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의 여왕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에 'fat zero'라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았다.
미국이란 사회는 왕비만이 되기 쉬운 식생활을 접하기 쉬워선지 고도비만자들이 많이 있는 모양이다.
그들에게 비만 이전의 건강한 삶을 되찾아 줄 것처럼 보이는 다이어트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에서도 요즘 시작하는 모양이던데, 아무래도 한국인은 그들처럼 체형 자체가 충격적이지 않다. 

지방 제로, 란 이름도 끔찍해선지 그 다음 나온 식이음료가 '팻 다운'이었던가 그랬지. 

백영옥의 입담은 치열한 관찰력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스타일'에 실린 몇 편의 글들의 관점은 정말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속내를
여과없이 정확하게 그리고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장편의 구도를 짜다 보니, 그의 치열한 관찰력이 돋보이기는커녕,
구도 자체가 박진감이 넘치지 못하도록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원래 400페이지가 넘는 소설책이라면,
처음 100페이지는 어떻게 넘어갔는지도 모르게 박진감으로 넘치기를 기대하고,
그 다음 200페이지 정도는 다양한 주제를 섭렵하더라도,
마지막 100페이지 정도에선 화끈한 반전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것이 이런 두툼한 장편 소설의 독자의 속셈아닐까? 

그런데, 백영옥의 이 소설은 중편 정도로 구도를 잡았으면 훨씬 더 쫄깃한 소설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남기는 책이다.
물론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
현대인들의 몸에 대한 잘못된 철학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심각한 결과까지를 정신병적 문제로까지 발전시키려한 백영옥의 시도는 신선했다.
특히 요즘 완전 잘달리고 있는 다양한 서바이벌 게임의 형식을 빌려와서
서바이벌 게임의 겉면과는 전혀 다른 추악한 속내를 드러내는 소설은
통쾌하고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도 있는 멋진 '식재료'로 가득한 주방으로 기대한 독자에게,
왠지 맛이 없다기엔 그럭저럭 괜찮지만,
그 맛을 엄지를 들어 칭찬하기엔 좀 낯뜨거운 수준의 음식을 맛보게 한 주인공 연두같은 작가가 되어버린 거나 아닌지... 

이 소설의 아이디어들은 어찌 보면 단편의 아이디어에 잘 어울리는 것 아닌지... 하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백영옥에게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이 추리소설 작가 라일리 벡의 길고 긴 복문 같다고 생각했었다.
형용사와 부사가 비곗살처럼 들러붙어 있고,
중문과 복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늘 번역가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그녀 특유의 기괴한 문장들 말이다.
하지만 <다이어트의 여왕>의 트레이너들은 최고의 편집자들처럼 과잉된 부분들을 거침없이 잘라내고 있었다.
부사와 형용사는 잡초를 솎아내듯 제거됐고,
번역이 불가능한 난삽한 복문들은 몇 개의 단문들로 재배치되었다.
복잡한 이야기들은 이제 정확한 접속사와 무수한 쉼표들로 새로운 질서를 부여받은 듯 무서운 속도로 읽히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내 몸의 미세한 단어와 복선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는 독서가처럼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정연두'라는 두꺼운 책에서 진부한 문장들을 쳐내자, 점점 매력적인 표현과 단단한 동사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실연, 절망, 실패' 같은 명사들은 줄어들고,
'살다, 사랑하다, 웃다' 같은 동사들이 조금씩 빈자리를 차지했다.
책의 부피는 한 손에 쥘 정도로 줄어들었다.(151) 

난 이런 표현들을 좋아한다.
요즘 표현으로 정말 애정하는 편이다. 느낌이 확 당겨지는 기분이고, 쏘옥 빨려들어 몇 차례를 읽고 만다.
급기야는 이렇게 타이핑을 하고서야 안심이 되는 정도다. 

서울은 보톡스를 엄청나게 때려맞은 중년배우 같아.(200) 

이런 것이 백영옥의 힘이다. 여성스러운 생활의 한 켠이 철학과 맞물려 들어가는 경지의 서술이랄까...  

종종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은 인생이 노력한 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일 거란 생각.
하면 된다, 가 아니라 되면 한다, 란 말이 그저 말장난이 아니란 걸 알아버리는 순간 깨닫게 되는 건,
인생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는 자명한 사실...(53) 

이런 관찰력이 백영옥의 힘이다.
다들 그렇게 느끼면서 그럴싸한 잠언들에 치여서 찍소리 못하는 '질식되어버린 진실의 언표' 

문득 내 인생이 삼류 추리소설 속 오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15)
인생의 깨달음은 언제나 한 발짝 늦다.(18) 
당신은 당신 삶의 규칙의 희생자다.(64)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탈옥기가 매혹적인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건, 적대감을 축적하기 좋은 주변 환경과 증오로 오염된 사람들이니까 말이다.(154)  

내가 내 뒷모습을 모르듯, 그녀 또한 자신의 뒷모습을 평생 보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보편적인 외로움은 바로 그렇게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닐까.(364) 

어쩐지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웠지만 누군가에겐 실패한 삶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희미한 별처럼 제각기 빛나고 있었다.(379) 

이렇게 어쩌면 단편 소설 속에 들었다면 멋지게 기억될 구절들이,
자칫 어린 작가가 치기어린 소설 속에 집어 넣은 하이틴 로맨스 소설처럼 비치도록 배치되어버린 건,
백영옥이 아직 장편 작가로 성장하고 있는 과정이어서 그럴 거라고 믿어 본다. 

조금 아쉽지만, 이런 표현들을 앞으로도 오래 만나고 읽고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 조금 더 아쉬운 몇 가지 표현들... 을 지적해도 그는 서운해 하지 않겠지? 이런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니 말이다. 

틀리던 문제의 정답을 알자 똑같은 문제를 다시 틀리는 일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한번 틀린 문제는 다시는 틀리지 말자, 로 학습 목표가 바뀌었다.
나는 내 인생의 오답을 고쳐쓰고 싶다. 그때처럼 다시는 틀린답을 방치하고 싶지 않다...(291)

치유란 원래 자신을 왜곡없이 들여다보는 지난한 과정이죠. 그래서 치료 중 도망가는 사람도 많아요.
... 힘들겠지만 인내심을 가져요.(356)

16. 단테는 '신곡'에서 탐식 역시 인간의 아홉 가지 죄악 중 한 가지라고 했지만,... '세븐 SE7EN' 아니던가? 그런 죄악 일곱가지를 모토로 살인을 일삼던 브레드 피트의 섬뜩한 영화... 

247. 마른 늑골과 치골의 개수를 일일이 세어보는 일 역시 끔찍했다... 인간에게 치골은 셀 수 있는 게 아닌데... 치골이 여럿이라. 흠... ^^  텔레비전에서 간혹 옆구리 아래 뼈가 비치는 걸 치골이라는 무식한 방송인도 있는 모양인데, 그건 '골반뼈' 중의 '장골'이지 '치골'은 아니다. '치골'은... ㅠㅜ 팬티 안쪽 한복판에 있는 뼈다. ㅋ

  

345. 해부학적 지식이 이렇게 조금 부족하다 보니...
  마하트마 간디처럼, 보리수나무 아래 붓다처럼 가는 늑골과 드러난 치골이 깨달음의 상징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휴 =3=3 붓다의 치골을 보다니.... ㅎㅎ

199. 얼마전 충무에 갔는데, 갑자기 충무김밥이 먹고 싶은 거야... 충무, 가 통영이 된 지는 꽤 되었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