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여름이 가을로 넘어갔다.
마치 달력 한 장 넘어가면 한 달이 넘어가듯. 

이제 수능도 50일 남았구나.
50일이면 공부를 하자면 짧은 기간이지만,
또 준비 없이 보내기엔 긴 기간이다.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면 좋겠다. 

오늘은 '추운 겨울의 친구'를 생각해 보고 싶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양갔던 시절,
2차례에 12년간이나 유배생활을 했다. 

그 외롭고 쓸쓸하던 시절에,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의 변함없는 의리를
날씨가 추워진 뒤 제일 늦게 낙엽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답례로 그려준 것으로 유명한 <세한도>. 

 

요즘 제주도의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놓는다고 마구 파헤치는 바람에
훼손이 많이 되었다고 해서,
이런 풍자의 그림도 올라 있더구나.
 
 

한적하고 쓸쓸하던 제주도를 포크레인이 파헤치고,
전쟁의 공포를 심어주는 기지를 만들겠다 하니,
인간의 가공할 힘이란... 징그럽다.  

우선 곽재구의 '세한도'를 한번 읽어 보렴.             

조합신문에 내 시가 실린 날
작업반 친구들과 소주를 마셨다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며 친구들은
매듭 굵은 손으로 석쇠 위의
고깃점들을 그슬러주었지만
수돗물도 숨차 못 오르는 고지대의 전세방을
칠년씩이나 명아줄풀 몇 포기와 함께 흔들려온
풀내 나는 아내의 이야기를 나는 또 쓰고 싶다
방안까지 고드름이 쩌렁대는 경신년 혹한
가게의 덧눈에도 북풍에도 송이눈이 쌓이는데
고향에서 부쳐온 칡뿌리를 옹기다로에 끓이며
아내는 또 이겨울의 남은 슬픔을
뜨개질하고 있을 것이다
은색으로 죽어 있는 서울의 모든 슬픔들을 위하여
예식조차 못 올린 반도의 많을 그리움을 위하여
밤늦게 등을 켜고
한 마리의 들사슴이나
고사리의 새순이라도 새길 것이다 (곽재구, 세한도)

우선 '세한도'라는 제목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읽기 힘든 시다.
춥고 배고픈 고난의 시절,
함께 위안이 되어줄 사람이 곁에 있다면 훨씬 용기를 낼 수 있겠지. 

이 시의 화자에게 그것은 '아내'란다.
화자의 시가 '조합신문'에 실리고 친구들과 소주를 한 잔 한다.
화자는 노동자인 모양이다.
화자가 쓴 시의 소재는 아마도,
함께 고생해온 아내의 이야기인 모양이야. 

경신년은 1980년이겠다. 따져보면...
경-으로 시작하는 해는 항상 뒷자리가 0이 되는 해야.
1980년이면 광주에서 슬픈 학살의 소식이 들렸던 두려웠던 해다.
그 해엔 여름 내내 한 번도 더웠던 적이 없었구나.
하늘도 무심하지 않은 듯... 

그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화자는 혹한으로 기억하고 있다.
눈이 내리고 화로에 칡차를 끓이는데,
아내는 뜨개질을 하고 있어. 

옷을 뜨고 있겠지만,
왠지 그 옷을 뜨는 광경이 가족을 위한 다사로운 풍경으로 비추이기보다는
슬픔을 뜨개질한다는 구절에서 보이듯,
'은색으로 죽어 있는 서울의 모든 슬픔들'을 위하여 뜨개질을 하고 있다고 그래.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시의 특징이지.
그러나,
예식조차 못 올린 이 땅의 가난하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아내는 밤늦게 뜨개질을 한대.
그 뜨개질에서 들사슴이나 고사리 새순처럼 소박하지만,
생명력이 넘치는 창작물이 탄생하는 거지. 

아마 시인은 아내와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어느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었는지도 모르지.
시인 자신이 그런 처지였는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그 가난하고 힘겹던 시절,
서로 위로하고 서로 기대던 위안으로 남은 시절.
그 시절을 떠올리면,
옹기 다로에서 끓고 있을 '칡차' 내음과,
밤늦게 등불 켜고 뜨개질하고 있던 아내의 은은한 정경이 떠올라 가슴이 훈훈해 지는 것 같다.

세한도는 이렇게 힘들 때의 친구를 생각나게 하는 모티프로 작용한단다.
다음은 최두석의 세한도를 읽어 보자.       

  고드름 기둥
  층층이 얼어 붙은
  층암절벽에
  소나무 한 그루
  눈을 이고 서서
  희망과 절망의 수십년 세월
  안간힘으로 뻗어간 
  뿌리의 용틀임과
  뿌리가 엉키는 자리에 터잡은 
  어린 진달래의
  녹두만한 꽃눈을
  바람 타고 나는
  기러기 소리 들으며 
  시리게 바라보네.  (최두석, 세한도)

이 시에서 역시 고난의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자. 

절벽에 겨울이 와서 고드름 기둥이 층층이 얼어 붙었어.
그런데, 거기 소나무 한 그루 눈을 가득 이고 섰대.
수십 년을 좌절하며 살았을 소나무 한 그루.
힘겨웠던지 뿌리가 뒤틀리고 줄기가 비틀려 뻗어있는데,
그 뿌리 곁에
녹두콩처럼 작고 작은 어린 진달래 꽃눈이
보이지도 않을 것처럼 작은 봄의 꽃눈이
시리게 부는 바람소리 타고 날아가는 기러기 울음 들으며
나는 봄이 오면 진달래 필 곳을 바라본다...는 이런 시야. 

정말 한 편의 그림을 보는 듯한 시지?
곽재구의 시를 한 편 더 읽어 보자.           

