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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능성의 거리 ㅣ 문예중앙시선 6
박정대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그의 시에 황병승 시인이 붙인 말이 길고 지루하고 아름다운..이다.
그렇다면, 그의 시처럼,
삶 역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길고 지루하고 때론 간혹 아름답기도 한...
그런데 박정대의 시들은 날개달린 기타의 그림처럼,
불쑥 튀어나오고 늘 돌아다닌다. 거기에 짙은 담배 연기를 우수와 함께 드리운 채...
1980년대, 그 거센 파도와도 같던 시기에,
어두운 목소리, 차분하면서도 왠지 울렁거리는 곡조에 랩도 아닌 가사를 중얼거리며 읊조리던 정태춘이란 가수가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음유시인의 그것처럼 웅얼거림이기도 하고 정확한 음정보다는 분위기가 주는 센치한 느낌을 전달하는 데 강점이 있었다.
박정대의 시를 매끄러운 도시의 지하 서점에서 만난다면 당혹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시를 만나는 사람의 마음이 언제든 20시간 이상의 비행과 30시간 이상의 버스 여행을 각오한 마음으로 그를 만난다면, 또 그런 멋진 동행도 만나기 힘들 것 같기도 하다.
올 여름, 어쩌다 보니 서울을 두 번이나 다녀왔고, 중국엘 7박 8일, 지리산을 2박 3일 다녀왔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여행을 하고 밤을 보내기란 쉽지만은 않지만,
삶은 늘 그렇게 예약되지 않은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건배를 나누고 뜬소리들을 듣는 일과 마주치는 것이기도 하다.
떠도는 날들의 기억이 박정대를 더욱 친숙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고...
매일매일을 임시국경일로 선포할 거야.
삶은 축제로 이루어져야 하니까.
축제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나는 이 세계를 견딜 수 있을 테니까.(89)
그의 자유로운 언어의 사유는 고독으로만 이뤄진 건 아니다.
이렇게 삶에 대한 긍정으로 가득한 말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그가 정선 가수리라는 마을에서 접한 한 남자의 부고.
아주 고요하게 외롭고 치명적으로 고독했던 어느 영혼이 이 지상을 떠나던 날 나는 강원도 정선 가수리에 있었다.(158)
이 구절을 읽으면서 왠지 한 남자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아니겠지... 하던 순간, 2009년 5월 23일 가수리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아, 그의 고요하게 외롭고 치명적으로 고독했던 영혼... 그의 영혼에 다시 축복을 빈다.
가도가도 세상은 차마고도 같은 낭떠러지 길이어서(194)
그렇게 그는 리스본 혹은 파미르, 안데스를 구름처럼 떠돈다.
떠도는 이에게 낭떠러지 길은 익숙해 질 수 있기나 한 것처럼...
그의 감정은 '임시정부'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의 발길은 아나키스트와 다름없다.
그러나 그가 '버마'라고 입력한 컴퓨터가 '미얀마'로 교정할 때,
버마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굳이 버마와 아웅산 수지를 고집하는 걸 보면, 아나키스트보다는 망명정부에 익숙할 사람같기도 하다.
시인이 북유럽에 가서 당황스럽게도 만났을 백야처럼,
삶은 늘 익숙한 순간에 낯선 상황을 만날 수 있는 짖궂은 장치처럼 보인다.
그런 짖궂은 삶의 장치들에 외로움을 느낀다면,
짙은 밤,
스탠드 불빛 아래서 진한 스트레이트라도 한 잔 앞에 두고(뭐, 그가 늘 독주를 들먹거리곤 하니 말이지)
그의 시집을 펼쳐볼 일이다.
음악이 있다면, 파두...가 적당하다.
길은 막힌 길이어도 적당하고, 막히지 않은 길이라 하여도 무방하다던 이상의 '오감도'처럼,
삶의 길은 합당하고 정확한 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님을,
그의 여행 시집들과 함께 느낄 수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