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04
장석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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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의 시어는...
간명하거나 화끈하지 않고 침묵에 가깝다.
선승의 공안 한토막처럼
뜬금없기도 하고 친절하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장석남의 시는
마음으로 번져가는 시이고,
마음으로 읽는 시이다. 

저 새로 난 꽃과 잎들 사이
그것들과 나 사이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무슨 길을 걸어서
새파란 
새파란 
새파란 미소는,
어디만큼 가시려는가
나는 따라갈 수 없는가
새벽 다섯 시의 감포 바다
열 시의 등꽃 그늘
정오의 우물
두세 시의 소나기
미소는, 
무덤가도 지나서
화엄사 저녁 종 지나
미소는, 
저토록 새파란 수레 위를 앉아서

나와 그녀 사이 또는
나와 나 사이
미소는, 
돌을 만나면 돌에 스며서
과꽃을 만나며 과꽃의 일과로
계절을 만나면 계절을 쪼개서
어디로 가시려는가
미소는,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표제 시인데,
'새로 난 꽃과 잎들 사이, 그것들과 나 사이'를 생각한다.
자연과 인간인 나 사이... 
'새파란 이파리'를 보면서, 
새파랗게 존재하는 자연의 섭리를 생각한다. 

인간 존재는 혼자서 있지 않다.
<사이>에 있고, 그 사물들을 <지나서> <스미고> 만다.

미소처럼,
빙긋이 순간 머물다 사라지는 것.
인간 삶도 그런 걸까? 

3일에 걸쳐 지리산을 넘었다.
칠선 계곡 쪽의 임도를 따라 벽소령까지 오르고,
세석 평전을 거쳐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올랐고, 중산리로 내려왔다. 

비가 내리고 신발은 젖어드는데,
등허리에 매어달린 배낭과 무릎의 통증만이 나의 존재함을 뜨겁게 알려왔다. 

비가 지나갈 때마다 나뭇잎 위로 빗소리가 들렸다.
후두둑 툭 툭
그러면
배낭을 둘러싼 우의 위로 떨어지는 후두둑 툭 툭하는 빗방울소리.
나도 빗소리 따라
나뭇잎이 되는 것 같았다. 

자욱한 안개 따라
앞길이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한 발 한 발 가다 보면,
저쪽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산장의 그림자가 하염없이 반가운 것.
거기 산장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없다면 그렇게 걸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까풀막을 섹섹거리는 숨소리도 가쁘게 오르고 나면,
반드시 온갖 들꽃들이 한들거리며 손을 흔들어 준다.
괜찮다고...
우리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산다고... 

내가 지나온 길, 넘었던 등성이, 디뎠던 돌팡구 하나하나가
모두 지나가 버린 시간 속에서
무엇 하나와 무엇 하나의 사이에 속한 것이었다.
그 소중한 기억도 금세 사라진다.
마치, 미소처럼... 

이런 순간을 말로 붙잡으려는 장석남의 시는
그래서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난다.
허해서 말이다. 

못 보던 얼룩이다

한 사람의 생은 이렇게 쏟아져 얼룩을 만드는 거다

빙판 언덕길에 연탄을 배달하는 노인
팽이를 치며 코를 훔쳐대는 아이의 소매에
거룩을 느낄 때

수줍고 수줍은 저녁 빛 한 자락씩 끌고 집으로 갈 때
천수천안의 노을 든 구름장들 장엄하다

내 생을 쏟아서
몇 푼의 돈을 모으고
몇 다발의 사랑을 하고
새끼와 사랑과 꿈과 죄를 두고
적막에 스밀 때

얼룩이 남지 않도록
맑게 
울어 얼굴에 얼룩을 만드는 이 없도록
맑게 
노래를 부르다 가야 하리 (얼룩에 대하여)

살면서 얼룩을 만들게 된다. 
장마를 노래하는 시인 장석남에게 얼룩은 으레 따라붙는 소재다.                

장마가 지나자 악취가 나기 시작하였다
우선 가까운 데를 두리번대고
다시 참아보자고 앉았다가
안되겠다 싶어 다시 일어나 두리번댄다
그건 興行과도 같은 것 ?     
諷刺와도 같은 것 ?
점점 圓을 넓혀 두리번댄다
집 바깥까지, 남의 집 담 너머까지 두리번대다
돌아온다 
그건 禪과도 같은 것 ?
깨침과도 같은 것 ?
다시 제자리
이번엔 政治的으로 고쳐 앉는다
고요하다 (두리번 禪) 

삶은 장마같이 구질구질 내리는 비처럼 속절없을 때가 많다.
하느님이나 운명의 신에게 왜 저를 이렇게 만드셨냐고 울면서 물어도 대답은 없다.
삶은 장마나 마찬가니니까. 

이유도 없이 '대기 불안정'이란 말로 일기 예보를 대신하는 뻔뻔스러움이 '장마'의 특징이다. 

