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 - '종전 조서' 800자로 전후 일본 다시 읽기
고모리 요이치 지음, 송태욱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은 게 거의 3년 가까이 된다.
조금씩 조금씩 읽다가 잊다가 했는데, 이제서야 마무리를 짓는다. 

강유원 선생으로부터 책과 세계에 대한 강의를 듣던 중, 일제 강점기와 관련지은 책으로 소개한 책이다.
한국 사회는 일본 사회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아니, 고의적으로 일본에 대하여 비밀스럽게 감추는 것 같다.  

6,70년대 교과서에선 일제 강점기의 징그럽게 비참했던 수탈상이 그려진 것 같았지만,
그건 두려움의 경지였지, 국가의 차원에서 어떤 보상을 받는 데는 실패하고 만 것 같다.
3년의 지배를 당한 필리핀에 비하여 35년의 보상으로 절반 조금 넘는 보상에 도장을 찍고 만 박정희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3자 구도에서 어떤 밀약을 맺은 것인지...
아직도 감춰져 있다. 

김종필이가 일본으로 건너가 맺은 밀약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었기에,
노무현 정부조차도 정신대 문제 같은 것이나 독도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
독도가 한국 영토라면 응당 해군이나 육군이 지켜야 하는 일이거늘,
외교적인 문제라면서 경찰이 파견되어 있는 일도 수상쩍은 일이고,
이메가처럼 기다려달라...는 식의 피력은 그 밀약은 보통 수준이상의 합의로 볼 수 있겠다.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지만,
이 책처럼 공식적인 문건을 통하여 세상을 읽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은 가장 훌륭한 역사 읽기의 한 종류라 생각한다. 

히로히토의 '종전 조서'를 읽어 보면, 

미영중소 4개국에 공동선언을 수락한다.
미영과의 전쟁에 최선을 다했으나 전국이 호전되지 않았고(패전했단 말은 안 함, 그리고 일본의 적은 미영뿐임. 중국도 조선도 없음...),
적은 잔학한 무기로 무고한 백성들을 살상하였다. (일본인은 피해자가 됨) 

교전이 계속되면 민족멸망, 인류문명 파괴를 우려하여 공동선언에 응하게 하였다.(참 아량도 넓으셔)
제국과 함께 동아 해방에 협력한 맹방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조선은 여기 일제와 한 동아리로 묻어 넘어간다. 조또, 식민지 지배따윈 한 적도 없는 맹방이란다. 와... 일제와 조선은 베프였단 말씀? ㅍㅎ) 

제국 신민으로서 전진에서 죽고 직역에 순직했으며 비명에 스러진 자 및 그 유족을 생각하면 오장육부가 찢어진다.
또한 전상을 입고 재화를 입어 가업을 잃은 자들의 후생에 이르러서는 우려가 크다.(음, 조선은 이렇게 일제를 위하여 죽고, 순직한 거임?) 

그러나 짐은 시운이 흘러가는 바
참기 어려움을 참고 견디기 어려움을 견뎌,(캬, 일제와 천황 폐하는 많이 참고 견뎠구나. 피해자 의식 출중하도다.) 
이로써 만세를 위한 태평한 세상을 열고자 한다. 

짐은... 너희 신민과 함께 할 것이다.
아무쪼록 거국일가 자손이 서로 전하여 굳건히 신주의 불멸을 믿고... (아, 천황이 신이심을 믿나이다?) 

맥아더와 히로히토의 회담 내용에서 <황족 내각>은 인정받고,
천황의 책임을 뒤로 사라지며, <일억총참회론>으로 핑계를 돌리는 등,
정치적 수사학으로 가득한 당시의 문서들을 읽노라면,
명확한 법적 근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모호한 사과와 결정들이 두루뭉술 적힌 것을 느끼게 된다. 

히로히토는 전쟁의 근원 자리에서 쏙 빠지고,
오로지 신민의 안위를 위하여 '종전'을 주장한 평화로운 자로 기록되고 있으며,
해마다 반복되는 <참기 어려움을 참고 견디기 어려움을 견뎌>온 동지로 남아 있다. 

종전 조서에서 '책임과 반성'은 휘발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맥아더는 전쟁 중 일본군의 극악함을 염두에 두고 본토 상륙을 무척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토에 상륙한 연합군은 온순하기 그지없는 일본인들을 보고 참으로 의아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1946년 루스 베네딕트에게 의뢰하여 '국화와 칼'이란 일본인 이야기를 썼다고도 한다. 

맥아더는 헌법9조를 통하여 천황제를 남기고 평화주의에 입각한 헌법을 제시한다.
천황에 대하여 상당히 수동적인 존재로 조사 결과를 남기고, 천황제가 유지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변한다.
결국 맥아더를 통한 미국의 전략은 일본을 미국의 전쟁 따까리로 만들면서도 이웃 국가들의 피해의식에 최소한의 책임만을 질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하려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가상의 적군 소련에 대응하기 위하여 히로히토로 하여금 오키나와에 공군 기지를 남겨둘 수 있도록 요새화하도록 했다. 

미합중국은 일본이
공격적인 위협이 되거나 국제연합 헌장의 목적과 원칙에 따라 평화와 안전을 증진하는 것(은 완전 가능하고)
외에 이용될 수 있을 만한 군비를 갖는 것을 항상 피하면서,
직접 및 간접 침략에 대한 자국의 방위를 위해 점증적으로 스스로 책임질 것을 기대한다.(260)
고 함으로써, 평화헌법에 따른 군비 불가능을 풀어주게 된다.
역시 주어는... 미합중국은... 이다. 

전쟁을 위한 나라, 가 지구상에 하나 있다.
2001년 9.11이 일어난 지 이미 10년이 지났다.
그라운드 제로... '폭발이 있었던 지표의 지점'이란 용어인데,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이어 뉴욕에서 발생한 비극. 

그러나 9.11이 일어난 후 벌어진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과 최근까지 이어진 모든 <불의와의 전쟁>에서 늘 앞장선 슈퍼맨이자 배트맨이자 스파이더맨인 나라. 그들을 위하여 모든 약소국의 정치는 바다에 정박한 선박들처럼 한 방향으로 차렷자세로 늘어서서 꼼짝마 자세로 대기중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약소국의 정치란, 결국 강대국의 의도대로 톱니바퀴가 바스러지더라도 굴러가는 것임을, 깊이 깨닫게 되어 슬프다. 결국 히로히토의 반성 없음은 미국이란 강대국의 이익과 맞물려 돌아가는 것임을 보게 된다.  

아, 세상은 복잡하게도 이어져 있지만, 또 그래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워보이기도 해서 답답하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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