황사바람 이는 땅끝에 와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말보다 먼저
한 송이 꽃을 바치고 싶었다
반편인 내가 반편인 너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히죽 웃으면서
묵묵히 쏟아지는 모래바람을 가슴에 안으며
너는 결국 아무런 말도 없고
다시는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은 바위 앞에서
남은 북쪽 땅끝을 보여주겠다고 외치고 싶었다
해안선을 따라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아우성 소리 끊임없이 일어서고
엉겨 붙은 돌따개비 끝없는 주검 앞에서
사랑보다도 실존보다도 던져 오는
뜨거운 껴안음 하나를 묵도하고 싶었다
더 지껄여 무엇하리 부끄러운 반편의 봄
구두 벗고 물살에 서 있으니
두 눈에 푸르른 강물 고여 온다
언제 다시 이 바다에서 우리 참됨을 얘기하리
언제 다시 이 땅끝에서 우리 껴안아 함께 노래하리
뒹굴다가 뒹굴다가 다투어 피어나는 불빛 진달래 되리( 곽재구, 땅끝에 와서) 

이 시의 땅끝은 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토말(土末)'인 땅끝이기도 하고,
또는 삶의 극한인 땅끝이 될 수도 있고 그렇다.
중의적으로 쓰인 표현이지. 

땅끝마을, 또는 삶이 너무 힘든 가장자리에 섰을 때,
화자는 꽃을 바치고 싶더래.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엔 왠지 부끄러웠는지도 몰라. 

'반편'은 '온전한' 인간의 반쪽이니 '병신'이란 말이지.
온전하지 못한 사람, 어딘가 많이 부족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
왠지 반쪽에서 분단의 이미지가 묻어 있구나.
병신같은 내가 병신같은 너에게
그러니깐 삶이 힘겨운 사람들끼리 서로 위안을 주고 받는 약한 존재끼리
마주보며 힘을 주는 관계임을 확인하는 거야. 

눈물을 글썽이듯 힘겨운 삶이지만
서로 상처를 주는 존재지만
또 히죽 웃을만큼 재미도 있는 거니까는... 

세상은 모래바람 쏟아지듯 냉랭하고 쓸쓸한 곳일지라도,
그리고 너는 말도 없고
입을 다물어버린 바위같은 침묵 속에서
북쪽 땅끝도 보여주고 싶다고...

남과 북이 지금은 반쪽으로 나뉘어 침묵하는 현실,
서로 차가운 눈길 나누는 지금,
바닷가 따라
아우성소리 들리듯 무서운 현실. 

바윗돌에 엉겨붙은 돌따개비들의 주검처럼
분단은 죽음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사랑이라든가,
한 사람의 존재가 가지는 무게감이라든가 하는 관념보다도,
뜨겁게 껴안는 경험을 조용히 바라보고 싶다는 화자. 

화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껴안고 노래하고 참된 이야기를 나누고,
뒹굴다가 진달래 피어나는 환한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구나.

곽재구의 '세한도'와 최두석의 '세한도'는 모두 힘겨운 세월,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시였구나.
곽재구의 '땅끝에 와서'는 국토의 최남단에 가서
분단의 아픔을 느끼며 쓴 시일테고 말이야. 

요즘 제주도의 가장 아름다운 해안 구럼비 해안을
깨부수는 작업이 한창이란다.
아마도 미군이 주둔할 해군 기지가 필요한 모양이지.
중국이 앞으로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설 그때를 미리 대비하는 것 같기도 해.
미국 공군기지는 제주도 밑의 일본 섬 오키나와에 이미 있거든.
해군기지가 필요하겠지.
그래서 제주도 강정마을을 멋대로 해군기지로 만들겠다는 거야.
참 아름다운 곳인데 말이지.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면서 한국 사회는 참 팍팍한 곳으로 변했다.
조금만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되어버렸어.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선 왼손잡이를 바른손잡이로 고치려고 애쓰곤 한단다. 

김광규의 '왼손잡이'란 시를 한번 보렴.

남들은 모두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글씨 쓰고
방아쇠를 당기고
악수하는데 
왜 너만 왼손잡이냐고
윽박지르지 마라 당신도
왼손에 시계를 차고
왼손에 전화 수화기를 들고
왼손에 턱을 고인 채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느냐
험한 길을 달려가는 버스 속에서
한 손으로 짐을 들고
또 한 손으로 손잡이를 붙들어야 하듯
당신에게도 왼손이 필요하고
나에게도 오른손이 필요하다 
 
거울을 들여다보아라
당신은 지금 왼손으로
면도를 하고 있고
나는 지금 오른손으로
빗질을 하고 있다  (김광규, 왼손잡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을 하고
자신이 옳다고 우기는 획일적 사고와 고정관념을 비판하는 시야.

오른손잡이에게도 왼손이 필요하고,
왼손과 오른손은 인간에게 똑같이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임을 들려주면서
시각을 바꾸어 세상의 다른 것들에게 이해와 포용의 자세를 가져야 함을 들려주는 시지.
이 시에서 '거울'은 우리의 시선의 각도를 돌리게 해주는 소재고 말이지. 

세계화는 강대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세상을 재편하려고 하고 있구나.
필요하면 약소국에 군사 기지를 만들면서 환경을 파괴하기도 하고...
그렇게 중요한 일을 국민들이 알면 시끄러워지니깐, 그런 사실 자체를 알리려 하지도 않고 말이야. 

세상은 늘 자기 중심으로 바라보면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
'다른 것'은 서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이제 아들도 태어난 지 만 18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주어진 것들만 하면 되는 시기가 끝난다는 거라고 생각해.
어른은 뭔가를 자신이 만들어 가야하는 존재거든.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원숙한 가을을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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