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편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지음 / 도솔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감옥 속에 핀다고 실망하지 않고, 건물 구석진 먼지 틈새에 뿌리 내리는 잡초, 잡스런 풀들, 예쁜 꽃 피우지 못해 이름도 얻지 못한 잡초들, 그 잡초들의 이야기.

지구상에 15만 가지의 풀 중 이름이 있는 것은 3천 종이란다. 14만 칠천 종의 잡초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런데 서울대 나온 농업 학자가 그저 환경에 관심을 갖는다면 당연한 학술 서적이니 우리가 읽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벌써 리뷰를 쓴 사람만도 이백명이 넘는 것을 보면, 그가 농학자가 아닌 것이 오히려 다행일 수 있겠다. 아차. 상업적 책읽기, 느낌표 도서였단 걸 간과해선 안 되겠다.

난 재생지 책이 참 좋다. 우선 가벼워 좋고, 눈이 피로하지 않아서 좋다. 난 주로 형광등, 스탠드 아래서 글을 읽는 시간이 많아서 번득거리는 코팅지는 눈에 아주 해롭다.

인생이란 그렇게 웃기는 것이다. 그가 서울 농대를 졸업해서, 그 사회과학이 풍미하던 80년대 중반에 무사히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 와서 어디 적당한 대학의 사회과학대학에 전임 자리라도 땄다가 해직 교수가 되고 했더라면, 지금쯤 상당한 유명인사가 될 수도 있었을 게다. 아마 환경운동가가 되진 못했을 지도 모르고. 그러나 간첩으로 살아온 십여년은 그를 농부로 만들어 버렸다. 땅에 대한, 생명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하는 옥살이.

서준식의 옥중 서한을 읽고 있는데, 솔직히 지겹다. 아직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많은 글을 적고, 상당부분은 원칙적인 이야기들을 적고 있으니, 마음은 아프지만, 생경하게 느껴지는 편지들이 많다. 요즘 생각 같아선, 지금처럼 진도가 안 나가면 조만간 포기할 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같은 옥중 서한이지만, 황대권의 글은 훨씬 원숙미를 느낄 수 있다. 세상을 벗어난 자연이 그 속에 있다.

팔십년대 말에 나온 노래 중에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하는 노래가 있었다. 감옥 속에 핀다고 한탄하지 말고 꽃을 피우라던 노래. 그 당시 대학 다니던 우리에겐 감옥은 하나의 닫힌 미래였다.

우리가 이름도 모르는 숱한 풀들, 관목과 교목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곧 생명에 대한 성찰에서 우러난 진심이었다. 늘 만나는 잡풀들, 그 속에 내가 있고, 내 삶이 있고, 내 세포와 혈액들이 속해있는 이 우주가 담겨 있다.

늘 '우리꽃 백가지, 우리 나무 백가지, 도감들'을 읽으면서 알고 싶은 건 많지만, 정말 이 분야는 쉽게 도전할 염이 생기지 않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건, 괭이밥. 자주 보던 건데 몰라보던 녀석이어서 반가웠고, 지금도 먹고 싶은 마이산에서 먹었던 비름나물. 데쳐서 된장에 무쳐 먹으면 환상적인 맛이다.

이론으로만 환경 사랑하는 잡스런 인종들에 비하면, 그의 청순함은 오히려 눈물겹다. 감옥에 갇힌 '다른 생각'이 부른 절창. 갇혀있기에 누릴 수 있었던 호사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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