두리번거려봤댔자, 답은 없다.
악취가 번지는 일,
그건 흥행과도 같다고 했고 풍자와도 같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선이나 깨침과도 같을지도 모르겠다고 물음표를 붙여주는 의뭉스러움. 

결국 정치적으로,
의도적이며 스스로를 다스리려는 목표를 지니고
제대로 고쳐 앉아 본다.
악취는 '고요하다' 

흥행에는 정석이 없다.
아무리 유명한 스타를 고용해도 실패할 수 있고,
동네 할머니를 등장시켜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
풍자의 시니컬함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고, 그저 한마디의 지나간 시간에 불과할 수도 있다. 

장마철.
빨래 보송하게 마르지 않는 계절.
툭하면 비가 내려 벽에 얼룩을 만들고,
기분을 우울하게 만드는 철.
불쾌한 시절. 

그러나, 장마가 나를 불쾌하게 한 것인지는... 정치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노릇인 셈. 

……안팎을 다해서 저렇게 깨어진 뒤라야 완성이라는 것이, 위안인, 아침이었다.
그 곁을 지나며 옷깃을 여미는 자세였다는 사실은 다행한 일이었으니
스스로 깨어지는 거룩을 생각해보는 아침이었다 (석류(石榴)나무 곁을 지날 때는)

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눈을 생각한다. 

석류 알알이 벌어진 모습에 그저 감탄하기를 지나서,
자신이 옷깃을 여밀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거룩을 생각할 수 있어,
위안을 받는 자세. 

시인의 마음 가짐이 오히려 거룩하다.

산 넘어 온 비가
산 넘어 간다
비단옷으로 와서
무명옷으로 간다

들 건너 온 비가
들 건너 간다
하품으로 와서
진저리로 간다

물 건너 온 비가
물결 건너 간다
뛰어온 비가
배를 깔고 간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국밥집에 마주앉은
가난한 연인의 뚝배기가 식듯이
이슬비가 되어서
비가 간다 (장마 끝물)

장마가 빨리 지나면 좋겠다고 다들 생각하지만,
장마는 간다.
그렇지만, 장마가 가기를 바라고 바라지만, 그리 반길 일은 아닐 수도 있음을 왜 모르는지...
장마를 즐겁게 사는 것 이외에,
오늘을 살아내는 방법은 없다는 걸 왜들 모르는지... 

장마가 가면 화창한 봄날이 오던가?
장마가 가면,
남는 것은 쇠락의 가을.
황량한 겨울이 아니던가... 

비단옷으로 와서 무명옷으로 가는 것.
이게 삶이 아니냐.
하품나게 지루하던 삶이 진저리치게 아쉬움으로 남는 것.
이게 삶이 아니냔 말이다...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이 남긴 <시인의 말> 보자.

시인의 말

문 : 문 열고 들어가도 될까요?
답 : 그래요. 그 대신 문은 돌로 막아버려요.

문 : 나가고 싶은데 문은 어디죠?
답 : 당신!

무너질 데라고는 나 자신뿐!
거길 깨고 나갈 밖에.

나갈 문도 없이 집을 짓는다. 그게
사랑이다.
(그리고 능청이다.
삶 말이다.)

능청스럽다.
그래.
삶이 그렇단 말이다. 

문도 없는 집.
이른바, 무문관.
그게 사랑이란다.
말이 사랑이지, 그게 삶의 진리란다.
스스로 깨어지고 나가지 않으면 길이 없는 방.

벽에서 얼룩 하나 걸어 나오신다
벽에서 얼룩 한 벌 걸어 나오신다
벽에서 얼룩 한 분 걸어 나오신다
펄럭이는 얼굴과 쏟아진 소매
속에 모아쥔 손.
속에 예쁘디 예쁜, 웃음으로 싸맨 울음 한 움큼
얼룩 한 채 걸어 나오신다.

작년, 재작년의
모란꽃 속을 황홀하게 걷던 영광
너무 컸던지
다 젖은 얼굴 펄럭이며 오신다
신발 머리에 이고 오신다*
신발 머리에 이고 오신다 (장마) 

* 조주 선사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도통 모르겠다.
그렇지만,
신발이 과연 발에 신어야만 하는 것인지,
머리에 이고 오시는 거 또한 틀렸다고 할 수 없는 거 아닌지,
시인은 오히려 시를 통해 묻고 있다. 

솔직히 이 시집은 쉽지 않다.
그게 이 시집의 매력이기도 하다. 

등산하는 이에게 왜 그 힘든 산을 오르냐고 물으면,
거기 산이 있으니까... 했다는 이는 엄청 그럴싸한 말을 한 거고,
숨쉬기도 힘들고, 온몸을 짓누르는 중력의 억압을 느끼면서,
자신이 숨쉬지 않으면 죽을 것임을 배우고,
그래서 자신이 아주 작고 작은,
순간에 불과한,
미소에 지나잖은 존재임을 배우러 가는 것이라 대답할는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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