 위주의 삶이기 보다도,
세밀화처럼 자잔한 것들의 묘사에 치중했던 삶이었음을
그리려고 하지만, 그릴 수 없음을,
돌아보고 싶었으나, 그 거리가 주는 막막함에 눈물 핑 도는 고백이 아니었는지... 

소대장이 겨울에 북쪽에서 건너오는 다듬잇방망이 소리를 듣고 눈물이 났다는 대목이 있다. 

   
  인기척이기 때문일 거예요.
눈보라나 대포 소리와는 다르니까요. 그 안에 사람을 부르는 신호가 들어 있잖아요.(235) 
 
   

인기척을 듣고,
관계가 그리워,
관계가 끊어진 곳에서 흘리는 뜨끈한 눈물,
사람을 부르는 신호...

역시 그의 문장은 묘사적이고, 식물적이다.
그는 신우를 통해서 '나물'에 집착하고,
죽어가는 병사를 통해서 '상추'에 집착하는 동물성에 주목한다.
개미들과 바삭 마른 뼛조각들을 소재로 등장시키는 작가는
결국 가장 섬유질로 묘사된 숲 해설사 이나모를 만나게 한다.
이름 자체가 나모인 그는 숲을,
곧 인생을 해설하는 동시에 삶이 곧 죽음이라는 사설로 인도한다. 

   
  나무줄기의 중심부는 죽어 있는데,
그 죽은 뼈대로 나무를 버티어주고 나이테의 바깥층에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난다.
그래서 나무는 젊어지는 동시에 늙어지고,
죽는 동시에 살아 난다.
나무의 삶과 나무의 죽음은 구분되지 않는다.
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
내용이 다르고 진행 방향이 다르고 작용이 다르다.(215)
 
   

이런 소설이라니... ㅎㅎ   

베스트셀러 작가를 나는 가능한한 빨리 찾아 읽으려 하는 편이다.
학생들에게 소개할 목적도 있고, 학생들의 독서평을 평하기도 해야 해서인데,
유난히 나는 김훈과 한비야의 글을 마뜩찮아 하는 편이다.
그들의 글은 나온 지 몇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읽게 된다.
어딘가에서도 썼듯, 한비야의 글맛은 수다스러워 읽는 데 장애를 주고,
김훈의 글맛은 섬유질로 가득한 것 같아 마음결에 자꾸 껄끄럽게 걸린다. 

   
  수목원 구내식당에는 늘 나물과 버섯 반찬이 나왔다.
영농 출입허가를 가진 농민들이 캐오는 나물이었다.
봄부터 늦여름까지, 절기에 따라서 다른 나물이 나왔고
가을에는 말린 나물을 데치고 무쳐서 내놓았다.
수목원에 온 뒤로 온갖 나물을 다 먹었다.
나물은 쓴맛을 기초로해서 그 위에 풀 나무들의 제가끔의 향기와 섬유질의 질감을 입안으로 펼쳐주었다.
나물에는 식물 종의 운명이 각인되어 있었고,
그 운명이 맛의 관능으로 살아 있었다.
들여다보고 그림으로 그려서 대상을 파악하는 것보다
씹고 삼켜서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본질적이라는 것을 수목원 구내식당의 나물을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 본질의 맛과 질감을 나는 그리고 싶었다.
나물을 말리면, 그 맛과 향기의 풋기가 빠진다.
말린 나물은 맛과 향기의 뼈대만을 추려서 가지런해지고 맛의 뼈를 오래 갈무리해서 깊어진다.
데치거나 김을 올리면 말린 나물은 감추었던 맛과 냄새와 질감의 뼈대를 드러내는데
그 맛은 오래 산노인과 친화력이 있을 듯 싶었다.(273) 
 
   

내가 찾은 절창은 그의 나물론이다. 

그 뒤에 화석이 되어 발견된 뼛조각과 사병의 편지글이 대조적인데,
화석화된 전투의 바람결에서도 '살고 싶어요' 이상의 생명에 대한 천착이 강하게 느껴진다. 

   
  식순에 따라서 사회를 맡은 장교가 죽은 박창수의 편지를 낭독했다.
사병이 노파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낭독을 복창했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어요.' 라는 대목에서 노파는 울었다.
- 그래, 맞다 맞아. 오래비가 상치럴 좋아했지러.
  아 대가리 만큼 싸가 볼때기가 미지도록 묵었제. 밥떡꺼릴 질질 흘리미... 아이고 맞지럴, 맞제
  죽을 때도 그게 묵고 싶었던 기라. 상치, 상치야, 상치 아이가...
박창수 병장의 유골을 국립묘지에 묻자고 하자,
- 뭐라꼬, 거 와가노? 거게 가문 삭신이 편하나? 죽으마 고마 노이야제. 집 뒤께 상치 밭 여불때가 좋은 자리 안 있나.
  하기사 젤 좋으 자리는 죽은 자리에 고마 놔두는 긴데... 
 
   

 

서어나무는 자작나무의 일종으로 단풍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김훈의 애정이 가득 담긴 나무인 듯 하여,
그렇게 탐스럽게 늙어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몇 장 찾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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